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살롱 음악회 열어주는 의사 "피아니스트 꿈을 후원으로 이뤄요" [음표 위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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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일 PAPA 협회장X 나지혜 살롱드닥터튠즈 원장
클래식 음악사를 빛낸 작곡가들에게는 열렬한 후원자가 있었다. 하이든은 에스테르하지 가문과 깊은 인연을 맺었고 베토벤은 루돌프 대공, 차이콥스키는 폰 메크 부인의 지원을 받았다. 이들은 단순한 후원자와 예술가의 관계를 넘어 서로의 비전을 공유하며 인간적 유대와 우정을 쌓아 나갔다.
한국 음악계에서도 후원자와 예술가가 만나 시너지를 내는 사례가 있다. 피아니스트 한상일과 청담동 피부과 '살롱드닥터튠즈'의 나지혜 대표 원장도 그 중 하나다. 클래식 음악애호가인 나 원장은 한상일 협회장이 맡고있는 비영리단체 '아시아 퍼시픽 피아니스트 협회'(PAPA)의 연주 활동을 후원하고 있다. 또, 병원에 마련된 라운지를 협회 음악가들을 위한 살롱 콘서트장으로 활용중이다. 지난달 피아니스트 한상일과 나지혜 대표 원장을 한 자리에서 만났다. ▷매우 사적인 후원 관계인 것 같아요. 두 분은 어떻게 만나게 되셨나요.
한 : 나 원장님은 제 오랜 지인의 가족이에요. PAPA를 만든다고 하니까 그 지인이 원장님을 소개해 주셨어요. 원장님이 워낙 클래식 애호가니까 서로 알고 지내면 좋겠다 싶었던거죠. 저희 PAPA를 원장님께서 도와주신다고 하셔서 더 탄력을 받게 됐어요.
나 : 유럽이나 미국의 학회에 가면 꼭 짬을 내서 오페라, 콘서트를 다녀와요. 어릴 때 피아노로 예원학교에 입학하고 싶었는데, 매일 3~4시간 넘게 피아노를 쳐야한다는 거예요. 깔끔히 포기했죠(웃음). 연주회에 가면 팜플렛에 후원자 명단이 뜨잖아요. 세종솔로이스츠 공연을 보러갔더니 1억원 넘게 후원한 사람들도 많더군요. 피아니스트가 되진 못했지만, 저도 그런 명단에 이름을 올려보고 싶었어요, 얼마나 영광일까 싶었죠.
▷애호가에 머물수도 있었는데, 후원까지 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나 : 제가 개원을 한 지 8년이 됐는데요, 그동안 삶을 즐길 여유가 없었어요. 오후 8~9시에 퇴근하면 하루가 끝나죠. 그러다가 가끔 짬을 내서 연주회를 가면, 연주자가 저걸 다 외우고 손으로 익히려면 얼마나 애를 썼을까 감동을 받아요. 한 분야에 깊게 몰입을 해본 사람이라면 공감이 갈 텐데, 그런 감동이 좋아서 이들을 후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PAPA 소속 피아니스트들도 보면 거북목이 되도록 연습을 하셨더라고요.(웃음) 피아니스트 한상일은 지난해 9월 아시아 피아니스트들의 협력을 위해 PAPA를 만들었다. 한상일을 중심으로 피아니스트 함수연(허베이 대학교 교수), 윤지에 첸(베이징 중앙 음악원 교수), 알빈 주(톈진 줄리아드 음악원 교수),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성신여대 교수) 등 16명의 아시아 피아니스트들이 협회 회원이다. 이들은 지난달 29일 살롱드닥터튠즈에서 첫 연주회를 열었고, 내달에는 서울에서 피아노 페스티벌을 연다.
▷피아니스트들은 주로 개인적으로 활동하잖아요. 독주 악기의 성격이 강하니까요. 피아니스트들끼리 뭉치는 사례는 드물었던 것 같아요.
한 : 클래식 시장이 아시아로 넘어오고 있어요. 요즘 국제 콩쿠르를 보면 아시아인 없이는 안 될 정도죠. 전세계 음악 전공생들의 상당수가 아시아인들이기 때문이에요. 클래식 음악의 보존에서 아시아인들이 중요하다는 의미죠. 그래서 유럽처럼 아시아 음악가들도 함께 뭉치면 시너지를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결성하게 됐어요. 음악 영재들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일, 연주자들을 위한 여러 기획 무대 등을 계획하고 있답니다. 올해 4번의 정기 연주를 살롱드닥터튠즈 라운지에서 할 거예요. 살롱드닥터튠즈는 올해 8월 서울 청담동에 개원했다. 나 원장이 기존에 운영중인 피부과 닥터튠즈 클리닉의 '블랙라벨' 병원인 셈이다. 프리미엄 피부과를 컨셉트로 인테리어, 서비스에서 모두 최상의 품질을 목표로 한다.
▷피부과에서 공연을 하는 건 특별한 방식인 것 같아요. 피부과와 음악이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나 : 후원의 목적도 있지만, 사실 저희 병원의 취지와 잘 맞았어요. 피부과는 더 높은 삶의 질을 원하는 사람들이 찾아오잖아요. 이들이 추구하는 게 더 아름다운 삶이고요. 그래서 문화 향유에도 니즈가 있을거란 생각을 막연히 했었고, 그래서 내부에 라운지를 만들었어요. 처음에는 와인 클래스, 미술 클래스 이런 것들을 생각했는데 협회장님이 살롱 음악회를 하면 어떻겠냐고 하시더군요. 바로 '이거다' 싶었죠. 단순히 돈많은 청담동 아줌마들의 놀이터가 아니라, 진정으로 아름다움을 향유할 줄 아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었어요. 이를 위해 PAPA와의 관계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봤어요. 특히, 클래식 음악은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했죠.
▷한마디로 외적, 내적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오는 곳이네요
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건 인간의 자명한 본능이에요. 저희 세 살 아들만 봐도 예쁜 누나를 좋아하고, 아름다운 선율에 귀를 기울이죠. 아름다움이 사람에게 주는 행복감과 자신감이 삶의 질을 좌우한다고 봐요. 우리나라가 경제 수준도 올라가고 의식 수준도 높아지면서 미의식, 미감의 시대가 왔다고 생각해요. 물론 피부과는 그중에서도 외적인 부분을 치료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이곳에서 향유하는 문화예술의 아름다움을 통해 누리는 정서적 행복감도 분명히 가치가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한국 음악계에서도 후원자와 예술가가 만나 시너지를 내는 사례가 있다. 피아니스트 한상일과 청담동 피부과 '살롱드닥터튠즈'의 나지혜 대표 원장도 그 중 하나다. 클래식 음악애호가인 나 원장은 한상일 협회장이 맡고있는 비영리단체 '아시아 퍼시픽 피아니스트 협회'(PAPA)의 연주 활동을 후원하고 있다. 또, 병원에 마련된 라운지를 협회 음악가들을 위한 살롱 콘서트장으로 활용중이다. 지난달 피아니스트 한상일과 나지혜 대표 원장을 한 자리에서 만났다. ▷매우 사적인 후원 관계인 것 같아요. 두 분은 어떻게 만나게 되셨나요.
한 : 나 원장님은 제 오랜 지인의 가족이에요. PAPA를 만든다고 하니까 그 지인이 원장님을 소개해 주셨어요. 원장님이 워낙 클래식 애호가니까 서로 알고 지내면 좋겠다 싶었던거죠. 저희 PAPA를 원장님께서 도와주신다고 하셔서 더 탄력을 받게 됐어요.
나 : 유럽이나 미국의 학회에 가면 꼭 짬을 내서 오페라, 콘서트를 다녀와요. 어릴 때 피아노로 예원학교에 입학하고 싶었는데, 매일 3~4시간 넘게 피아노를 쳐야한다는 거예요. 깔끔히 포기했죠(웃음). 연주회에 가면 팜플렛에 후원자 명단이 뜨잖아요. 세종솔로이스츠 공연을 보러갔더니 1억원 넘게 후원한 사람들도 많더군요. 피아니스트가 되진 못했지만, 저도 그런 명단에 이름을 올려보고 싶었어요, 얼마나 영광일까 싶었죠.
▷애호가에 머물수도 있었는데, 후원까지 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나 : 제가 개원을 한 지 8년이 됐는데요, 그동안 삶을 즐길 여유가 없었어요. 오후 8~9시에 퇴근하면 하루가 끝나죠. 그러다가 가끔 짬을 내서 연주회를 가면, 연주자가 저걸 다 외우고 손으로 익히려면 얼마나 애를 썼을까 감동을 받아요. 한 분야에 깊게 몰입을 해본 사람이라면 공감이 갈 텐데, 그런 감동이 좋아서 이들을 후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PAPA 소속 피아니스트들도 보면 거북목이 되도록 연습을 하셨더라고요.(웃음) 피아니스트 한상일은 지난해 9월 아시아 피아니스트들의 협력을 위해 PAPA를 만들었다. 한상일을 중심으로 피아니스트 함수연(허베이 대학교 교수), 윤지에 첸(베이징 중앙 음악원 교수), 알빈 주(톈진 줄리아드 음악원 교수),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성신여대 교수) 등 16명의 아시아 피아니스트들이 협회 회원이다. 이들은 지난달 29일 살롱드닥터튠즈에서 첫 연주회를 열었고, 내달에는 서울에서 피아노 페스티벌을 연다.
▷피아니스트들은 주로 개인적으로 활동하잖아요. 독주 악기의 성격이 강하니까요. 피아니스트들끼리 뭉치는 사례는 드물었던 것 같아요.
한 : 클래식 시장이 아시아로 넘어오고 있어요. 요즘 국제 콩쿠르를 보면 아시아인 없이는 안 될 정도죠. 전세계 음악 전공생들의 상당수가 아시아인들이기 때문이에요. 클래식 음악의 보존에서 아시아인들이 중요하다는 의미죠. 그래서 유럽처럼 아시아 음악가들도 함께 뭉치면 시너지를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결성하게 됐어요. 음악 영재들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일, 연주자들을 위한 여러 기획 무대 등을 계획하고 있답니다. 올해 4번의 정기 연주를 살롱드닥터튠즈 라운지에서 할 거예요. 살롱드닥터튠즈는 올해 8월 서울 청담동에 개원했다. 나 원장이 기존에 운영중인 피부과 닥터튠즈 클리닉의 '블랙라벨' 병원인 셈이다. 프리미엄 피부과를 컨셉트로 인테리어, 서비스에서 모두 최상의 품질을 목표로 한다.
▷피부과에서 공연을 하는 건 특별한 방식인 것 같아요. 피부과와 음악이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나 : 후원의 목적도 있지만, 사실 저희 병원의 취지와 잘 맞았어요. 피부과는 더 높은 삶의 질을 원하는 사람들이 찾아오잖아요. 이들이 추구하는 게 더 아름다운 삶이고요. 그래서 문화 향유에도 니즈가 있을거란 생각을 막연히 했었고, 그래서 내부에 라운지를 만들었어요. 처음에는 와인 클래스, 미술 클래스 이런 것들을 생각했는데 협회장님이 살롱 음악회를 하면 어떻겠냐고 하시더군요. 바로 '이거다' 싶었죠. 단순히 돈많은 청담동 아줌마들의 놀이터가 아니라, 진정으로 아름다움을 향유할 줄 아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었어요. 이를 위해 PAPA와의 관계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봤어요. 특히, 클래식 음악은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했죠.
▷한마디로 외적, 내적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오는 곳이네요
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건 인간의 자명한 본능이에요. 저희 세 살 아들만 봐도 예쁜 누나를 좋아하고, 아름다운 선율에 귀를 기울이죠. 아름다움이 사람에게 주는 행복감과 자신감이 삶의 질을 좌우한다고 봐요. 우리나라가 경제 수준도 올라가고 의식 수준도 높아지면서 미의식, 미감의 시대가 왔다고 생각해요. 물론 피부과는 그중에서도 외적인 부분을 치료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이곳에서 향유하는 문화예술의 아름다움을 통해 누리는 정서적 행복감도 분명히 가치가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