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말라가 코스타 델 솔 국제공항에는 특별한 조류 퇴치팀이 활동하고 있다. 바로 가브리엘 페레스 페르난데스씨가 총괄하는 46여 마리의 매들이다. 매 조류퇴치 요원들은 매일 새벽 공항 주변을 비행하며 황새나 갈매기 등 새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페르난데스씨는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매들이 최대 600m의 고도에서 날면 인근 철새의 접근을 막는데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가브리엘 페레스 페르난데스씨가 매를 이용한 조류퇴치팀을 운영하고 있는 모습. 사진=다이리오 수르
가브리엘 페레스 페르난데스씨가 매를 이용한 조류퇴치팀을 운영하고 있는 모습. 사진=다이리오 수르
지난달 29일 179명의 목숨을 앗아간 무안 제주항공 참사의 원인으로 '버드 스트라이크'(조류 충돌)가 지목된 가운데, 국내 공항에는 이러한 환경과 생태계를 고려한 ‘맞춤형 퇴치 전략’이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스페인, 아르헨티나 등 해외 공항에서는 신기술 도입과 함께 전통적인 '매사냥'을 활용한 조류 퇴치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여전히 총포류 사용 등에 의존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매들도 조류퇴치 '원팀'

9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해외 각국은 공항이 위치한 지역의 생태계를 고려해 매를 활용하는 등 맞춤형 조류 퇴치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조류 퇴치 전담 인원이 4명에 불과하고, 기존의 총포나 폭음 경보기 등 전통적인 퇴치법에 의존하는 무안국제공항 등 국내 공항과는 대조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사고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조류 충돌(버드스트라이크)는 항공기에 가장 큰 위협이다. 항공기 엔진에 새가 빨려 들어가면 화재가 발생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전 세계 공항들은 버드스트라이크 방지를 위해 활주로 주변의 조류를 사살하는 극단적 방법까지 동원하고 있다. 조류 충돌로 비상 착륙한 탑승객 전원이 생존했던 ‘허드슨강의 기적’(US 에어웨이즈 1549편 사고)이후 미국 당국은 원인으로 지목된 캐나다 거위의 개체 수를 줄이기 위한 대규모 살처분 조치를 벌였다.
카라스코 국제공항의 마우리시오 라틴씨가 매를 이용한 조류퇴치를 시연하고 있는 모습 사진=TV CUIDAD 유튜브 캡쳐
카라스코 국제공항의 마우리시오 라틴씨가 매를 이용한 조류퇴치를 시연하고 있는 모습 사진=TV CUIDAD 유튜브 캡쳐
대규모 살처분이나 총포를 사용한 퇴치법과 다르게 매를 이용한 조류 퇴치 방법은 생태적 측면에서 주목받는다. 중세시대 매 사냥이 활발했던 스페인과 같은 문화권인 남미 공항에서 주로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를 띄우면 다른 새들에게 포식자가 거주하고 있다는 경고를 줄 수 있다.

40마리가 넘는 매 조류퇴치반을 운영하는 스페인 말라가 코스타 델 솔 국제공항이 대표적 사례다. 미국 플로리다의 템파 국제공항,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엘 팔로마르 공항, 우루과이 카라스코 국제공항, 멕시코시티 국제공항 등도 매를 조류퇴치에 활용하고 있다.

이런 조치는 공항 주변 조류의 특성을 면밀히 연구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인근 조류가 '천적'으로 인식할만한 적당한 맹금류를 선택해, 이를 길들이고 운영하는 전문가들의 협조도 필수적이다. 최유성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국가철새연구센터 연구사는 “매나 모형 매를 이용한 퇴치법이 모든 상황에서 영향이 있다곤 볼 수 없지만, 조류의 특성을 충분히 연구했다면 활용해볼만하다”고 설명했다.
멕시코시티 조류퇴치팀이 트럭을 이용해 매와 함께 공항 주변을 돌며 퇴치 작업에 나선 모습 사진=AFP Español 유튜브 캡쳐
멕시코시티 조류퇴치팀이 트럭을 이용해 매와 함께 공항 주변을 돌며 퇴치 작업에 나선 모습 사진=AFP Español 유튜브 캡쳐

“뒤처진 조류퇴치시스템 개선해야”

전문가들은 한국에서도 조류 충돌이 빈번함에도 공항 생태계를 고려한 체계적인 퇴치 방안이 마련되지 않았고, 해외에서 성공적으로 운영 중인 기술조차 도입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인천공항은 매와 독수리 소리를 내는 드론 등을 활용해 상대적으로 나은 상황이나, 다른 공항들은 여전히 총포류나 폭음경보기 등 기존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 조류 전문가들은 새의 학습능력 때문에 모형과 소음 등을 이용한 퇴치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은 2007년 세계 최초로 조류 탐지 레이더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아직 새떼를 포착할 수 있는 조류탐지 레이더를 도입한 국내 전무한 실정이다.

코로나19 이후 항공기 운항이 정상화하면서 국내에서도 조류 충돌 사고가 증가세를 보이고 있어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한국공항공사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 6월까지 국내 공항에서 발생한 조류 충돌은 총 623건으로, 2021년 109건, 2022년 131건, 2023년에는 152건 등으로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이휘영 인하대학교 항공경영학과 교수는 “현재 국내 공항의 조류 퇴치 방법은 국제 기준에 비해 분명히 뒤처져 있다”며 “조류 탐지 레이더를 시작으로 해외에서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기술들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항별 생태계에 적합한 퇴치 방안을 연구하는 것도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정희원 기자 to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