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한파 영향으로 시장 기대치를 크게 밑도는 지난해 4분기 잠정 실적을 내놨다. 올해 반도체 실적 전망치도 상대적으로 부진한 작년 수준으로 설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범용 D램 가격 하락과 고대역폭메모리(HBM) 납품 지연,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수주 부진 등 악재가 겹친 결과다. 삼성전자는 올해 상반기를 반도체 경쟁력 회복을 위한 ‘재정비 시간’으로 삼고 하반기부터 반등에 나선다는 목표를 세웠다.
'메모리 한파' 삼성전자…"상반기도 반등 어렵다"
삼성전자는 8일 “2024년 4분기 잠정 매출 75조원, 영업이익 6조5000억원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0.7%, 영업이익은 130.5% 늘었다. 하지만 시장 기대치에는 크게 못 미쳤다. 증권사의 영업이익 추정치 평균(7조9705억원)보다 18.4% 밑돌았다.

반도체를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이 실적을 끌어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스마트폰과 PC 수요가 줄어들며 관련 메모리 반도체 영업이익이 감소했다”며 “메모리 매출은 고용량 제품 판매 확대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지만 연구개발(R&D) 비용과 첨단공정 구축 비용이 늘면서 영업이익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파운드리 부문은 수요 부진에 따른 가동률 하락 여파로 2조원 넘는 적자를 냈다. 실적 버팀목 역할을 해온 디스플레이와 스마트폰 부문도 부진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상반기에도 범용 D램 가격 하락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등 중국 기업이 범용 D램을 저가에 쏟아내고 있어서다. 삼성전자 DS 부문은 이런 점을 감안해 올해 실적을 토대로 내년 직원에게 줄 성과급(OPI) 지급률 전망치를 올해와 비슷한 10%대로 공지했다.

삼성 '메모리·파운드리' 동반부진…"HBM4·고부가 D램이 승부처"
기대 못미친 4분기 실적…반도체 부문 혁신 시동

연봉의 12~16%. 삼성전자가 최근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직원들에게 공지한 2026년 성과급(OPI) 지급률 전망치다. DS부문의 올해 성과급률과 같은 수치다.

삼성전자는 매년 1월 직전 연도에 거둔 실적을 반영해 부문·사업부별로 연봉의 0~50% 범위에서 성과급을 준다. 앞으로 12개월간의 성과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수치지만 현재로선 올해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이 지난해 대비 개선되지 않을 것으로 본 것이다.

반도체업계에선 삼성이 당장은 메모리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에서 동반 부진 상태에 빠졌지만, 올 하반기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와 10㎚(나노미터·1㎚=10억분의 1m) 6세대 D램(1C D램) 시대가 열리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D램 부진 직격탄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잠정 실적(매출 75조원, 영업이익 6조5000억원)을 8일 공개했다. DS부문은 지난해 3분기(3조8600억원)보다 1조원(약 30%) 이상 적은 2조7000억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스마트폰 부문에선 2조2000억원, 디스플레이 9000억원, TV·가전과 하만에선 3000억~4000억원 수준의 영업이익을 거뒀을 것으로 업계는 파악하고 있다.

반도체 부진을 부른 첫 번째 요인은 범용 D램 가격 하락이다.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PC용 D램 범용제품 가격은 35.7% 급락했다. 중국 D램업체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가 PC용 저가 D램을 양산해 한국산보다 30% 이상 저렴한 가격에 시장에 푼 탓이다. 전체 D램 매출에서 HBM을 제외한 범용 D램 비중이 80~90%에 달하는 삼성전자는 가격 하락의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올 상반기에도 범용 D램 급락

올 상반기에도 범용 D램 하락세는 이어질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일부 국회의원에게 제출한 설명자료를 통해 “2025년 상반기에도 더블데이터레이트4(DDR4) 등의 추가 가격 하락이 예상될 정도로 업황이 저조하다”고 밝혔다. 반도체 전문 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 1분기 D램 가격이 평균 8~13%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HBM과 파운드리, 팹리스(반도체 설계) 등 수주형 반도체 사업에서 ‘큰손’ 고객을 확보하지 못한 것도 삼성으로선 부담이다. 삼성전자는 올 2분기께 HBM3E 설계 변경을 통해 엔비디아의 문을 다시 두드릴 계획이지만 ‘테스트 통과’를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파운드리는 3㎚ 등 최첨단 공정 고객을 확보하는 데 실패하면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분기마다 1조~2조원 규모의 영업손실을 내고 있다.

○1C D램 개발 ‘배수의 진’

삼성전자는 지난해 5월 전영현 DS부문장(부회장) 취임 이후 반도체 경쟁력 회복을 위한 중장기 전략을 차근차근 실행하고 있다. 첫 시험대는 HBM3E 8단과 12단 제품을 엔비디아에 납품하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HBM3E를 AMD에 공급하고 있지만 엔비디아의 벽은 아직 못 넘고 있다. 올 4분기 본격화하는 6세대 HBM(HBM4) 납품전에서 TSMC와 SK하이닉스 연합군에 대응해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는 과제도 있다.

전문가들은 “진짜 승부는 1C D램으로 불리는 6세대 10㎚급 D램의 성공적인 개발·양산에서 날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는 1C D램을 HBM4의 ‘코어다이’(베이스다이 위에 쌓는 D램)로 활용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경기 평택캠퍼스 4공장에 1C D램 생산 라인을 구축하기 위해 지난해 4분기 설비 주문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잠정실적 설명자료에서도 “미래 기술 리더십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비와 첨단 공정 생산능력 확대를 위한 초기 구축 비용이 증가했다”며 1C D램에 상당한 투자를 했다고 시인했다.

시스템LSI는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엑시노스 시리즈의 성공적인 개발이 선결 과제로 꼽힌다. 파운드리는 최첨단 공정으로 불리는 2·3㎚ 공정의 안정적인 수율을 확보하는 동시에 전통(레거시) 공정에서도 고객을 불러 모으는 ‘투트랙’ 전략을 성공적으로 이행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이 제품 설계, 공정 개발, 생산, 품질 등 전 분야에서 개혁에 나선 만큼 올 하반기부터 성과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