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침해' 손해배상 최대 5배 증액…"법원·당사자가 적극 활용해야" [화우의 바이오헬스 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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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확보 어려워 손해 산정 힘들어
"美 사례 따라 증거 확보 제도 필요"
"美 사례 따라 증거 확보 제도 필요"
한경 로앤비즈의 'Law Street' 칼럼은 기업과 개인에게 실용적인 법률 지식을 제공합니다. 전문 변호사들이 조세, 상속, 노동, 공정거래, M&A,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 이슈를 다루며, 주요 판결 분석도 제공합니다.의약특허를 비롯한 특허권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은 특허권자가 입은 일실이익(Lost Profits)이나 합리적 실시료(Reasonable Royalty) 등 실제 손해액을 전보함이 원칙이지만, 법원은 침해행위가 고의적인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그 실제 손해액보다 증액하여 배상액을 정할 수 있다.
당초 우리 특허법 제128조 제8항은 2019년 1월 증액배상 제도를 도입하면서 실제 손해액의 3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배상액을 정할 수 있도록 했으나, 그 후 2024년 2월 법률 개정을 통해 이를 5배까지로 대폭 강화하였고, 같은 해 8월부터 개정된 규정이 시행되고 있다.
사실관계 종합적 고려해 '증액배상' 결정
특허법 제128조 제9항 제1 내지 8호는 증액 배상액을 판단할 때 고려할 사항으로서, “1. 침해행위를 한 자의 우월적 지위 여부, 2. 고의 또는 손해 발생의 우려를 인식한 정도, 3. 침해행위로 인하여 특허권자 및 전용실시권자가 입은 피해규모, 4. 침해행위로 인하여 침해한 자가 얻은 경제적 이익, 5. 침해행위의 기간, 횟수 등, 6. 침해행위에 따른 벌금, 7. 침해행위를 한 자의 재산상태, 8. 침해행위를 한 자의 피해구제 노력의 정도” 등 8가지 요소를 규정하고 있다.일찍부터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하나로서 실제 손해액의 3배까지를 증액할 수 있도록 한 미국 특허법상으로는 증액배상의 판단 요소에 관한 규정은 따로 두고 있지 않은데, 이에 관한 선도적 판례인 연방순회항소법원(CAFC)의 Read Corp. v. Portec Inc. 판결은 “(1) 고의적으로 베꼈는지 여부, (2) 특허가 무효이거나 침해가 아니라고 선의로 믿었는지 여부, (3) 침해자의 소송당사자로서의 행위, (4) 침해자의 규모와 재정상태, (5) 사안의 불명확성, (6) 침해행위의 기간, (7) 침해자의 피해구제를 위한 행위, (8) 침해자의 침해 동기, (9) 침해자가 침해행위를 숨기려고 시도했는지 여부 등 9가지 요소를 들고 있다.
그런데 미국 판례는 증액배상 여부를 결정할 침해행위의 지독함(egregiousness)의 정도는 심리 결과 나타나는 모든 사실과 정황에 기초하여 판단하되, 위 9가지를 포함하여 판단한다고 하고 있어서 위 9가지 요소는 어디까지나 예시적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지, 이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미국 특허법상 증액배상제도의 영향으로 도입된 우리 특허법 제128조 제9항의 해석상으로도 증액배상 여부나 배상액 판단 시 고려할 8가지 요소는 이를 예시적인 것으로 보아야 하고, 법원은 그 외에도 심리 결과 인정되는 모든 사실관계와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증액배상 여부나 정도를 결정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국내 소송 시 '과소배상' 경향 뚜렷
이와 관련하여 필자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미국 판례상 들고 있는 “침해자의 소송당사자로서의 행위”와 “침해자가 침해행위를 숨기려고 시도했는지 여부”라는 두 가지 요소이다.우리 특허법상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실무적으로 담당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문제점은 침해행위의 입증이나 손해액 산정을 위한 증거자료를 확보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은 소송 초기에 쌍방 당사자가 가지고 있는 증거를 상대방의 요구가 없더라도 당연히 제출하도록 하는 당연개시와 그 후 상대방의 요구에 따라 증거를 제출하는 요구개시 등의 증거개시제도가 잘 발달되어 있고, 일본도 소제기전 조회제도와 증거수집처분제도, 전문가에 의한 계산감정제도 등을 새로이 도입하여 실효적인 증거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민사소송법상의 문서제출명령이나 특허법에 도입된 자료제출명령을 통해 증거를 수집하게 되는데, 상대방은 거의 예외 없이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법원이 제출명령을 내리는 것 자체부터 극력 반대하면서 시일을 끌고, 어렵사리 제출명령이 내려지더라도 불응시의 실질적인 제재가 거의 없다 보니 증거제출을 계속 거부한다거나 형식적으로 극히 일부 자료만 제출하고 마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로 인해 특허권자의 일실이익이나 합리적 실시료 상당액을 증거에 따라 계산하여 배상을 명하는 판결은 나오기가 힘들고, 대부분의 사건이 재판부의 재량에 의한 산정 방식으로 해결되어 손해배상액의 예측가능성을 낮추고 실손해에 비해 과소배상되는 경향을 보여왔다.
침해자로서는 침해행위가 발각되지 않으면 더욱 좋고, 발각이 되더라도 실제 손해액 이하만 배상하게 돼 밑질 것이 없는 장사이니, 침해 경고뿐만 아니라 심지어 1심 패소판결을 받은 후에도 항소하여 다투면서 침해행위를 계속하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
'증액배상 규정' 적극 활용해야
이와 같이 불합리한 상황을 개선하고 우리 소송실무상으로도 실효적인 증거수집이나 적정한 손해배상액의 산정이 이루어지도록 하려면 소송당사자나 법원 모두가 특허법상 강화된 증액배상 규정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증액배상 규정이 신설되거나 강화된 이후에 발생하는 위반행위부터 적용되는 증액배상제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사건에서 적용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앞으로 특허침해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는 특허권자나 방어하는 당사자로서는 실제 손해액에 대한 다툼에서 더 나아가 고의 또는 손해 발생의 우려를 인식한 정도라든가 침해행위자가 한 피해구제 노력의 정도 등 증액배상액의 산정에 관한 여러 가지 고려 요소에 대한 공방도 불가피하게 될 것이니, 특허권자로서는 침해 경고를 미리 보내고 상대방으로서는 비침해 의견의 전문가 자문을 받아두는 등의 사전적 준비와 제소 이후의 증거조사 협조, 피해구제를 위한 노력 등 사후적 대처가 모두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법원은 증액배상 규정을 과감히 적용하여 침해행위를 사전에 억제할 수 있을 정도로 손해배상액을 현실화시키는 한편, 미국 판례에서 들고 있는 “침해자의 소송당사자로서의 행위” 요소와 “침해자가 침해행위를 숨기려고 시도했는지 여부” 요소를 적극적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다.
특히 문서제출명령이나 자료제출명령에 불응하여 실제 손해액을 산정할 수 없도록 한 고의적인 침해자에 대하여는 보다 엄중한 증액배상을 명함으로써, 증액배상제도가 실효적인 증거 확보 수단으로서도 기능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이성호 법무법인 화우 고문변호사 서울중앙지방법원장으로 퇴직할 때까지 30년간 각급 법원의 판사, 재판연구관, 부장판사, 수석부장판사, 서울남부지방법원장 등으로 근무하였다. 특히 특허법원 부장판사와 수석부장판사, 서울고등법원 지식재산권 전담 재판장을 역임하면서 지식재산권과 국제사법 분야에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고, 지적재산소송실무, 재판실무편람 등 실무지침서를 분담 집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