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린란드 간 트럼프 장남 >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오른쪽 두번째)가 7일(현지시간)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 수도 누크를 찾아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팟캐스트용 영상 촬영을 목적으로 비공개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트럼프 당선인의 그린란드 매입 발언으로 주목받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그린란드 간 트럼프 장남 >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오른쪽 두번째)가 7일(현지시간)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 수도 누크를 찾아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팟캐스트용 영상 촬영을 목적으로 비공개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트럼프 당선인의 그린란드 매입 발언으로 주목받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덴마크령 그린란드와 파나마운하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해 무력을 동원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지역에서 중국과 러시아 입지가 커진 것을 바로잡는다는 명분으로 동맹국을 향한 군사 행동까지 선택지에 올려놓은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영토 확장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중국·러시아로부터 보호”

트럼프 당선인은 7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마러라고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파나마운하와 그린란드를 장악하기 위해 군사력 또는 경제적 강압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두 사안 중 어떤 것에 관해서도 확언할 수 없다”며 “약속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또 그는 멕시코만 이름을 ‘아메리카만’으로 바꾸겠다며 “아름답고 적절한 이름”이라고 말했다.
그린란드·파나마운하 탐내는 트럼프 "지배력 확보에 무력동원 가능"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달 파나마운하 사용료 인하를 주장하면서 1977년 협약으로 파나마에 넘긴 운하 운영권의 반환을 요구할 수 있다고 했다. 이날 회견에서는 지난달 타계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비판하며 파나마운하 이슈를 환기시켰다. 트럼프 당선인은 “카터 전 대통령은 재임 중 관할권을 미국에서 파나마로 이양하는 협정을 체결한 당사자”라며 “오늘날 파나마운하는 사실상 중국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중국과 러시아 선박이 그린란드를 누비고 다니도록 할 수 없다”며 “그린란드가 미국의 일부가 된다면 매우 악랄한 외부 세계에서 그곳을 보호하고 아낄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2021~2023년 북극평의회 의장국을 맡는 등 그린란드를 비롯한 북극 인근 지역에서 영향력 강화를 시도하고 있다. 중국은 한때 그린란드에 공항 3곳을 건설하는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가 미국과 덴마크의 반발로 철회하기도 했다.

○루이지애나처럼 매입하나

그린란드를 자치령으로 둔 덴마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이며, 파나마는 미국의 전통적인 우방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군사력 사용 가능성을 운운한 것은 동맹국을 겨냥한 협박인 셈이다.

이 때문에 트럼프 2기 정부가 실제 군사 행동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CNN은 “트럼프 당선인이 실제로 원하는 바를 이룰 가능성은 낮지만 그의 전략은 미국에 더 나은 조건을 얻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파나마운하를 통과하는 미국 선박 통행료 할인, 희토류 등 그린란드 천연 자원 접근권 확보 등을 얻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당선인으로서는 정치적으로 손해를 볼 일이 없는 발언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가 그린란드 매입이나 파나마운하 운영권 반환에 성공한다면 1867년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사들인 앤드루 존슨 대통령, 루이지애나주를 프랑스에서 매입한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과 함께 역사에 길이 남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설사 실패하더라도 자국민에게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각인시키는 효과가 있다.

○‘21세기 신식민주의’ 비판도

파나마 정부와 덴마크 정부는 즉각 대응에 나섰다. 하비에르 마르티네스아차 파나마 외무장관은 이날 언론에 성명을 내고 “우리 운하의 주권은 협상 대상이 아니며, 우리 투쟁의 역사이자 돌이킬 수 없는 획득의 일부”라고 선을 그었다.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현지 TV2 방송에 출연해 “그린란드는 그린란드인의 것으로 판매 대상이 아니다”고 밝혔다. 미국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당선인이 경제, 군사 안보 이익을 위해 이웃 국가를 힘의 논리로 굴복시킬 수 있다는 21세기 신식민주의적 사고 방식을 그대로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다만 그린란드 정치권에서는 차제에 덴마크에서 독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무테 에게데 그린란드 총리는 지난 3일 신년사에서 “세계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소위 식민주의의 족쇄라고 할 수 있는 협력의 장애물을 제거하고 전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그린란드 주민의 독립 및 미국 편입 의사가 투표로 확인되면 덴마크가 그것을 저지하지 못하도록 덴마크에 고율 관세를 도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