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연합뉴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연합뉴스
멕시코 대통령이 멕시코 5개 주·미국 5개 주·쿠바 등에 둘러싸인 멕시코만의 이름을 '미국만'(아메리카만)으로 바꾸자는 도널드 드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언급에 '미국 국호 개칭은 어떻겠느냐'며 품격있게 응수했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정례 아침 기자회견에서 대형 스크린에 17세기 고지도 이미지를 띄우고 "북미 지역을 멕시코 아메리카로 바꾸는 것 어떨까"라며 "참 듣기 좋은 이름인 것 같다"고 농담 섞인 어조로 말했다.

트럼프에 한방 먹인 멕시코 대통령

해당 지도에는 미국 국토 대부분에 'AMERICA MEXICANA'라고 표기돼 있었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1607년 북미 대륙 명칭을 살필 수 있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멕시코만이라는 이름은 유엔에서 인정하는 이름"이라며 "17세기에도 멕시코만이라는 이름이 존재했고, 국제적으로도 통용되고 있으며, 미국이라는 나라가 생기기 전부터 확인되는 명칭"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앞서 '멕시코만의 이름을 미국만으로 바꿀 것'이라고 피력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발언에 대한 멕시코 정부의 반응이다. AP통신은 "멕시코만은 미국 남동부에 맞닿아 있어 제3의 해안으로 여겨지기도 한다"며 "육로 국경에 있는 리오그란데강 역시 멕시코에서는 브라보강(리오 브라보)이라고 부르는 등 양국이 서로 다른 이름을 부르는 사례가 있다"고 짚었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그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측과의 협력 의지를 강조하면서도 그의 언급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거나 일일이 대응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겉으로는 '반발', 속으로는 '실리'

지난달 23일(현지시간) 정례 기자회견에서 '멕시코 카르텔을 테러 조직으로 지정할 것'이라는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 발언에 대해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며 그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되 푹 빠질 필요는 없다"면서 "이슈에 하나하나 연연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 게 이런 그의 입장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멕시코 정부는 다음 달 트럼프 당선인 취임을 앞두고 역내 무역협정 당사국 지위를 잃지 않기 위해 미국 차기 정부에 보조를 맞추는 듯한 일련의 정책을 내놓고 있다. 중국을 겨냥한 선제적 수입 의류 등 관세 부과와 대부분 중국산인 모조품 불법행위 단속이 대표적이다.

이를 통해 멕시코에 대한 미국의 관세 장벽 위협에 몸을 낮추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게 현지 매체 엘에코노미스타의 분석이다. 그러면서도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보복 관세 으름장에 대응을 천명하거나 트럼프 언사에 대해 선별해 경청하겠다는 취지의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전 정부에서 보였던 대미 전략과 유사하다. 멕시코 전 정부는 2019년께 이민자 유입 억제 미비에 대한 불만과 함께 미국에서 꺼내든 관세 부과 카드에 맞불 관세로 맞대응할 것을 공표하면서도 수일간의 치열한 협상을 통해 현재의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협상 타결을 끌어냈다.

과학도 출신 여성 대통령

이후 멕시코는 남부 국경 '철통 방어'에 나섰는데, 이를 두고 AP·로이터통신은 "멕시코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는 전문가 반응을 보도하기도 했다. 앞에선 공세적 입장을 취하면서도 뒤에서는 물밑 협상과 미국 보조 맞추기로 실리를 챙겼다는 얘기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전 대통령의 정치적 후계자를 자처하는 셰인바움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전 정부 주요 정책을 계승하겠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밝힌 바 있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멕시코 최고의 대학교인 멕시코 국립자치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에너지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얻은 과학자 출신이다. 멕시코시티 시장 시절 과학적 데이터에 근거해 코로나19 위기를 빗겨가는 등 합리적 리더십으로 주목받고 있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