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 배곧신도시 전경.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시흥 배곧신도시 전경.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올해 중순만해도 '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 효과에 가격이 오르는 듯했지만, 최근에는 (단지 내 가장 좋은 위치의) '로열층·로열동'이 무색할 정도로 가격이 떨어지고 있어요. 집주인들의 고민이 커요. "

경기 시흥시 배곧동의 한 개업중개사는 최근 지역 내 아파트 가격 하락 동향을 이 같이 전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때 10억원에 달하던 시흥 배곧신도시 집값이 반토막 수준으로 추락했다. 부동산 시장의 얼죽신 열풍도 피해 가는 모양새다.

9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시흥시 배곧동 '시흥배곧C1호반써밋플레이스' 전용면적 84㎡가 지난달 5억7000만원(6층)에 손바뀜됐다. 2021년 7월 10억원(19층)에 거래된 것과 비교하면 4억3000만원 낮은 가격이다. 2019년 입주한 아파트로 만 5년이 되지 않은 준신축 아파트다. 지난해 10월만 하더라도 얼죽신 열풍을 타고 같은 면적이 7억원(29층)에 팔리면서 가격 회복세를 보이는 듯했지만 이내 주저앉았다.

바로 옆 '시흥배곧C2호반써밋플레이스' 전용 84㎡도 지난달 6억원(13층)에 팔려 직전 거래였던 지난해 11월 6억3000만원(15층) 대비 3000만원 하락했다. 마찬가지로 2019년 입주한 준신축 아파트로, 2021년 배곧 신도시에서 가장 먼저 '10억 클럽' 문을 열었던 아파트다.
시흥 배곧신도시 전경.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시흥 배곧신도시 전경.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준공 7년 차인 인근 '한라비발디캠퍼스'는 전용 84㎡가 지난해 12월 5억1800만원(5층)에 거래됐다. 지난 11월 같은 층 매물이 5억7000만원에 팔린 것과 비교하면 집값이 한 달 만에 5200만원 급락했다. 인근 '시흥배곧신도시호반베르디움센트럴파크' 역시 전용 84㎡가 지난해 11월 5억9800만원(18층)에 손바뀜되면서 직전 거래인 지난 8월 6억5000만원(6층)보다 5200만원 내렸다.

배곧동 개업중개사 A씨는 "대출 규제 등의 영향도 있지만, 개발 호재가 지연되며 기대감이 식어버린 영향이 크다"며 "아파트 가격뿐 아니라 상권까지 침체하면서 지역 경제가 주저앉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시흥 배곧신도시 내 서울대학교 시흥캠퍼스 부지 모습.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시흥 배곧신도시 내 서울대학교 시흥캠퍼스 부지 모습.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한국부동산원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서 시흥 아파트값은 12월 다섯째 주 전주 대비 0.05% 내리면서 4주 연속 하락했다. 배곧신도시 상권에서는 공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상권 외곽에는 1층이 전부 비어있는 건물이 수두룩했고 중심가 1층 상가 중에도 곳곳에서 임대문의 안내문이 걸린 공실이 눈에 띄었다.

배곧신도시가 침체한 주요 원인은 개발 지연에 있다. 시흥배곧서울대병원(가칭)과 배곧대교가 대표적이다. 시흥시는 배곧신도시 서울대 시흥캠퍼스 내에 800병상 규모 대학병원이자 전국 최초의 진료·연구 융합형 종합병원을 조성할 예정이다. 2019년 서울대병원과 병원 설립 협약을 체결하고 2027년 개원을 목표로 추진했지만, 예정 부지는 지금까지 허허벌판으로 남아 있다. 공사비가 오르면서 당초 사업비로는 시공사를 구하지 못했던 탓이다.

그나마 사업비를 늘리고 수의계약으로 전환하면서 지난해부터 사업에 물꼬가 트였다. 서울대병원과 현대건설은 최근 공사비 협상을 공사 계약을 체결했다. 시흥시는 이달 사업설명회를 시작으로 착공에 나서면 2029년 중으로는 개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층이 공실로 가득한 배곧신도시 상가 모습.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1층이 공실로 가득한 배곧신도시 상가 모습.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시흥배곧서울대병원은 당초 계획보다 늦게나마 개원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지만, 배곧대교는 아직 기약이 없다. 배곧대교는 시흥시가 민간자본 1904억원을 들여 시흥 배곧신도시와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를 연결하는 길이 1.89km, 왕복 4차로의 해상교량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2014년부터 추진됐지만, 람사르 습지가 훼손된다며 반대하는 환경단체에 막혀 표류를 거듭했다.

현재도 사업을 재검토하라는 환경부 산하 한강유역환경청의 결정에 반발해 시흥시가 행정소송을 항소심을 준비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7월 원심에서는 시흥시가 패소했다. 원심 재판부는 "천연기념물인 저어새 및 철새 도래지인 습지에 공사하면 생태환경 교란 등 환경에 피해가 발생하니 다른 노선으로 정하라"고 판시했다.

업계 관계자는 "배곧신도시는 신축 아파트 입주와 함께 시흥시의 여러 개발 사업이 맞물리면서 가격이 상승한 바 있다"며 "개발 기대감이 사그라들어 상권이 침체하고 집값도 장기 하락을 보이는 만큼, 개발 사업의 향방에 따라 향후 집값도 방향성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