금융위원회 내부 모습. 사진=신민경 기자
금융위원회 내부 모습. 사진=신민경 기자
금융당국과 국토교통부가 오랜 기간 '뜨거운 감자'였던 은행권 자체 담보감정평가에 대한 이견을 좁히기 위해 협의에 나섰다. '담보가치 부풀리기' 등 과다대출 논란으로 홍역을 치른 은행권은 '긴장모드'다. 부처 논의 결과에 따라 금융권의 자체 감정에 제동이 걸릴 수 있어서다.

'은행 자체평가' 위법성 두고 금융당국-국토부 논의

서울 시내 한 거리에 시중은행들의 ATM이 설치되어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임형택 기자
서울 시내 한 거리에 시중은행들의 ATM이 설치되어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임형택 기자
6일 한경닷컴 취재에 따르면 최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국토교통부 세 부처는 '은행권의 자체 담보감정평가 적법(타당) 여부'를 논의하기 위한 킥오프(kick-off) 회의를 가졌다. 금융기관의 자체 담보감정평가가 관련법규 위반인지 규명하기 위한 자리로, 올해 결론이 나기까지 이들 부처는 회의를 갖기로 했다.

시장 한 관계자는 "이 사안은 줄곧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지적돼 왔지만 지난해 10월 국감에서는 국토교통위원회에서도 처음 거론됐다. 부처 간 갈등으로 확산하기 전 매듭을 지으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금융당국이 먼저 국토부 측에 부처 간 협의를 해보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이번 협의가 시작된 뒤 은행연합회 등을 중심으로 은행들의 감정평가 실태파악에 나선 상태다. 주요 시중 은행들을 상대로 현황을 살펴본 뒤, 이를 토대로 국토부와 본격 논의에 들어갈 예정이다. 감정평가법 소관 부처가 국토부인 만큼 최종 해석 내지 법령 정비 결정은 국토부가 내린다.

국감에서 단골로 거론되는 '은행권의 담보물 자체평가'는 해묵은 문제다. 은행과 감정평가사, 부처로는 금융당국과 국토부가 대립하는 사안이다.

감정평가법 제5조2항에선 금융기관이 대출과 관련해 토지 등 감정평가를 하려는 경우 감정평가업자에게 의뢰하는 게 의무다. 하지만 은행들은 감정평가 비용을 줄이기 위해 외부 의뢰를 최소화하거나 자체적으로 감정평가사를 고용해 담보물을 산정해 왔다. 한국부동산연구원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금융기관의 자체산정 비중은 68%에 달한다. 때문에 은행들의 자체적인 담보감정평가 행위가 법 위반인지를 두고 업계 간 설전이 있어 왔다. 감정평가사들은 "일감을 빼앗겼다"며 대책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견해차 뚜렷…은행권 자체감정 제동 걸릴까

한 시중은행 영업점 창구 모습. 사진=김병언 한국경제신문 기자
한 시중은행 영업점 창구 모습. 사진=김병언 한국경제신문 기자
감정평가사들 측은 주요 반대 논리로 '담보물건의 부실 감정평가 가능성'을 내세웠다. 금융기관이 수익성에 따라 자의적으로 담보물을 평가할 수 있어 금융산업 리스크(위험)가 커질 수 있단 논리다. 감정평가업자들이 지휘받는 감정평가법에선 '불공정한 감정평가를 할 우려가 있는 경우엔 평가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는 행위규범을 따로 두고 있고 이를 위반할 시 적용하는 벌칙 규정도 있다. 결국 독립된 감정평가업자를 통하는 게 은행 자체 평가보다는 공정성과 독립성을 갖출 수 있단 게 이들 주장이다.

이성원 부동산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은행이 자체 산정할 경우 실적확보를 위해 과대평가하거나, 안전확보를 위해 과소평가할 가능성이 있고 전문성 부족으로 담보가치를 부정확하게 산정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감정평가사협회(감평협) 관계자는 "은행권의 자체 평가는 의심의 여지 없이 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관련 근거와 입장은 숱하게 국토부 측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반면 은행들은 비용을 아껴 효율적으로 '담보가치 평가'와 '대출실행'을 하기 위한 전략적 결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은행 소관 법령이나 규정 중에는 자체 산정과 관련해 강제하는 내용이 없다. 오히려 현행 은행감독업무 시행세칙은 은행들이 대출실행 전 평가해야 하는 주거용 담보물은 명확한 시세가 있는 경우엔 자체 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타 법률 위반은 은행법에서 금지하는 불공정영업행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때문에 은행들은 뚜렷한 근거도 없이 업자에게 비용을 댈 이유가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평가 주체가 어디든 공정성만 입증하면 되지, 반드시 감정평가업자만이 평가를 독점해야 한다는 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다른 은행 한 관계자는 "제3자를 위한 평가일 땐 감정인 자격이 필요하지만, 스스로 필요해서 내부적으로 평가하는 경우에는 은행이 자체적으로 평가하는 게 당연하다"며 "유사하게 엄격한 자격을 요구하는 '소송'의 경우도 변호사 아닌 사람이 대리하면 안 되는 게 원칙이지만 '자기 변호'는 된다"고 말했다.

당국은 가능한 원만하게 합의를 보겠단 방침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먼저 금융당국 측에서 은행들이 어떻게 감정평가를 하고 있는지 실태조사를 하는 상황으로, 그 결과를 다음 회의 때 공유받기로 했다"며 "오랜 기간 문제 제기됐던 사안이므로 관계기관 간 의견들을 잘 파악해 어떻게 개선해 나갈지 고민해 보겠다"고 밝혔다.

한편 은행권도 부처 협의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은행권에서 과다대출 배임 사고 등이 문제시 돼 온 만큼 당국의 엄격한 해석이 적용될 수도 있단 우려다. 은행에 불리한 해석이 나올 경우, 일각에서는 외부 감정평가사 채택으로 인한 비용 부담을 결국 대출 차주에게 전가할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