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가 좋아한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은 승리와 구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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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임성우의 클래식을 변호하다
안톤 브루크너(Anton Bruckner) 교향곡 7번
안톤 브루크너(Anton Bruckner) 교향곡 7번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둘러싼 오해들
브루크너 교향곡 제7번은 그의 다른 교향곡에 비해 선율선이 비교적 풍부한 편인데, 특히 이 2악장의 선율은 국내에서 인기를 얻은 드라마 이순신의 OST로 사용되어서 많은 분의 귀에 익숙합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 교향곡은 브루크너의 교향곡 가운데서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작품으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 그의 4번 교향곡과 함께 브루크너 교향곡 입문자들에게 자주 추천이 되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이 곡은 사실 감상과 이해가 그리 녹록한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려운데, 우선 브루크너의 다른 교향곡에 비해 직관적으로 귀에 꽂히는 선율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다고 하더라도 연주 시간이 한 시간을 훌쩍 넘기는 이 대작을 단지 그러한 일부 선율선에만 의지하여 따라가며 감상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이 교향곡의 2악장의 선율이 사용된 드라마의 장면이나 2악장의 작곡 배경을 둘러싸고 거론되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은 오히려 브루크너가 표현하고자 했던 바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에 걸림돌로 작용합니다.
예를 들어 나치의 히틀러가 자살했을 때 독일의 방송국에서 이 브루크너의 7번 교향곡의 2악장을 내보냈고 이를 들은 미술사학자 곰브리치가 '히틀러가 좋아한 브루크너가 바그너의 죽음을 추모하며 쓴 이 곡이 방송에서 계속 연주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히틀러가 죽은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하였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인데, 사실 적지 않은 분들이 이 2악장을 바그너의 죽음과 연계시키며 곡을 마치 무슨 장송곡이나 진혼곡처럼 설명하거나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브루크너가 교향곡 7번의 2악장에서 표현하고자 한 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2악장의 핵심 소재를 (교향곡 7번과 작곡 시기가 겹치는) 자신의 <테 데움>의 마지막 5악장에서 가져왔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Bruckner Te deum - Finale: "Non confundar" CCL|OSGR|Grosu]
브루크너의 테 데움의 5악장의 가사는 성경의 시편 71편의 아래 시구인데, 그는 7번 교향곡의 2악장에서 테 데움의 5악장 중에서 특히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라틴어 문구 non confundar(not comfounded)에 해당하는 음악적 동기 또는 주제를 토대로 하여 거대한 음악적 구축물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여기서 수치를 당하게 된다(confundar, confounded)는 것은 전쟁에서 적이 승리하여 패배자가 된 상황을 의미하는데, 이 시편의 구절은 절대자를 향하여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면서 전쟁에서의 승리와 구원을 확신하는 내용의 시구입니다.
공교로운 점은 이 시편의 후반부를 보면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발이 될 때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력을 장래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 하나님이여 주의 의가 또한 지극히 높으시니이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큰 일을 행하셨사오니 누가 주와 같으리이까"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는 늙어 노년이 된 시인의 심정이 투영된 기도입니다.
많은 분이 노년의 브루크너가 이 2악장을 완성할 즈음에 그의 선배 바그너가 죽었다는 사실에 너무 매몰되는데, 이 2악장의 기본적인 악상과 영감의 토대는 (바그너의 죽음을 기리는 장송이나 추념이라기보다는) 바로 그 핵심 동기의 토대가 된 테 데움의 시편의 가사 내용, 즉 늙은 시인의 절대자를 향한 신앙과 구원에 대한 확신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실제로 2악장의 (마치 저 높이 하늘로 향하는 듯한) 이 'non confundar의 상승 음형'은 1악장이나 4악장의 핵심 동기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이렇게 볼 때 교향곡 전편에 테 데움의 가사와 같이 절대자를 향한 믿음과 구원에 대한 확신을 담은 위의 시편 구절의 정서가 흐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는 이 작품에 좀처럼 다가가지 못하다가 오래전 소니에서 발매된 아래 레이저 디스크를 통해 매우 느린 템포의 첼리비다케의 실황을 접하면서 이 교향곡에 친숙하게 되었습니다. 이 7번 교향곡에 담긴 절대자에 대한 신뢰와 투쟁에서 궁극적인 승리와 구원의 메시지를 감안하였던 까닭일까요? 첼리비다케는 오래전 카라얀에 밀려 떠나야 했던 베를린필을 지휘해달라는 독일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무려 38년 만에 베를린필에 귀환하여 지휘봉을 다시 잡았을 때 바로 이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을 연주곡으로 선택하여 주목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Bruckner: Symphony No. 7 | Celibidache & the Berlin Philharmonic]
비록 그의 해석이 브루크너를 바라보는 유일한 관점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혹시 그의 느린 템포를 참기 어려워하시는 분들은 맨 아래에서 링크한 만프레드 호네크의 연주를 추천합니다.) 이 작품의 영적인 측면을 잘 드러낸 연주 가운데 하나이기에 이하에서는 위의 첼리비다케의 베를린필 연주를 중심으로 하여 각 악장별로 몇 가지 중요한 감상포인트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아래 표시된 시간은 위 영상을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1악장
1악장은 바이올린 파트가 브루크너 교향곡 특유의 신비로운 트레몰로를 연주하는 가운데, 첼로와 호른의 일부가 높은 곳을 향해 신중하고도 묵직하게 상승하는 느낌의 아래와 같은 1주제를 제시하면서 시작됩니다. (0:25) 그의 첫 d단조 미사곡의 크레도(Credo)에서 가져온 것으로 추정되는 이 주제는 비올라가 가세하며 매우 유장한 흐름의 인상적인 노래로 이어지는데, 브루크너는 이 주제를 꿈에 비올라의 연주로 들은 후 깨자마자 적어 둔 음형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베를린 필하모닉과 리허설 중인 셀리비다케]
이렇게 주제가 제시된 이후 곧바로 이제는 역할을 서로 바꾸어 거꾸로 저음현이 트레몰로를 연주하는 가운데 바이올린 등이 이 주제를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1:58) 그 후 곧 오보에와 클라리넷이 이어받아 아래와 같은 이 하늘의 위로와 평안이 담겨 있는 듯한 부드러운 가락(제2 주제)을 고요히 노래합니다. (3:35) 이 주제가 점점 고양되면서 정점에 이르자 갑자기 분위기가 일신되면서 아래와 같이 (마치 천상의 노래에 대한 화답처럼) 기뻐 날뛰는 듯한 약동감마저 느껴지는 소박한 리듬의 주제(제3 주제)가 나타납니다. (7:46) 이러한 약동하는 주제가 정점에 이른 후 다시 ppp로 잦아들면서 끝자락에서 클라리넷과 오보에 등이 제1주제를 전위(inversion)한 하행 음형을 고요히 노래합니다. (10:10) 그 후 첼로를 중심으로 하여 오케스트라가 매우 숭고하면서도 장엄하게 하행 음형을 노래하는데, 이 부분은 얼마나 신비로운지 모릅니다. (11:26) 첼리비다케는 아래 리허설 과정에서 이 숭고한 노래에 비올라 파트의 내성부 울림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비올라를 거듭 절규하듯 외칩니다.
[Celibidache - "Viola!"]
그 후 다시 흥겨운 춤곡과 같은 약동하는 리듬이 다시 이어지다가 갑자기 위에서 클라리넷과 오보에 등이 고요히 노래하며 선보였던 제1주제를 전위(inversion)한 하행 음형을 금관 등이 크게 내뿜으며 곡은 더욱 발전되어 갑니다.(14:56)
이렇게 엄청나게 장엄하게 전위된 1주제 음형이 노래된 후 다양한 키로 주제 음형들이 노래되다가 급기야 1주제의 원형과 그 전위된 형태가 결합하여 나타나면서 (17:30) 재현부로 넘어가고 그 이후 다시 제시부의 다른 주제들이 이어서 노래됩니다.
그렇게 하여 약동하는 3주제가 다시 끝에서 하행음형을 ppp로 노래하자 (23:40) (1악장에서 비로소 처음으로 등장하는) 팀파니의 고요한 울림과 함께 엄청난 빌드업이 이루어지는 코다로 넘어갑니다.
브루크너는 이 코다 부분에 "매우 장엄하게(Sehr feierlich)"라는 지시를 하고 있는데, pp에서 시작하여 점점커져가는 팀파니의 트레몰로를 배경으로 1악장의 핵심 주제가 마지막으로 노래된 다음 1악장의 서두에 울렸던 천상을 향한 음형이 마치 찬란한 영광과도 같이 치솟아 떠오르며 1악장은 압도적으로 마무리됩니다.
2악장
위에서 설명해 드린 것처럼 2악장은 이 교향곡의 무게중심이 놓여 있는 중추적인 악장이지만 이 2악장에 담긴 정서에 대해서는 오해가 적지 않습니다. 사실 이 2악장은 바그너의 사망 소식을 듣기 이전에 이미 작곡이 완성된 부분으로, 단지 브루크너는 바그너의 사망 소식을 듣고 악기에 바그너 튜바 등을 추가한 것일 뿐, 곡 자체가 바그너의 죽음을 추모하는 내용이 결코 아닙니다.
2악장은 크게 두 가지의 음악적 소재가 번갈아 가면서 등장하는 구조인데, 그 첫째는 매우 장엄하면서도 비장한 느낌마저 감도는 아래의 선율로 시작합니다. (28:09) 그러나 2악장의 첫 번째 음악 소재의 핵심은 위의 선율에 이어지는 상승음형에 의한 소위 'non confundar' 선율에 있는데, (29:00) (한 음 한 음 분명히 연주하라는) 마르카토 지시가 붙은 이 음형에는 테 데움의 가사 그대로 절대자를 신뢰하오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해달라는 구원을 향한 간구와 그러한 간구에 대한 응답의 확신이 담겨 있다는 생각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첫 번째의 장엄한 음형에 대조를 이루며 마치 간구에 대한 응답과 위로와도 같은 아래의 노래가 2악장의 두 번째 핵심 주제로 등장하는데, (33:52) 이는 2악장 전반에 걸쳐 첫 번째 주제와 번갈아 가며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 non confundar 주제 음형은 후반부에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트라이앵글과 심벌즈의 가세로 정점에서 폭발합니다.(52:04) 이 부분에서 원래의 악보에는 트라이앵글과 심벌즈가 없었으나 니키쉬 등 지휘자의 조언으로 나중에 삽입이 되었다고 하는데, 구원을 상징하는 C장조에 의해 폭발적으로 울리는 이 클라이막스에 아주 잘 어울리는 추가로 생각됩니다.
브루크너가 재고 끝에 이러한 악기 추가를 무효화 했는지에 대하여 갑론을박이 있지만 브루크너가 7번에 이어 작곡한 8번의 3악장에서도 클라이맥스에서 심벌즈를 사용한 것에 비추어 심벌즈 등의 추가가 브루크너의 뜻이 아니라는 설은 설득력이 크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전체 곡에서 오로지 2악장의 클라이맥스의 단 한 순간만을 위해 존재하는 심벌즈 주자와 관련하여서는 아래와 같은 유머러스한 영상도 존재합니다.
[브루크너 7번 심벌즈 & 트라이앵글]
이처럼 정점에서 구원의 확신이 노래된 이후 2악장은 마치 천상으로부터의 한줄기 위로의 응답처럼 울려 퍼지는 플루트의 선율과 함께 코다로 접어들어(53:07) 다시 1주제의 장엄하면서도 비장한 느낌으로 돌아가 마무리됩니다.
3악장
브루크너는 7번 교향곡을 작곡할 때 1악장과 3악장을 먼저 구상하고 그 후 이어서 2악장과 4악장을 작곡하였다고 전해집니다. 그중 먼저 구상된 1악장은 나중에 작곡된 2악장, 그리고 4악장과 정서적인 측면에서나 음악의 재료와 형식의 측면에서 매우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는데, 특히 그의 테 데움이나 미사곡 등과 음악적 재료를 공유하고 있는 점에서 전반적으로 영적인 분위기가 매우 강합니다.
반면에 1악장과 함께 먼저 구상된 춤곡의 성격을 가진 3악장의 스케르초는 소박한 브루크너의 인간미가 담겨 있는데, 이 점에서 3악장은 전체 교향곡에서 다른 악장들과 대조가 되는 다른 큰 축을 담당하는 악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스케르초 악장은 옥타브 도약후 부점 리듬에 의한 음형이 뒤따르는 주제(아래 높은음자리표 부분) 및 조급한 운동성이 느껴지는 아티큘레이션이 부가된 음형에 의한 주제(아래 낮은음자리표 부분)이 결합한 구성된 제1주제(A부분)의 제시로 시작됩니다. (59:03) 그중 위의 높은음자리표 부분의 음형은 브루크너가 수탉의 울음소리라고 설명했다고 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3악장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반복되는 이 음형은 마치 소박한 시골 풍경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이러한 1주제 이후 그와 대조를 이루는 트리오에 해당하는 아래의 주제(B부분)가 뒤따르는데, (1:03:22) 상당히 여유로운 목가적 흐름을 보입니다. 3악장은 이러한 대조적인 성격의 소재가 스케르초의 전형적인 형태에 따라 A-B-A의 형태로 진행됩니다. (1:06:57)
4악장
마지막 4악장은 1악장과 대조적으로 제2바이올린이 트레몰로를 연주하는 가운데 제1바이올린이 1악장의 1주제가 부점이 붙은 형태로 활달하게 변화된 형태의 음형(1주제)을 연주하면서 시작합니다. (1:11:26) 이러한 주제는 1악장과 달리 짧고 간결하지만, 확신에 가득 차 있는데, 1악장의 서두에서처럼 곧 악기군이 역할을 바꾸어 고음현의 트레몰로를 배경으로 이제 저음현이 다시 이 주제를 노래하고 전체 오케스트라로 퍼져갑니다. 이와 같이 1주제가 제시된 이후 아래와 같은 부드러운 코랄풍의 제2주제가 위로하듯 등장합니다. (1:12:34) 그러나 곧 아래와 같이 1주제가 단조로 바뀌어 엄중하고 심각하게 막아서듯 등장하면서 지금까지의 온화한 분위기는 변화합니다. (1:15:35) 그러나 그 이후 다시 조심스럽게 제1주제가 다시 노래되고 더블베이스까지 힘차게 가세하여 활력을 불어넣으면서 무거운 분위기는 다시 활기를 찾습니다. (1:16:43) 이후 목가적이면서 가벼운 가락이 등장하고 (지금까지 심각한 분위기를 이끌었던) 바그너 튜바조차도 이제 좀 더 밝고 따스한 모습으로 변모합니다. (1:17:54)
하지만, 발전부에서 다시 단조로 변형된 1주제가 유니슨으로 등장하지만, (1:20:02) 곧 다시 코랄풍의 제2주제가 부드럽게 위로합니다. 이에 다시 처음의 1주제가 더욱 확신을 얻은 듯 활달한 모습으로 등장하고, (1:23:13)이어서 곧바로 코다로 진입하는데, 이 마지막 코다에서는 4악장의 1주제가 뿌리를 두고 있는 1악장의 1주제가 전면에 등장하여 엄청난 확신 가운데 믿음과 구원의 노래가 마무리됩니다.
▶ 만프레드 호네크의 연주
[1악장 - 교향곡 7번 E장조 I. Allegro moderato]
[2악장 - 교향곡 7번 E장조 II. Adagio]
[3악장 - 향곡 7번 E장조 III. Scherzo]
[4악장 - 향곡 7번 E장조 IV. Finale]
© 임성우 - 클래식을 변호하다
그러나 이 곡은 사실 감상과 이해가 그리 녹록한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려운데, 우선 브루크너의 다른 교향곡에 비해 직관적으로 귀에 꽂히는 선율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다고 하더라도 연주 시간이 한 시간을 훌쩍 넘기는 이 대작을 단지 그러한 일부 선율선에만 의지하여 따라가며 감상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이 교향곡의 2악장의 선율이 사용된 드라마의 장면이나 2악장의 작곡 배경을 둘러싸고 거론되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은 오히려 브루크너가 표현하고자 했던 바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에 걸림돌로 작용합니다.
예를 들어 나치의 히틀러가 자살했을 때 독일의 방송국에서 이 브루크너의 7번 교향곡의 2악장을 내보냈고 이를 들은 미술사학자 곰브리치가 '히틀러가 좋아한 브루크너가 바그너의 죽음을 추모하며 쓴 이 곡이 방송에서 계속 연주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히틀러가 죽은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하였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인데, 사실 적지 않은 분들이 이 2악장을 바그너의 죽음과 연계시키며 곡을 마치 무슨 장송곡이나 진혼곡처럼 설명하거나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브루크너가 교향곡 7번의 2악장에서 표현하고자 한 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2악장의 핵심 소재를 (교향곡 7번과 작곡 시기가 겹치는) 자신의 <테 데움>의 마지막 5악장에서 가져왔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Bruckner Te deum - Finale: "Non confundar" CCL|OSGR|Grosu]
브루크너의 테 데움의 5악장의 가사는 성경의 시편 71편의 아래 시구인데, 그는 7번 교향곡의 2악장에서 테 데움의 5악장 중에서 특히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라틴어 문구 non confundar(not comfounded)에 해당하는 음악적 동기 또는 주제를 토대로 하여 거대한 음악적 구축물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오 주여, 당신을 내가 믿사오니, 나로 하여금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하여 주소서
O Lord, in Thee have I trusted, let me never be confounded
- 시편 71편 1절
여기서 수치를 당하게 된다(confundar, confounded)는 것은 전쟁에서 적이 승리하여 패배자가 된 상황을 의미하는데, 이 시편의 구절은 절대자를 향하여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면서 전쟁에서의 승리와 구원을 확신하는 내용의 시구입니다.
공교로운 점은 이 시편의 후반부를 보면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발이 될 때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력을 장래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 하나님이여 주의 의가 또한 지극히 높으시니이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큰 일을 행하셨사오니 누가 주와 같으리이까"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는 늙어 노년이 된 시인의 심정이 투영된 기도입니다.
많은 분이 노년의 브루크너가 이 2악장을 완성할 즈음에 그의 선배 바그너가 죽었다는 사실에 너무 매몰되는데, 이 2악장의 기본적인 악상과 영감의 토대는 (바그너의 죽음을 기리는 장송이나 추념이라기보다는) 바로 그 핵심 동기의 토대가 된 테 데움의 시편의 가사 내용, 즉 늙은 시인의 절대자를 향한 신앙과 구원에 대한 확신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실제로 2악장의 (마치 저 높이 하늘로 향하는 듯한) 이 'non confundar의 상승 음형'은 1악장이나 4악장의 핵심 동기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이렇게 볼 때 교향곡 전편에 테 데움의 가사와 같이 절대자를 향한 믿음과 구원에 대한 확신을 담은 위의 시편 구절의 정서가 흐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는 이 작품에 좀처럼 다가가지 못하다가 오래전 소니에서 발매된 아래 레이저 디스크를 통해 매우 느린 템포의 첼리비다케의 실황을 접하면서 이 교향곡에 친숙하게 되었습니다. 이 7번 교향곡에 담긴 절대자에 대한 신뢰와 투쟁에서 궁극적인 승리와 구원의 메시지를 감안하였던 까닭일까요? 첼리비다케는 오래전 카라얀에 밀려 떠나야 했던 베를린필을 지휘해달라는 독일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무려 38년 만에 베를린필에 귀환하여 지휘봉을 다시 잡았을 때 바로 이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을 연주곡으로 선택하여 주목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Bruckner: Symphony No. 7 | Celibidache & the Berlin Philharmonic]
비록 그의 해석이 브루크너를 바라보는 유일한 관점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혹시 그의 느린 템포를 참기 어려워하시는 분들은 맨 아래에서 링크한 만프레드 호네크의 연주를 추천합니다.) 이 작품의 영적인 측면을 잘 드러낸 연주 가운데 하나이기에 이하에서는 위의 첼리비다케의 베를린필 연주를 중심으로 하여 각 악장별로 몇 가지 중요한 감상포인트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아래 표시된 시간은 위 영상을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1악장
1악장은 바이올린 파트가 브루크너 교향곡 특유의 신비로운 트레몰로를 연주하는 가운데, 첼로와 호른의 일부가 높은 곳을 향해 신중하고도 묵직하게 상승하는 느낌의 아래와 같은 1주제를 제시하면서 시작됩니다. (0:25) 그의 첫 d단조 미사곡의 크레도(Credo)에서 가져온 것으로 추정되는 이 주제는 비올라가 가세하며 매우 유장한 흐름의 인상적인 노래로 이어지는데, 브루크너는 이 주제를 꿈에 비올라의 연주로 들은 후 깨자마자 적어 둔 음형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베를린 필하모닉과 리허설 중인 셀리비다케]
이렇게 주제가 제시된 이후 곧바로 이제는 역할을 서로 바꾸어 거꾸로 저음현이 트레몰로를 연주하는 가운데 바이올린 등이 이 주제를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1:58) 그 후 곧 오보에와 클라리넷이 이어받아 아래와 같은 이 하늘의 위로와 평안이 담겨 있는 듯한 부드러운 가락(제2 주제)을 고요히 노래합니다. (3:35) 이 주제가 점점 고양되면서 정점에 이르자 갑자기 분위기가 일신되면서 아래와 같이 (마치 천상의 노래에 대한 화답처럼) 기뻐 날뛰는 듯한 약동감마저 느껴지는 소박한 리듬의 주제(제3 주제)가 나타납니다. (7:46) 이러한 약동하는 주제가 정점에 이른 후 다시 ppp로 잦아들면서 끝자락에서 클라리넷과 오보에 등이 제1주제를 전위(inversion)한 하행 음형을 고요히 노래합니다. (10:10) 그 후 첼로를 중심으로 하여 오케스트라가 매우 숭고하면서도 장엄하게 하행 음형을 노래하는데, 이 부분은 얼마나 신비로운지 모릅니다. (11:26) 첼리비다케는 아래 리허설 과정에서 이 숭고한 노래에 비올라 파트의 내성부 울림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비올라를 거듭 절규하듯 외칩니다.
[Celibidache - "Viola!"]
그 후 다시 흥겨운 춤곡과 같은 약동하는 리듬이 다시 이어지다가 갑자기 위에서 클라리넷과 오보에 등이 고요히 노래하며 선보였던 제1주제를 전위(inversion)한 하행 음형을 금관 등이 크게 내뿜으며 곡은 더욱 발전되어 갑니다.(14:56)
이렇게 엄청나게 장엄하게 전위된 1주제 음형이 노래된 후 다양한 키로 주제 음형들이 노래되다가 급기야 1주제의 원형과 그 전위된 형태가 결합하여 나타나면서 (17:30) 재현부로 넘어가고 그 이후 다시 제시부의 다른 주제들이 이어서 노래됩니다.
그렇게 하여 약동하는 3주제가 다시 끝에서 하행음형을 ppp로 노래하자 (23:40) (1악장에서 비로소 처음으로 등장하는) 팀파니의 고요한 울림과 함께 엄청난 빌드업이 이루어지는 코다로 넘어갑니다.
브루크너는 이 코다 부분에 "매우 장엄하게(Sehr feierlich)"라는 지시를 하고 있는데, pp에서 시작하여 점점커져가는 팀파니의 트레몰로를 배경으로 1악장의 핵심 주제가 마지막으로 노래된 다음 1악장의 서두에 울렸던 천상을 향한 음형이 마치 찬란한 영광과도 같이 치솟아 떠오르며 1악장은 압도적으로 마무리됩니다.
2악장
위에서 설명해 드린 것처럼 2악장은 이 교향곡의 무게중심이 놓여 있는 중추적인 악장이지만 이 2악장에 담긴 정서에 대해서는 오해가 적지 않습니다. 사실 이 2악장은 바그너의 사망 소식을 듣기 이전에 이미 작곡이 완성된 부분으로, 단지 브루크너는 바그너의 사망 소식을 듣고 악기에 바그너 튜바 등을 추가한 것일 뿐, 곡 자체가 바그너의 죽음을 추모하는 내용이 결코 아닙니다.
2악장은 크게 두 가지의 음악적 소재가 번갈아 가면서 등장하는 구조인데, 그 첫째는 매우 장엄하면서도 비장한 느낌마저 감도는 아래의 선율로 시작합니다. (28:09) 그러나 2악장의 첫 번째 음악 소재의 핵심은 위의 선율에 이어지는 상승음형에 의한 소위 'non confundar' 선율에 있는데, (29:00) (한 음 한 음 분명히 연주하라는) 마르카토 지시가 붙은 이 음형에는 테 데움의 가사 그대로 절대자를 신뢰하오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해달라는 구원을 향한 간구와 그러한 간구에 대한 응답의 확신이 담겨 있다는 생각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첫 번째의 장엄한 음형에 대조를 이루며 마치 간구에 대한 응답과 위로와도 같은 아래의 노래가 2악장의 두 번째 핵심 주제로 등장하는데, (33:52) 이는 2악장 전반에 걸쳐 첫 번째 주제와 번갈아 가며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 non confundar 주제 음형은 후반부에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트라이앵글과 심벌즈의 가세로 정점에서 폭발합니다.(52:04) 이 부분에서 원래의 악보에는 트라이앵글과 심벌즈가 없었으나 니키쉬 등 지휘자의 조언으로 나중에 삽입이 되었다고 하는데, 구원을 상징하는 C장조에 의해 폭발적으로 울리는 이 클라이막스에 아주 잘 어울리는 추가로 생각됩니다.
브루크너가 재고 끝에 이러한 악기 추가를 무효화 했는지에 대하여 갑론을박이 있지만 브루크너가 7번에 이어 작곡한 8번의 3악장에서도 클라이맥스에서 심벌즈를 사용한 것에 비추어 심벌즈 등의 추가가 브루크너의 뜻이 아니라는 설은 설득력이 크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전체 곡에서 오로지 2악장의 클라이맥스의 단 한 순간만을 위해 존재하는 심벌즈 주자와 관련하여서는 아래와 같은 유머러스한 영상도 존재합니다.
[브루크너 7번 심벌즈 & 트라이앵글]
이처럼 정점에서 구원의 확신이 노래된 이후 2악장은 마치 천상으로부터의 한줄기 위로의 응답처럼 울려 퍼지는 플루트의 선율과 함께 코다로 접어들어(53:07) 다시 1주제의 장엄하면서도 비장한 느낌으로 돌아가 마무리됩니다.
3악장
브루크너는 7번 교향곡을 작곡할 때 1악장과 3악장을 먼저 구상하고 그 후 이어서 2악장과 4악장을 작곡하였다고 전해집니다. 그중 먼저 구상된 1악장은 나중에 작곡된 2악장, 그리고 4악장과 정서적인 측면에서나 음악의 재료와 형식의 측면에서 매우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는데, 특히 그의 테 데움이나 미사곡 등과 음악적 재료를 공유하고 있는 점에서 전반적으로 영적인 분위기가 매우 강합니다.
반면에 1악장과 함께 먼저 구상된 춤곡의 성격을 가진 3악장의 스케르초는 소박한 브루크너의 인간미가 담겨 있는데, 이 점에서 3악장은 전체 교향곡에서 다른 악장들과 대조가 되는 다른 큰 축을 담당하는 악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스케르초 악장은 옥타브 도약후 부점 리듬에 의한 음형이 뒤따르는 주제(아래 높은음자리표 부분) 및 조급한 운동성이 느껴지는 아티큘레이션이 부가된 음형에 의한 주제(아래 낮은음자리표 부분)이 결합한 구성된 제1주제(A부분)의 제시로 시작됩니다. (59:03) 그중 위의 높은음자리표 부분의 음형은 브루크너가 수탉의 울음소리라고 설명했다고 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3악장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반복되는 이 음형은 마치 소박한 시골 풍경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이러한 1주제 이후 그와 대조를 이루는 트리오에 해당하는 아래의 주제(B부분)가 뒤따르는데, (1:03:22) 상당히 여유로운 목가적 흐름을 보입니다. 3악장은 이러한 대조적인 성격의 소재가 스케르초의 전형적인 형태에 따라 A-B-A의 형태로 진행됩니다. (1:06:57)
4악장
마지막 4악장은 1악장과 대조적으로 제2바이올린이 트레몰로를 연주하는 가운데 제1바이올린이 1악장의 1주제가 부점이 붙은 형태로 활달하게 변화된 형태의 음형(1주제)을 연주하면서 시작합니다. (1:11:26) 이러한 주제는 1악장과 달리 짧고 간결하지만, 확신에 가득 차 있는데, 1악장의 서두에서처럼 곧 악기군이 역할을 바꾸어 고음현의 트레몰로를 배경으로 이제 저음현이 다시 이 주제를 노래하고 전체 오케스트라로 퍼져갑니다. 이와 같이 1주제가 제시된 이후 아래와 같은 부드러운 코랄풍의 제2주제가 위로하듯 등장합니다. (1:12:34) 그러나 곧 아래와 같이 1주제가 단조로 바뀌어 엄중하고 심각하게 막아서듯 등장하면서 지금까지의 온화한 분위기는 변화합니다. (1:15:35) 그러나 그 이후 다시 조심스럽게 제1주제가 다시 노래되고 더블베이스까지 힘차게 가세하여 활력을 불어넣으면서 무거운 분위기는 다시 활기를 찾습니다. (1:16:43) 이후 목가적이면서 가벼운 가락이 등장하고 (지금까지 심각한 분위기를 이끌었던) 바그너 튜바조차도 이제 좀 더 밝고 따스한 모습으로 변모합니다. (1:17:54)
하지만, 발전부에서 다시 단조로 변형된 1주제가 유니슨으로 등장하지만, (1:20:02) 곧 다시 코랄풍의 제2주제가 부드럽게 위로합니다. 이에 다시 처음의 1주제가 더욱 확신을 얻은 듯 활달한 모습으로 등장하고, (1:23:13)이어서 곧바로 코다로 진입하는데, 이 마지막 코다에서는 4악장의 1주제가 뿌리를 두고 있는 1악장의 1주제가 전면에 등장하여 엄청난 확신 가운데 믿음과 구원의 노래가 마무리됩니다.
▶ 만프레드 호네크의 연주
[1악장 - 교향곡 7번 E장조 I. Allegro moderato]
[2악장 - 교향곡 7번 E장조 II. Adagio]
[3악장 - 향곡 7번 E장조 III. Scherzo]
[4악장 - 향곡 7번 E장조 IV. Finale]
© 임성우 - 클래식을 변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