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성공은 운의 결과일까?
현대 민주주의를 최초로 현실에 이뤄낸 미국에도 ‘왕’이라고 불린 이들이 존재했다.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1835년생), 철도왕 스티븐 제이 굴드(1836년생), 금융왕 존 피어폰트 모건(1837년생), 석유왕 존 데이비슨 록펠러(1839년생)가 주인공이다. 그런데 왕들의 놀라운 공통점이 보이지 않는가? 모두 5년 사이에 태어났다. 한국은 어떨까? LG 구인회(1907년생), 삼성 이병철(1910년생), 두산 박두병(1910년생), 현대 정주영(1915년생). 8년 사이에 위대한 창업자들이 태어났다.

기묘한 현상은 지금도 반복된다.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1955년생), 애플 스티브 잡스(1955년생), 구글 에릭 슈밋(1955년생), 그리고 일본의 손정의(1957년생)! 이제 완전히 이상하게 보이는가? 이쯤 되면 내 사주에는 어떤 팔자가 숨겨져 있는지 확인하러 갈 순서인가? 음양오행의 신묘한 작용? 그도 아니면 기묘한 혜성이 일정 주기로 지구를 스쳐 가며 천재들의 씨를 왕창 흩뿌리는 것일까?

산업혁명 이후 세상을 바꾼 변수는 종교와 이념에서 증기기관, 전기, 내연기관, 컴퓨터, 인터넷, 모바일 같은 혁신적인 기반 기술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 기술들은 느닷없이 떼로 몰려서 등장하는 본성이 있다. 그래서 기반 기술이 등장하고 일정한 성숙기를 마치는 특정 시점에 여울목을 만난 것처럼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며 기존 산업 구조를 엎어버린다. 혼란스러운 혁명기가 한바탕 지나면 새롭게 구축된 패러다임 안에서 개선과 성장이 차분하게 전개된다. 이런 패턴이 수도 없이 반복되고 있다. 그 여울목 현상이 벌어지면 기회의 문이 느닷없이 열렸다가 빠르게 닫혀버린다. 그 찰나의 기회를 낚아챌 수만 있으면 엄청난 성공이 가능한데 그 순간에 뛰어들 수 있는 연령과 역량, 배짱을 갖춘 사람에게 별의 순간이 열린다. 그래서 거인들이 한 시점에 몰려서 등장하는 것이다.

과학의 영역에도 위대한 성취를 거의 같은 시점에 이뤄내 자기가 원조라고 드잡이한 사례가 무수하다. 미적분을 동시 발명한 뉴턴과 라이프니츠, 진화론의 찰스 다윈과 앨프리드 월리스, 전구의 토머스 에디슨과 조지프 스완, 전화기의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과 엘리샤 그레이가 그랬다. 내가 안 하면 누군가 해버리는 상황에서 ‘그때’라고 판단될 때 학교나 회사도 때려치우고 과감하게 뛰어들어 물결을 타야 한다. 마이클 델,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일론 머스크, 다니엘 에크(스포티파이), 에번 윌리엄스(트위터)가 그렇게 성공했다. 그들도 졸업할 때까지 미루며 상황을 지켜봤으면 누군가가 기회를 낚아챘을 거고 문은 닫혀버렸을 것이다.

문제는 ‘진짜’ 기회의 창이 열렸을 때만 과감해야 한다는 점이다. 전설적 창업자를 모방해보겠다고 어설픈 기회를 ‘이때’라고 착각하고 뛰어들었다가 창피당한 사례가 일렬종대로 지구 세 바퀴다.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혁명적인 여울목 단계보다 정상적인 상태가 훨씬 더 길다. 2007~2014년 사이 미국의 창업자 270만 명을 분석했더니 창업이 가장 빈번한 나이는 41세였고 성공 확률이 가장 높은 연령은 46세였다. 중퇴가 성공의 비결이 아니다. 좋은 학교와 직장에서 쌓은 경험이 성공에 순기능을 발휘한다는 결론이다. 뭐 교수들이 한 연구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런데 이 대목에서 다시 반전! 여울목의 시점에는 완전히 반대이고, 최근에 여울목의 빈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과학기술 지식의 연결과 융합 속도가 점점 빨라져서 그렇다. 그렇게 주어진 절호의 기회를 놓치면 국가도 긴 늪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국가도 정상기에는 경쟁력 방어, 여울목에는 연구개발(R&D)과 스타트업 투자로 추월을 노리는 게 원칙이다. 1990년대 인터넷이 기반 기술로 등장했을 때 버블 붕괴로 고통받던 일본, 엄청난 통일 비용으로 허덕이던 독일은 투자 여력이 없어 기회를 고스란히 날렸다. 반면에 역동성과 유연성이 높아진 한국은 공격적인 투자로 추월의 발판을 만들었다. 바로 지금, 인공지능(AI)과 바이오에 기반한 새로운 여울목이 한창 펼쳐지고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기회를 날리거나 역주행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