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한남동 집회 인파. /영상=김영리 기자
6일 오후 한남동 집회 인파. /영상=김영리 기자
"한남오거리·순천향대학병원 안 가요. 이태원 쪽으로 좌회전해서 크게 돌 겁니다."

6일 오전 9시30분께 서울 강남구 신사역 시청 방면 중앙 버스전용차로 정거장. 한남대교를 목전에 둔 400번 버스 기사가 손님에게 연신 무정차를 공지했다. 정거장은 버스에 탑승했다가 도로 내리는 시민들로 혼란 그 자체였다.

지난주부터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일대가 북적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관저 앞 탄핵 찬반 집회로 인파가 몰린 탓이다. 평소 한남대교가 경기 남부와 서울 북부 업무 지구를 잇는 교통 요지의 기능을 하던 터라 출퇴근길 시민들은 일부 버스 무정차와 차량 정체에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인근 일부 자영업자는 늘어난 유동 인구에 매출이 늘어 반색하는가 하면, 혼잡한 분위기로 인해 손님이 줄었다는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상권의 특성에 따라 유동 인구 증가가 미치는 영향이 다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무정차'에 시민 불편 ↑

집회로 인해 버스정류장을 이용할 수 없어 도로 위에서 버스를 타는 사람들. /사진=이민형 기자
집회로 인해 버스정류장을 이용할 수 없어 도로 위에서 버스를 타는 사람들. /사진=이민형 기자
현재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양재~한남IC와 시청 방향 한남대교~한남대로 일대는 출퇴근길 시간대 외에도 차들이 온종일 서행하고 있다. 서울시 교통정보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께 서울 도심 평균 속도는 17.3km/h인 가운데, 대통령 관저가 위치한 한남오거리 일대는 6.7km/h다. 시위대와 경찰 버스 등으로 일부 차로가 통제된 상황이다.

이 일대서 만난 402번 버스 기사 A씨는 "집회 인파에 따라 통제되는 차로 개수는 유동적"이라며 "지금은 한남대교를 건널 수 있지만 주말엔 양방향 통제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어 "배차 간격이 길어지면 50분까지 늘어지는 상황"이라며 "손님들 타실 때 사전 공지를 하고 있어 버스 탑승객은 현저히 줄었다"고 밝혔다.

순천향대학병원 광역·시내버스 정거장에서는 시민들이 통제된 도로 중간까지 나가 힘겹게 승·하차하고 있었다. 오전 10시께 정거장에서 만난 시민 문모 씨(49)는 "출근길에 환승하러 왔다"며 "평소 타는 정류장에서는 탈 수가 없어 이곳까지 걸어왔다"고 털어놨다.

분당에서 왔다는 60대 강모 씨는 "용산역 가는 버스에 탑승하기 위해 15분 이상 기다리고 있다"며 "이미 약속 시간보다 늦었다. 언제 탈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고 푸념했다.

평소 광역버스를 이용해 광화문을 오가던 20대 직장인 박모 씨는 "지난주부터 지하철로 통근하고 있다"며 "한남대교가 막혀 버스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직장 동료가 한둘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히려 노쇼 늘어" VS "편의점 고객 1500명"

나인원한남 옆 카페거리가 텅 빈 모습. 사진=이민형 기자.
나인원한남 옆 카페거리가 텅 빈 모습. 사진=이민형 기자.
식당·카페·편의점 등 주요 외식 상권 경우 한남대로를 두고 좌우로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대통령 관저 맞은편에 위치한 부촌 '나인원 한남' 북편의 이태원관광특구 상권은 집회 인파로 영업에 피해를 받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가 하면, 대통령 관저 북편 상권은 영업이 너무 바빠 취재진은 응대할 수 없다며 손사래 칠 정도로 바쁜 모양새였다.

나인원한남 북편 골목에서 예약제 양식당을 운영하는 이모 씨는 "지난주부터 노쇼와 지각 손님이 많아졌다. 인근 교통이 너무 혼잡해 이해는 된다"면서도 "확실히 골목에 오가는 사람이 늘긴 했지만 매출 차이는 없고 도리어 영업에 불편이 늘고 있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일대에서 '소개팅' 장소로 잘 알려진 한 양식당의 직원도 "지난주부터 젊은 커플이나 소개팅 목적으로 오시는 손님이 확실히 줄었다"며 "평소 조용한 분위기가 장점인 골목인데 평일에도 집회가 이어져 이 일대 인구 유입이 우리 식당에는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밝혔다.

인근 카페도 소음으로 인한 매출 감소를 호소했다. 실제로 이 카페는 매장 출입문을 닫아도 바깥의 시위 소음이 매장 내부에서 선명히 들렸다. 카페 직원은 "평소 대비 손님이 30%가량 줄었다"며 "외국인 손님의 발길은 아예 끊겼다고 보면 된다. 분위기가 뒤숭숭하고 시끄러워 그런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대 골목에서 만난 스위스인 여행객 안나 씨(23)는 "친구들이 '한남동은 가급적 가지 말라, 위험하다'고 말해줬다"며 "해외여행객 사이에서 한남동도 유명하지만 요즘에는 대부분 성수나 명동으로 몰리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손님은 늘었지만 매출이 증가하지는 않았다는 업주도 있었다. 점심 장사는 잘되는 반면 저녁 단체 손님이 끊겨 객단가가 줄었다는 설명이다. 순천향대학병원 인근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임모 씨는 "점심때 밥이 부족해 즉석밥을 급히 살 정도로 찾아오는 사람은 늘었다"면서도 "우리는 저녁에 고기를 판매해야 하는 가겐데 주변이 혼잡해 저녁 단체 약속이 끊겨 매출은 그대로"라고 설명했다.
한강진역 인근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등 즉석 식품 매대가 텅 빈 모습. /사진=박수림 기자
한강진역 인근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등 즉석 식품 매대가 텅 빈 모습. /사진=박수림 기자
대통령 관저 북편에 위치한 골목 상권은 쾌재를 불렀다. 이 골목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40대 백모 씨는 "11년 장사 이래 가장 바쁘다. 원래 인적이 드문 위치인데 최근에는 오픈 시간을 한 시간 앞당길 정도로 손님이 많다"고 밝혔다. 백 씨는 "일주일 치 쓰레기가 하루에 나오고 있다"며 "재료가 소진될까 봐 주문량도 늘렸다"고 덧붙였다.

인근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50대 김모 씨도 "손님이 폭발적으로 늘었다"며 "평소 하루 300~400명 정도 오신다면 요즘에는 하루에 1500명씩 방문한다. 응대가 늦어지는 탓에 줄이 길어지고, 손님들끼리 언성을 높이는 상황도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손님 연령대와 관련해서는 "평소 외국인과 2030 젊은 손님이 다수였는데 요즘에는 60~70대 손님이 많다"고도 부연했다.

또 다른 카페 업주인 박모 씨도 "한동안 불경기 걱정이 컸는데 시위 덕분에 잊게 됐다"며 "나라가 혼란스러워지면서 매출이 늘어 '웃픈'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날 일대 백반집이나 중식집은 늦은 오후까지도 손님이 물밀듯 밀려드는 모습이었다.

지난 주말 친구와의 약속을 위해 한남동을 찾았다는 김모 씨(35)도 "가는 곳마다 카페가 만석이라 1시간을 돌아다녀야 했다"고 전했다.
한남대로 21길 사거리 앞 분식집과 카페에서 사람들이 대기줄을 선 모습. /사진=박수빈 기자
한남대로 21길 사거리 앞 분식집과 카페에서 사람들이 대기줄을 선 모습. /사진=박수빈 기자
한남동 상권이 가게마다 상반된 반응을 보인 것과 관련, 김영갑 KYG 상권분석연구원 교수는 "시위 인파의 체류 시간이 길다 보니 외식업과 편의점 등 특수를 누린 상권이 분명 있을 것"이라며 "화장실을 이용해야 해서 식당이나 편의점을 찾는 인파도 많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다만 "2030 세대들은 평소 기대하던 한남동의 분위기와 달라 이 일대를 방문하는 게 부담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평소 젊은 층이 많이 찾던 카페나 식당은 매출에 악영향이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도 "대통령 관저 근처는 나인원한남과 한남더힐 등 고가 아파트가 위치한 고급상권"이라며 "고급상권 고객 대부분 자가용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집회로 도로가 막혀 기존 고객층이 한남동을 방문하기 어려워졌다"고 짚었다.

박수빈/박수림/이민형 한경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