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삶의 중심에 우뚝 서볼까요? 콘서트홀 중앙에 자리한 피아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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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동조의 나는 무대감독입니다
음악회를 담는 그릇과도 같은 예술의전당 음악당 콘서트홀
그 입체적 공간의 중심에 우뚝 서있는 피아노
음악회를 담는 그릇과도 같은 예술의전당 음악당 콘서트홀
그 입체적 공간의 중심에 우뚝 서있는 피아노
음악회가 담기는 콘서트홀이라는 용기
경사를 가진 1, 2, 3층 객석과 무대를 품은 합창석 그리고 그에 이어진 평면의 무대. 어찌 보면 음악당 콘서트홀은 넉넉한 함량의 그릇을 닮았다. 한 방울의 울림이 담긴 피아노 독주, 서로 다르게 채색된 밀도 높은 혼합물인 트리오 혹은 콰르텟, 잔잔한 호수의 물결처럼 퍼지는 체임버 뮤직, 마지막으로 거대한 바다의 울림 같은 오케스트라까지.
지휘자와 연주자가 등장하는 길 뒤로 닫히는 무대 우측의 문은 오늘 연주의 음(音) 샐 틈을 확인해 주는 공연의 시작이며, 모든 연주자의 퇴장을 위해 열리는 무대 좌우 측 문은 그날 공연이 담았던 모든 기운을 배출해 주는 종결이다. 공연 규모에 걸맞은 의자와 보면대, 높이가 상승하는 덧마루, 다시 그에 걸맞은 지휘자와 연주자와 악기를 담고 비우고 담고 비우고 매일매일 이뤄지는 공연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그 무대는 언제나 변함이 없다.
마치 하루 중 두 시간만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콘서트홀의 무대는 시간의 예술이라는 음악을 그 안에 품고, 그 시간의 앞뒤로 밀물과 썰물처럼 음악회를 들이고 보낸다. 피아노 독주회의 음악 분수가 샘솟는 날, 피아노의 협연이 열리는 날 모두, 피아노는 그 입체적 공간의 중심에 우뚝 선다. 몸의 일
이십 년 넘게 클래식 음악회의 무대감독 일을 해오고 있지만, 여전히 완벽히 해내지 못하는 일 중 하나가 피아노 전환이다. 우측 무대에서 혹은 좌측 무대에서 무대의 중앙으로 아름답게 피아노를 옮기는 그저 단순해 보이는 그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것은,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늘 아쉬움이 남는, 쉽지 않은 일이다. 여성 무대감독들과 지금은 많은 일을 하지만, 2015년 6월 26일과 27일 마에스트로 미하엘 잔데를링과 드레스덴 필하모닉의 공연에서 첫 콘서트홀 피아노 전환을 하던 여성 무대감독과의 기억을 잠시 옮긴다. 당시에 쓰던 비속어 하나도 곁들여.
『피아노를 선택하고, 리허설에서 위치가 정해진 피아노를 바라보다 2°쯤 기울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약간 틀어진 느낌의 피아노. 피아노 바퀴마다 마킹(무대 위 표시)을 준비하며 한 바퀴 각각 네 개의 표시를 했다. <피델리오> 서곡으로 문을 연 양일 모두, 서곡이 시작되면 여성 감독을 지휘자 출입문 뒤로 부른다. 일을 하며 여성과 콘서트홀 무대 중앙으로 피아노를 옮기는 일은 처음 경험해 보는 일이다. 무대에 들어가서 피아노 건반 쪽을 잡고 서서 전환을 시작하며 바라보는 여성 후배는 여전히 생경하다. 이틀 모두 피아노 전환을 잘 끝낸 후배 감독이 기특하기도, 신기하기도 하다. 첫날 피델리오 서곡이 연주될 당시 지시했던 후배와의 '기까끼'를 한 번 설명해 본다.
"들어가서 피아노 덮개 쪽을 잡아. 넌 네 오른편만 보며 들어가는 거야. 객석 쪽 바퀴는 내가 볼 테니 전혀 쳐다보지 말고. 각각의 바퀴마다 네 개의 마킹이 있으니 바퀴 바로 위 다리 끝부분 직사각형 모서리들을 거기에 맞추고, 맞추자마자 다시 문으로 가서 의자를 가져와. 난 네가 의자를 가져오는 동안 건반 덮개를 열고 피아노 수평 보고 고정하고 피아노 리드를 열게. 그리고 오늘은 녹음 마이크가 있으니 녹음 마이크 역시 내가 올려놓을게. 아마 그러면 대충 시간이 맞을 거다. 그리고 같이 걸어 나와. 알았지?”
처음 해 보는 여성 후배와의 피아노 전환. 처음 겪어보는 일투성이였던 이틀이 갔다. 여든이 넘은 피아노 조율 명장이, 40세 중반 20여 년 경력의 조율사들을 보며 '새내기’라 부르곤 했는데, 나 역시 갈 길이 멀다.』
고객의 소리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의 공연이 연달아 이어진 2016년 10월 23일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와 10월 24일 피아니스트 머레이 페라이어 공연. 두 음악회를 모두 참여한 한 고객은 각 공연에 하나씩 문의를 해왔는데, 참 대단한 고객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그 답을 내는 과정은 지금 일하고 있는 곳이 일할 만한 곳이라는 것을 잘 설명해 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먼저 안드라스 쉬프의 공연에 대한 문의는 대략 다음과 같다.
"피아노 공연에는 빛 반사를 피하려고 피아노 덮개를 천으로 덮고는 했는데, 이날 피아노 덮개에 있던 금색(노랑색)의 물건은 무엇인가요?"
9년이 지난 지금, 이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아르떼 매거진>과 진행한 인터뷰에 가장 정확하게 표현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순서상 첫 번째였던 머레이 페라이어 공연에 대한 문의는 아래와 같다.
"연주 중에 공연장에서 나무가 '딱딱’거리는 것 같은 소리가 났는데, 이 소리는 어디에서 난 건지 알고 싶습니다."
공연 당일 공연장에서 발생하는 소음의 원인에 대한 무수히 많은 변수가 존재할 수 있고, 무대감독으로서 생각해 볼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은 소프트 페달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 소음이다. 업라이트 피아노처럼 페달을 밟으면 거대한 펠트가 현의 위를 덮는 약음 방식이 아닌 그랜드 피아노는, 약음 페달을 밟는 동시에 88개의 건반이 일제히 오른쪽으로 미세하게 움직인다. 그 과정에서 페달을 밟는 강도에 비례해 건반이 오른쪽 벽에 부딪히는 소리 역시 커진다. 이 소리를 청중이 혹시 들었을 수도 있고, 만약 그렇다면 피아노와 굉장히 가까운 곳에 있어야 들을 수 있음을 고객의 소리 담당자에게 정리해서 건네줬다.
여기까지만 해도 지금 일하는 곳은 일할만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고객의 소리 담당자에게 답변의 참고 글을 보내고 피아노 창고 앞을 지나는데, 피아노 조율사가 그곳에서 나온다.
"유레카!!!" 정도의 환청이라고나 해야 할까???
피아노에서 날 수 있는 소리의 표현 중 '딱딱‘이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는 조율사는 피아노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소리 하나를 먼저 표현해 준다. 건반 하나에 1개의 동선과 2개의 동선을 사용하는 저음부의 건반에서 울림 페달을 살며시 놓을 때, 댐퍼가 현을 잡으러 내려앉으면서 아직 진동이 끝나지 않은 동선의 코일들을 덮는 과정에서, '웨에엥' 소리를 낼 수 있고, 이것은 피아노가 숙명처럼 지니는 소리임을 이야기해 준다.
머레이 페라이어는 아마도 약음 페달을 앞쪽으로 세게 밀면서 밟았을 가능성이 크고, 그 과정에서, 조율사가 직접 그린 그림에서 볼펜으로 굵게 칠한 부분에 발생하는 마찰로 나는 소리가 '딱딱'과 닮아있으며, 이 소리는 머레이 페라이어가 사용한 콘서트 그랜드 115 모델에서만 나고 있음을 찾았다는 것을, 그곳에 윤활유 성질의 것을 주입함으로써 그 소리가 없어졌음 또한 조율사는 이야기해 준다. 마음의 일
2024년 12월 11일 예술의전당 음악당 콘서트홀에서는 안젤라 휴이트 피아노 리사이틀이 열렸다. 1층 D블록 2열에 앉아 공연을 보았던 김민아 청중은 집으로 돌아가며 장문의 공연 관람평을 보내주었는데, 그중 일부분을 발췌해 본다.
『캐나다 태생의 안젤라 휴이트는 현존 피아니스트 중 최고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해석자로 정평이 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1부의 바흐(BWV 903) 연주보다 이 변주곡이 훨씬 좋았다.
1층 D블록 2열에 앉은 덕분에 연주자의 표정과 움직임을 생생히 볼 수 있었다. 손은 보이지 않는 위치였지만 열린 콘서트 그랜드 덮개로 반사된 해머의 움직임이 보였다. 검은 등을 지닌 거북이의 모습 같은 댐퍼의 움직임, 타건에 바로 맞닿은 해머의 움직임, 페달의 작동까지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연주자는 중간중간 객석으로 눈을 마주쳤고, 고개를 돌리면 닿을 위치에 앉은 나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나름대로 공감의 눈빛을 쏘면서 1부의 모차르트와 바흐, 2부의 헨델을 들었다.
2부의 마지막인 브람스 곡에서 이야기가 달라진 것은, 페달을 활기차게 밟는 4번 변주곡부터였다. 댐퍼 페달을 밟는 피아니스트의 구두 앞코, 페달부터 피아노 몸체까지 위쪽으로 쭉 연결된 금색 막대(로드)의 움직임, 힘차게 건반을 두드리면서 페달을 짧게 끊어 밟는 움직임에서, 힘차게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마리오네트가 보였다. 얼마나 역동적이었는지 무대 바닥을 발로 구르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가끔 카메라에 잡혀 보게 되는 피아노 덮개 안쪽의 모습은 음악과는 동떨어진 색다른 아름다움 같고 그래서 오히려 음악이 주는 여러 상상으로의 전이(轉移)를 도와주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피아노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객석에서의 감상평이 신선하며 음악에 대한, 음악회에 대한, 끝으로는 피아노에 대한 사랑 역시 잘 담고 있는 듯해서 기억에 남은 공연 관람평이었다. About Piano
제식훈련 용어 중 '뒤로 돌아‘라는 구호가 있다. 영어로는 About Face! 라고 표현한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이 영어 표현을 처음 접한 순간 about이라는 전치사는 동그란 원의 형태를 말하고 있는 것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컴퍼스의 날카로운 한쪽으로 그려야 할 원의 중심을 콕 짚고 원하는 만큼의 지름을 정해 휙 돌리는 그 모습. 18세기를 시작하며 태어난 피아노는 원의 중심이고 이제 무한대의 지름쯤 가졌을 피아노의 이야기들은 그 원 안에 담겨 있는 무수한 점들이며 그 모든 점의 목적은 피아노를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전치사의 목적어‘라는 그 익숙한 표현처럼.
무수히 많은 그 이야기 중,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5번 1악장에 담긴 건반악기 이야기를 생각해 보는 일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피아노가 발명되고 고작 이십여 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 작곡된 작품. 요즘 말로 '될놈될‘ 악기임을 이미 간파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삽입한 쳄발로의 카덴차. 영상에서 보이는 쳄발로 카덴차는 보통 '이례적인‘이란 정도의 표현으로 언급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혁명적‘이란 표현이 더 적절한 것이 아닐까 싶다.
[칼 리히터가 보여주는 쳄발로의 카덴차가 담긴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5번 1악장]
2025년 한 해도 통주저음이란 이름 아래 선율을 받쳐주는 궂은 역할에서 시작해 무대 중심에서 이야기꽃을 끊임없이 피워내는 피아노의 곁에서, 또 한 해를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경사를 가진 1, 2, 3층 객석과 무대를 품은 합창석 그리고 그에 이어진 평면의 무대. 어찌 보면 음악당 콘서트홀은 넉넉한 함량의 그릇을 닮았다. 한 방울의 울림이 담긴 피아노 독주, 서로 다르게 채색된 밀도 높은 혼합물인 트리오 혹은 콰르텟, 잔잔한 호수의 물결처럼 퍼지는 체임버 뮤직, 마지막으로 거대한 바다의 울림 같은 오케스트라까지.
지휘자와 연주자가 등장하는 길 뒤로 닫히는 무대 우측의 문은 오늘 연주의 음(音) 샐 틈을 확인해 주는 공연의 시작이며, 모든 연주자의 퇴장을 위해 열리는 무대 좌우 측 문은 그날 공연이 담았던 모든 기운을 배출해 주는 종결이다. 공연 규모에 걸맞은 의자와 보면대, 높이가 상승하는 덧마루, 다시 그에 걸맞은 지휘자와 연주자와 악기를 담고 비우고 담고 비우고 매일매일 이뤄지는 공연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그 무대는 언제나 변함이 없다.
마치 하루 중 두 시간만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콘서트홀의 무대는 시간의 예술이라는 음악을 그 안에 품고, 그 시간의 앞뒤로 밀물과 썰물처럼 음악회를 들이고 보낸다. 피아노 독주회의 음악 분수가 샘솟는 날, 피아노의 협연이 열리는 날 모두, 피아노는 그 입체적 공간의 중심에 우뚝 선다. 몸의 일
이십 년 넘게 클래식 음악회의 무대감독 일을 해오고 있지만, 여전히 완벽히 해내지 못하는 일 중 하나가 피아노 전환이다. 우측 무대에서 혹은 좌측 무대에서 무대의 중앙으로 아름답게 피아노를 옮기는 그저 단순해 보이는 그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것은,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늘 아쉬움이 남는, 쉽지 않은 일이다. 여성 무대감독들과 지금은 많은 일을 하지만, 2015년 6월 26일과 27일 마에스트로 미하엘 잔데를링과 드레스덴 필하모닉의 공연에서 첫 콘서트홀 피아노 전환을 하던 여성 무대감독과의 기억을 잠시 옮긴다. 당시에 쓰던 비속어 하나도 곁들여.
『피아노를 선택하고, 리허설에서 위치가 정해진 피아노를 바라보다 2°쯤 기울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약간 틀어진 느낌의 피아노. 피아노 바퀴마다 마킹(무대 위 표시)을 준비하며 한 바퀴 각각 네 개의 표시를 했다. <피델리오> 서곡으로 문을 연 양일 모두, 서곡이 시작되면 여성 감독을 지휘자 출입문 뒤로 부른다. 일을 하며 여성과 콘서트홀 무대 중앙으로 피아노를 옮기는 일은 처음 경험해 보는 일이다. 무대에 들어가서 피아노 건반 쪽을 잡고 서서 전환을 시작하며 바라보는 여성 후배는 여전히 생경하다. 이틀 모두 피아노 전환을 잘 끝낸 후배 감독이 기특하기도, 신기하기도 하다. 첫날 피델리오 서곡이 연주될 당시 지시했던 후배와의 '기까끼'를 한 번 설명해 본다.
"들어가서 피아노 덮개 쪽을 잡아. 넌 네 오른편만 보며 들어가는 거야. 객석 쪽 바퀴는 내가 볼 테니 전혀 쳐다보지 말고. 각각의 바퀴마다 네 개의 마킹이 있으니 바퀴 바로 위 다리 끝부분 직사각형 모서리들을 거기에 맞추고, 맞추자마자 다시 문으로 가서 의자를 가져와. 난 네가 의자를 가져오는 동안 건반 덮개를 열고 피아노 수평 보고 고정하고 피아노 리드를 열게. 그리고 오늘은 녹음 마이크가 있으니 녹음 마이크 역시 내가 올려놓을게. 아마 그러면 대충 시간이 맞을 거다. 그리고 같이 걸어 나와. 알았지?”
처음 해 보는 여성 후배와의 피아노 전환. 처음 겪어보는 일투성이였던 이틀이 갔다. 여든이 넘은 피아노 조율 명장이, 40세 중반 20여 년 경력의 조율사들을 보며 '새내기’라 부르곤 했는데, 나 역시 갈 길이 멀다.』
고객의 소리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의 공연이 연달아 이어진 2016년 10월 23일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와 10월 24일 피아니스트 머레이 페라이어 공연. 두 음악회를 모두 참여한 한 고객은 각 공연에 하나씩 문의를 해왔는데, 참 대단한 고객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그 답을 내는 과정은 지금 일하고 있는 곳이 일할 만한 곳이라는 것을 잘 설명해 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먼저 안드라스 쉬프의 공연에 대한 문의는 대략 다음과 같다.
"피아노 공연에는 빛 반사를 피하려고 피아노 덮개를 천으로 덮고는 했는데, 이날 피아노 덮개에 있던 금색(노랑색)의 물건은 무엇인가요?"
9년이 지난 지금, 이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아르떼 매거진>과 진행한 인터뷰에 가장 정확하게 표현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순서상 첫 번째였던 머레이 페라이어 공연에 대한 문의는 아래와 같다.
"연주 중에 공연장에서 나무가 '딱딱’거리는 것 같은 소리가 났는데, 이 소리는 어디에서 난 건지 알고 싶습니다."
공연 당일 공연장에서 발생하는 소음의 원인에 대한 무수히 많은 변수가 존재할 수 있고, 무대감독으로서 생각해 볼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은 소프트 페달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 소음이다. 업라이트 피아노처럼 페달을 밟으면 거대한 펠트가 현의 위를 덮는 약음 방식이 아닌 그랜드 피아노는, 약음 페달을 밟는 동시에 88개의 건반이 일제히 오른쪽으로 미세하게 움직인다. 그 과정에서 페달을 밟는 강도에 비례해 건반이 오른쪽 벽에 부딪히는 소리 역시 커진다. 이 소리를 청중이 혹시 들었을 수도 있고, 만약 그렇다면 피아노와 굉장히 가까운 곳에 있어야 들을 수 있음을 고객의 소리 담당자에게 정리해서 건네줬다.
여기까지만 해도 지금 일하는 곳은 일할만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고객의 소리 담당자에게 답변의 참고 글을 보내고 피아노 창고 앞을 지나는데, 피아노 조율사가 그곳에서 나온다.
"유레카!!!" 정도의 환청이라고나 해야 할까???
피아노에서 날 수 있는 소리의 표현 중 '딱딱‘이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는 조율사는 피아노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소리 하나를 먼저 표현해 준다. 건반 하나에 1개의 동선과 2개의 동선을 사용하는 저음부의 건반에서 울림 페달을 살며시 놓을 때, 댐퍼가 현을 잡으러 내려앉으면서 아직 진동이 끝나지 않은 동선의 코일들을 덮는 과정에서, '웨에엥' 소리를 낼 수 있고, 이것은 피아노가 숙명처럼 지니는 소리임을 이야기해 준다.
머레이 페라이어는 아마도 약음 페달을 앞쪽으로 세게 밀면서 밟았을 가능성이 크고, 그 과정에서, 조율사가 직접 그린 그림에서 볼펜으로 굵게 칠한 부분에 발생하는 마찰로 나는 소리가 '딱딱'과 닮아있으며, 이 소리는 머레이 페라이어가 사용한 콘서트 그랜드 115 모델에서만 나고 있음을 찾았다는 것을, 그곳에 윤활유 성질의 것을 주입함으로써 그 소리가 없어졌음 또한 조율사는 이야기해 준다. 마음의 일
2024년 12월 11일 예술의전당 음악당 콘서트홀에서는 안젤라 휴이트 피아노 리사이틀이 열렸다. 1층 D블록 2열에 앉아 공연을 보았던 김민아 청중은 집으로 돌아가며 장문의 공연 관람평을 보내주었는데, 그중 일부분을 발췌해 본다.
『캐나다 태생의 안젤라 휴이트는 현존 피아니스트 중 최고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해석자로 정평이 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1부의 바흐(BWV 903) 연주보다 이 변주곡이 훨씬 좋았다.
1층 D블록 2열에 앉은 덕분에 연주자의 표정과 움직임을 생생히 볼 수 있었다. 손은 보이지 않는 위치였지만 열린 콘서트 그랜드 덮개로 반사된 해머의 움직임이 보였다. 검은 등을 지닌 거북이의 모습 같은 댐퍼의 움직임, 타건에 바로 맞닿은 해머의 움직임, 페달의 작동까지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연주자는 중간중간 객석으로 눈을 마주쳤고, 고개를 돌리면 닿을 위치에 앉은 나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나름대로 공감의 눈빛을 쏘면서 1부의 모차르트와 바흐, 2부의 헨델을 들었다.
2부의 마지막인 브람스 곡에서 이야기가 달라진 것은, 페달을 활기차게 밟는 4번 변주곡부터였다. 댐퍼 페달을 밟는 피아니스트의 구두 앞코, 페달부터 피아노 몸체까지 위쪽으로 쭉 연결된 금색 막대(로드)의 움직임, 힘차게 건반을 두드리면서 페달을 짧게 끊어 밟는 움직임에서, 힘차게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마리오네트가 보였다. 얼마나 역동적이었는지 무대 바닥을 발로 구르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가끔 카메라에 잡혀 보게 되는 피아노 덮개 안쪽의 모습은 음악과는 동떨어진 색다른 아름다움 같고 그래서 오히려 음악이 주는 여러 상상으로의 전이(轉移)를 도와주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피아노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객석에서의 감상평이 신선하며 음악에 대한, 음악회에 대한, 끝으로는 피아노에 대한 사랑 역시 잘 담고 있는 듯해서 기억에 남은 공연 관람평이었다. About Piano
제식훈련 용어 중 '뒤로 돌아‘라는 구호가 있다. 영어로는 About Face! 라고 표현한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이 영어 표현을 처음 접한 순간 about이라는 전치사는 동그란 원의 형태를 말하고 있는 것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컴퍼스의 날카로운 한쪽으로 그려야 할 원의 중심을 콕 짚고 원하는 만큼의 지름을 정해 휙 돌리는 그 모습. 18세기를 시작하며 태어난 피아노는 원의 중심이고 이제 무한대의 지름쯤 가졌을 피아노의 이야기들은 그 원 안에 담겨 있는 무수한 점들이며 그 모든 점의 목적은 피아노를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전치사의 목적어‘라는 그 익숙한 표현처럼.
무수히 많은 그 이야기 중,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5번 1악장에 담긴 건반악기 이야기를 생각해 보는 일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피아노가 발명되고 고작 이십여 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 작곡된 작품. 요즘 말로 '될놈될‘ 악기임을 이미 간파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삽입한 쳄발로의 카덴차. 영상에서 보이는 쳄발로 카덴차는 보통 '이례적인‘이란 정도의 표현으로 언급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혁명적‘이란 표현이 더 적절한 것이 아닐까 싶다.
[칼 리히터가 보여주는 쳄발로의 카덴차가 담긴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5번 1악장]
2025년 한 해도 통주저음이란 이름 아래 선율을 받쳐주는 궂은 역할에서 시작해 무대 중심에서 이야기꽃을 끊임없이 피워내는 피아노의 곁에서, 또 한 해를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