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까지 삼킨 '의대 블랙홀'…KAIST 정시 지원 38% 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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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증원發 '이공계 기피현상' 과기원까지 확산광주·울산·대구경북과기원 등
작년 대비 지원 20% 이상 줄어
2022년 개교한 에너지공과대
지원자 수 3년새 3분의 1 토막
"획기적 지원 없인 인재 확보 못해"
작년 대비 지원 20% 이상 줄어
2022년 개교한 에너지공과대
지원자 수 3년새 3분의 1 토막
"획기적 지원 없인 인재 확보 못해"
의대 증원에 따라 공대 인재 궁핍 상황이 현실화할 조짐이다. 최고 과학 인재가 모이는 KAIST 등 4개 과학기술원의 2025학년도 정시 지원자가 지난해 대비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과대학 정원이 한꺼번에 1509명 늘어나자 최상위권 학생이 대거 의약학계열로 몰렸기 때문이다. 올해 정시 의대 지원자는 6년 만에 1만 명을 넘어섰다. 고급 두뇌를 키우는 과학기술원까지 ‘의대 증원 후폭풍’에 휩싸이자 미래 과학기술 인력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는 우려가 나온다.
광주과학기술원(25.2%), UNIST(울산과학기술원·23.0%), 대구경북과학기술원(22.7%) 등도 지원자가 크게 감소했다. 2022년 개교한 한국에너지공과대는 개교 당시 정시 지원자가 953명에 달했는데 올해는 281명으로 70% 급감했다. 지난해(401명)와 비교해도 29.9% 줄었다.
과학기술원과 한국에너지공과대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 인재를 양성하는 특수 목적 대학이다. 정시 모집에서 군별로 한 번씩, 총 세 번만 지원할 수 있는 횟수 제한이 없다. 이중 등록 금지 규정도 적용되지 않아 다른 대학 수시에 붙은 수험생도 정시에 지원할 수 있다. 종로학원은 “횟수 제한이 없음에도 지원자가 급감한 것은 과학기술원 등에 대한 관심과 선호도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라며 “의약학계열 등에 중복 합격한 학생들이 등록을 포기해 추가 합격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공계 기피 현상도 갈수록 심해지는 양상이다. ‘스카이’로 불리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의 자연계열 경쟁률은 4.21 대 1로 전년(4.63 대 1)보다 하락했다. 반면 의대 경쟁률은 지난해 3.71 대 1에서 올해 3.80 대 1로 올랐다. 명문대 자연계열에 합격해도 포기하는 학생이 많다. 연세대 수시 자연계열 합격자 중 1046명이 등록을 포기했다. 모집 인원(1047명)의 99.9%에 해당한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의대 모집 정원 확대가 서울대 등 최상위권 자연계와 과학기술원 지원자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며 “최상위권 학생들이 의약학계열 등에 집중 지원한 상황에서 과학기술원 등의 정시 합격 점수가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이공계 지원자가 감소함에 따라 우수 과학기술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연구개발(R&D) 예산을 깎고 의대 정원을 늘리기로 할 때부터 예상된 일이었지만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 주요 대학의 한 공과대학 교수는 “R&D 예산을 다시 늘렸다고 하지만 신규 사업에만 지원해 기존 연구들이 받는 타격은 여전하다”며 “이공계 지원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인식을 바꾸지 않는 한 과학기술 인재 양성이 점점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
○ KAIST 지원자 38%↓
7일 종로학원에 따르면 KAIST 등 4개 과학기술원 2025학년도 정시모집 지원자는 4844명으로 전년(6743명) 대비 28.2% 감소했다. 학교별로 보면 KAIST에 지원한 수험생은 1333명으로 지난해(2147명)보다 37.9% 줄었다. 모집 인원이 20명에서 15명으로 감소했지만 지원자가 더 큰 폭으로 줄어 경쟁률은 107.35 대 1에서 88.87 대 1로 낮아졌다.광주과학기술원(25.2%), UNIST(울산과학기술원·23.0%), 대구경북과학기술원(22.7%) 등도 지원자가 크게 감소했다. 2022년 개교한 한국에너지공과대는 개교 당시 정시 지원자가 953명에 달했는데 올해는 281명으로 70% 급감했다. 지난해(401명)와 비교해도 29.9% 줄었다.
과학기술원과 한국에너지공과대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 인재를 양성하는 특수 목적 대학이다. 정시 모집에서 군별로 한 번씩, 총 세 번만 지원할 수 있는 횟수 제한이 없다. 이중 등록 금지 규정도 적용되지 않아 다른 대학 수시에 붙은 수험생도 정시에 지원할 수 있다. 종로학원은 “횟수 제한이 없음에도 지원자가 급감한 것은 과학기술원 등에 대한 관심과 선호도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라며 “의약학계열 등에 중복 합격한 학생들이 등록을 포기해 추가 합격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이공계 우수 인재 양성에 빨간불
과학기술원 인기 하락은 의대 선호 현상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특히 올해 의대 정원이 늘어난 것이 결정적이었다. 최상위권 학생이 의대로 몰렸기 때문이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2025학년도 의대 정시 지원자는 전년보다 2421명(29.9%) 증가한 총 1만519명에 달했다. 의대 정시 지원자가 1만 명을 넘어선 것은 6년 만이다. 의학전문대학원이 의대 학부 전환을 완료한 2022학년도에도 9000여 명까지 불어나기는 했으나 1만 명을 넘진 못했다.이공계 기피 현상도 갈수록 심해지는 양상이다. ‘스카이’로 불리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의 자연계열 경쟁률은 4.21 대 1로 전년(4.63 대 1)보다 하락했다. 반면 의대 경쟁률은 지난해 3.71 대 1에서 올해 3.80 대 1로 올랐다. 명문대 자연계열에 합격해도 포기하는 학생이 많다. 연세대 수시 자연계열 합격자 중 1046명이 등록을 포기했다. 모집 인원(1047명)의 99.9%에 해당한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의대 모집 정원 확대가 서울대 등 최상위권 자연계와 과학기술원 지원자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며 “최상위권 학생들이 의약학계열 등에 집중 지원한 상황에서 과학기술원 등의 정시 합격 점수가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이공계 지원자가 감소함에 따라 우수 과학기술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연구개발(R&D) 예산을 깎고 의대 정원을 늘리기로 할 때부터 예상된 일이었지만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 주요 대학의 한 공과대학 교수는 “R&D 예산을 다시 늘렸다고 하지만 신규 사업에만 지원해 기존 연구들이 받는 타격은 여전하다”며 “이공계 지원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인식을 바꾸지 않는 한 과학기술 인재 양성이 점점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