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재적 300인, 재석 281인, 찬성 98인, 반대 180인, 기권 3인으로 부결되고 있다. 뉴스1
작년 12월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재적 300인, 재석 281인, 찬성 98인, 반대 180인, 기권 3인으로 부결되고 있다. 뉴스1
정부가 현행 유산세 방식의 상속세를 유산취득세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상속세율은 손대지 않기로 가닥을 잡았다. 탄핵 정국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해 야당의 반발로 무산됐던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는 후순위 과제로 미루고 상속세의 ‘구조적 전환’에 집중하기로 방향을 바꿨다는 분석이다.

8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상속세의 유산취득세 전환을 추진하면서 세율을 조정하는 내용은 검토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 대신 유산취득세 체제에서 인적공제를 늘릴 경우 세수 감액 규모가 얼마나 변동하는지를 중점적으로 분석할 계획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보다 유산취득세 전환에 대한 공감대가 더 큰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올해 상반기 중 유산취득세 도입 관련 법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유산취득세는 상속인이 각각 물려받은 재산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한다. 상속재산 전체를 기준으로 세금을 물리는 현행 유산세 방식과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재산 15억원을 자녀 3명이 똑같이 나눠 받을 경우 현행 세법상 15억원을 기준으로 세금을 계산한다. 유산취득세로 바뀌면 자녀마다 5억원을 기준으로 과세한다. 현행 상속세 체계가 누진세 체계인 점을 고려하면 세 부담이 줄어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상속세를 부과하는 국가는 총 24개국으로, 한국처럼 유산세 방식을 적용하는 곳은 미국 영국 덴마크 등 4개국뿐이다.

기재부는 지난 2일 공개한 ‘2025년 경제정책 방향’에서도 상속세 과세를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하고 인적공제 확대 등 개편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정부가 지난해 7월 세법 개정안에 담았던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50%→40%) △최대 주주 할증 과세(20%) 폐지에 관한 내용은 빠졌다. 법인세 감면, 배당소득 저율 분리과세 등 밸류업 기업과 투자자에 대한 세제지원 내용이 그대로 담긴 것과 비교된다.

상속세율 인하는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부자 감세’라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0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상속세 최고세율을 50%에서 40%로 낮추는 내용의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은 재석 281명 중 찬성 98명, 반대 180명, 기권 3명으로 부결됐다. 개정안엔 △30억원 초과 과표구간 삭제 △최대 주주 상속·증여 재산 20% 할증평가 폐지 △자녀 공제 확대 등이 담겨있었는데, 모두 없던 일이 된 것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상속세 납부 대상자는 2019년 8357명에서 2020년 1만181명, 2021년 1만2749명, 2022년 1만5760명, 2023년 1만9944명으로 4년 만에 두 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물가는 계속 오르지만, 과세표준과 세율은 25년째 고정돼 중산층의 상속세 부담이 크게 늘었다는 지적이다. 심충진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난해 6월 한 공청회에서 "기업 상속 시 최대 주주 주식의 20%를 할증 평가함에 따라 기업가치 밸류업 동기요인이 감소하고, 가업승계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산취득세 전환으로 중산층의 세 부담이 크게 줄어들지만, 현행 상속세율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당초 정부의 정책 목표였던 ‘밸류업’과는 거리가 멀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주범으로 지목되는 대기업 상장사 입장에서는 유산취득세로 전환되더라도 과세 부담에 별 차이가 없다는 얘기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