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스틸 포기 못하는 일본제철…‘투트랙 소송’ 이유는 [김일규의 재팬워치]
일본제철의 미국 철강기업 US스틸 인수는 일본 기업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상대로 행정 소송을 제기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발전했다. 일본제철 측은 ‘미 대통령 및 노동조합과 손을 잡고 인수 계획을 무산시켰다’며 경쟁 기업 등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했다. 배상 소송에서 확보한 공모 증거를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공격 재료로 사용할 전략이다.

8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제철과 US스틸이 제기한 소송은 두 건으로 묶여 있다. 첫 번째는 인수 계획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3일 내린 중단 명령을 무효로 하고,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의 재심을 요구하는 행정 소송이다.

일본제철 측에 있어 이 소송이 핵심이다. 재심사는 미국 정부 측의 심사 절차에 과실이 있었는지에 달려 있다. 다만 재심사에서도 중단 결론은 변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법원에 중단 명령을 무효로 해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싸움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제도’와 ‘증거’ 때문이다.
US스틸 포기 못하는 일본제철…‘투트랙 소송’ 이유는 [김일규의 재팬워치]
미국 제도상 대통령의 안보 관련 판단은 재판에서 그 시비를 묻지 못한다. 어떤 근거로 중단 명령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정보도 모두 비공개다. 재판을 치르기 위한 증거가 압도적으로 부족하다. 미국의 재판 제도에는 강제 증거 개시 절차가 있지만, 안보 관련 판단은 대통령의 ‘특권’과 관련돼 있기 때문에 비공개 가능성이 크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소송 전략으로 바이든 대통령이 중단 명령을 내린 판단은 ‘애초에 안보를 위한 것이 아니라 특정 기업에 대한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가능성이 높지 않지만, 법원이 이 주장을 인정하면 명령 무효로 가는 길도 열릴 수 있다.

두 번째 소송을 경쟁사인 미국 철강기업 클리블랜드클리프스와 미국철강노동조합(USW)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일반적인 민사소송’이기 때문에 증거 개시로 유력한 정보를 얻을 가능성이 높다.

클리블랜드클리프스는 미국 내 라이벌인 US스틸에 2023년 7월 인수를 제안했지만 실패한 적이 있다. 일본제철의 인수 계획이 좌초돼 가장 득을 보는 것은 클리블랜드클리프스다. USW가 클리블랜드클리프스와 접촉한 뒤 일본제철의 인수에 반대한 점, USW와 클리블랜드클리프스가 작년 미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 대가로 바이든 대통령에게 중단 명령을 요구한 것을 보여주는 이메일이나 채팅, 메모 등이 발견될지 관건이다.
US스틸 포기 못하는 일본제철…‘투트랙 소송’ 이유는 [김일규의 재팬워치]
그런 기록이 발견되면 바이든 대통령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특정 기업에 대한 이익을 위한 중단 명령이었다’고 주장하는 근거로 삼을 수 있다. 인수 계획 심사와 관련된 이메일, 채팅에 대해선 지난해 11월 공화당 의원들이 미 정부 측에 삭제하지 말고 보존할 것을 요청했다. 법원이 정부 내 기록까지 공개 대상으로 인정할지가 관건이다.

미 정부 측은 ‘애초에 소송으로 다툴 수 없다’며 일본제철 측의 소송을 기각하도록 법원에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기각되면 곧바로 일본제철 측의 패배로 끝난다. 심리가 진행될 경우 장기간 재판이 될 가능성이 높다. 대형 재판에서는 본격적인 심리가 시작되기까지 1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다.

다음 달 2일까지 인수 계획 ‘포기’를 요구하는 중단 명령 효력을 어떻게든 중지시킬 필요성도 있다. 일본제철 측은 미국 정부와 협상을 통해 중단 명령 효력 발휘를 중지하도록 요구할 태세지만, 정부 측이 받아들인다는 보장은 없다. 이 경우 법원에 명령 효력을 중지시켜 달라고 일본제철 측이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도쿄=김일규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