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스틸 사려다 한방 먹은 日…韓 현대제철은 美 직접투자 결정
현대제철이 미국에 처음으로 쇳물을 생산하는 해외 제철소를 짓기로 결정한 것은 오는 20일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에게 ‘깜짝 선물’이 될 전망이다.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물론, 미국 제조업 전반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일조할 수 있어서다. 일본제철이 ‘미국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US스틸을 인수하려다 노동조합 반대와 정치적 표 계산에 밀려 ‘불허’ 결정을 받은 상황에서 현대차그룹의 ‘직접 투자’ 승부수가 받아들여지면 경제적으로는 물론 외교적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 첫 해외 ‘쇳물 생산’

7일 재계에 따르면 현대제철이 ‘쇳물 생산’을 해외에서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차그룹은 그동안 해외 투자를 할 때 부품사와 함께 진출했고, 현대제철은 현대차 공장 인근에 가공센터를 두는 수준이었다. 현대제철이 이번에는 미국 시장을 쇳물 단계부터 확실히 잡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현재 현대제철의 주된 쇳물 생산 방식은 고로와 전기로를 함께 운영하는 복합생산 방식이다. 미국 공장에서는 철광석에 일산화탄소 등 가스를 이용해 환원철을 만들어낸 뒤 이를 전기로에 넣어 쇳물을 만드는 방식이 유력하다. 이와 관련해 철강업계 관계자는 “고로 생산 방식은 탄소 배출이 많아 신규 허가를 받기 어렵고, 기존 고로 운영 회사들의 견제와 반발이 심해 외국 기업이 추진하기는 쉽지 않다”고 평가했다.

전기로만 운영하더라도 환원철과 순도 높은 고철을 함께 원료로 사용한다면 충분히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현대제철의 구상이다. 전기로는 고로에 비해 탄소 발생량이 적고, 쇳물 생산을 멈추기 어려운 고로와 달리 시황에 따라 운영을 일시 중단할 수 있어 탄력적 운용이 가능하다. 높은 전기료가 단점이지만 미국은 에너지 가격이 한국보다 낮은 데다 트럼프 당선인이 에너지 비용을 크게 떨어뜨리겠다고 약속했다.

현대제철의 제철소 운영은 1차적으로 그룹사 수요에 부응하는 목적이 크다. 다만 향후 미국 내 다른 완성차업체 등으로 판매처를 넓힐 가능성이 높다. 자동차 1대당 필요한 강판은 약 1t으로, 미국 내 현대차그룹 생산량(조지아주 서배너 메타플랜트 50만 대 합산 시)은 연 120만 대가량이다. 연 200만~300만t 생산을 목표로 제철소를 지을 경우 제너럴모터스(GM)나 포드 같은 다른 완성차 업체에 자동차용 강판을 판매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현대제철은 연 500만t 규모 자동차용 강판을 생산해 이 중 17%를 현대차·기아 외 해외 완성차업체에 팔고 있다. 이 비중을 40%까지 높여 계열사 의존도를 낮추고 ‘차량용 강판 글로벌 톱3’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 트럼프 정책 ‘호응’

이 같은 현대차그룹의 구상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를 외치는 트럼프 당선인의 정책과도 궁합이 맞는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달 초 US스틸 매각에 대해 “완전히 반대한다”며 “세제 혜택과 관세로 미국 철강업을 다시 강하고 위대하게 만들 것이며, 그 일은 빨리 일어날 것”이라고 트루스소셜에 밝혔다. 양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세계를 호령했다가 지금은 존재감이 사라진 미국 철강업의 부흥을 위해서는 외부 투자가 필수적이다.

관세 문제에서도 미국 제철소 건설은 장점이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주장하는 대로 멕시코와 캐나다산 생산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고, 세계를 상대로 10~20% 보편관세를 매길 경우 해외 생산은 저렴한 인건비 등에 따른 경쟁력이 상당 부분 사라진다.

미국산 철강 생산은 최종 완성차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중국 견제를 강화하면서 각종 보조금 수령 과정에서 원산지 규제를 갈수록 까다롭게 바꾸는 중이다. 현대차가 주력하는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는 사실상 차체와 배터리가 가치사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쇳물부터 미국산’ 차량은 규제를 피하고 정책적 지원을 받는 데 유리할 수 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미국 투자는 오래전부터 검토해온 사안으로 아직 결정된 바는 없다”고 말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김형규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