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골든 글로브 시상식은 넷플릭스 작품 '에밀리아 페레즈'와 A24 작품 '브루털리스트' 두 작품이 휩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밀리아 페레즈'는 성전환 수술을 받고 여자가 되는 변호사, 리타의 이야기를 다루는 뮤지컬 영화다. 영화는 뮤지컬 부문에서 최고 작품상과 여우 주연상 (조이 살디나) 을 포함 총 네 개의 주요 부문을 수상했다.
<에밀리아 페레즈> 스틸컷 / 사진. ⓒIMDb
<에밀리아 페레즈> 스틸컷 / 사진. ⓒIMDb
또 다른 화제작 '브루털리스트'는 세 시간 반에 가까운 러닝타임의 에픽 영화로 홀로코스트 생존자가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건축가로 성공하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는 최고 작품상과 남우 주연상(에이드리안 브로디), 최고 감독상을 포함 네 개의 주요 부문을 수상했다. 두 작품 모두 3월에 열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활약이 기대되는 유력 후보작이기도 하다.
<브루털리스트> 포스터 / 사진. ⓒIMDb
<브루털리스트> 포스터 / 사진. ⓒIMDb
넷플릭스 제작의 작품과 A24 제작의 작품이 나란히 올해 골든 글로브의 메이저 키워드가 되었다는 사실은 현재의 미디어 산업의 지형에서 주목해야 할 기록이다. 이들의 활약은 넷플릭스는 배급과 스트리밍 뿐에 더해 제작사로서 명실상부 할리우드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기업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방증, 그리고 상업영화의 일반 관객보다는 시네필들에게 인정을 받았던 아트하우스 영화들에 집중하던 A24는 폭스나 파라마운트 등의 전통 할리우드 스튜디오에 밀리지 않는 메이저 제작사로 부상했다는 증거이다.

그 외 주목할 만한 수상이라면 '서브스턴스'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데미 무어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랑과 영혼'의 청초한 몰리 역할로 국내에서도 사랑받았던 그녀는 꽤 오랜 시간 동안 할리우드의 메인 여배우로 활약했지만, 이번 여우주연상은 놀랍게도 그녀의 첫 수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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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데미 무어 / 사진출처. demimoore 인스타그램
배우 데미 무어 / 사진출처. demimoore 인스타그램
젊음에 집착하는 50대의 여배우, ‘엘리자베스’ 캐릭터는 잦은 성형수술로 타블로이드의 커버를 장식했던 데미 무어 본인의 삶을 캐리커처 한 듯한 인물로 무어에게 이번 작품의 도전은 적지 않은 용기를 필요로 했을 것이다. ‘팝콘 배우 (popcorn actress)’라고 사람들이 그녀를 칭했을 때 이런 상은 받을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던 데미 무어의 수상 소감은 그렇기에 그녀의 어떤 대표작보다도 더 감동적이다.

드라마 시리즈 부문에서 최다 수상 (네 개 부문)을 기록한 '쇼군' 역시 올해 골든 글로브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다. 대부분이 일본 배우 캐스트로 이루어진 이번 '쇼군' 시리즈의 압승은 지난 골든 글로브의 인종 차별적 전통과 이슈를 바로 잡는 데도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디즈니+ 드라마 <쇼군> 포스터 / 사진. ⓒIMDb
디즈니+ 드라마 <쇼군> 포스터 / 사진. ⓒIMDb
지난 2022년 골든 글로브는 작품의 51% 이상이 비영어 (대사)로 제작되면 자국 (미국) 작품이어도 자동으로 ‘외국어영화상/외국어드라마상’ 부문으로 분류되는 기준으로 많은 산업 관계자와 관객들에게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이로 인해 골든 글로브는 NBC로부터 방영을 취소당하고, 주요 스폰서들과 수많은 할리우드 배우의 보이콧을 받는 등 곤혹을 감내해야 했고 이후로 여러 가지 쇄신을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쇼군>의 최다 수상은 골든 글로브의 그러한 흑역사에 대한 반성이자, 인종과 국가를 불문하고 좋은 작품과 창작자를 존중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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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일본 배우 아사노 타다노부의 수상은 모든 이슈를 초월해서 반가운 소식이다. 타다노부는 '이치 더 킬러'(미이케 다카시, 2001), '녹차의 맛'(이시이 카츠히토, 2006) 등 2000년대 초반에 부상했던 작가주의 일본 장르 영화들에서 가장 활약했던 주역이자, 이제는 일본 영화를 대표하는 ‘국민배우’이기도 하다.
배우 아사노 타다노부 / 사진출처. tadanobu_asano 인스타그램
배우 아사노 타다노부 / 사진출처. tadanobu_asano 인스타그램
그는 2010년대부터 '미드웨이' '사일런스' '토르'를 포함한 다양한 할리우드 대작들에서 주요한 캐릭터를 맡으며 두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오랜 시간 동안 제작 국가와 장르, 스케일을 넘나드는 프로젝트에 참여해 온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배우로 타다노부의 수상은 어쩌면 다소 늦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이번 골든 글로브 수상은 그러한 맥락에서 주연상과 공로상을 함께 인정받은 것과 같은 귀한 수상이 될 것이다.

'오징어 게임 2'는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수상을 하지 못했지만, 올해 골든 글로브는 많은 유의미한 성취와 변화를 보여주었다. 특히 성 정체성과 인종의 다양성을 강조한 이번 시상식의 수상작들, 그리고 이러한 철학을 지지하는 넷플릭스와 A24의 압승은 현재 산업에 속해 있는 모든 창작자와 결정권자들이 간과해서는 안 될 귀중한 ‘추이’가 아닐까 한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