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너 하비에르 카마레나(왼쪽부터), 테너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 테너 롤란도 비야손.
테너 하비에르 카마레나(왼쪽부터), 테너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 테너 롤란도 비야손.
서양음악사에서 로시니만큼 행복하고 평탄한 인생을 산 작곡가도 드물다. 특히 오페라 장르가 주특기였기에 39편이라는 다작을 냈다. 1816년, 24세 때 만든 ‘세비야의 이발사’의 빅히트는 그에게 부(富)와 명예를 가져다주기에 충분했다. 평생 쓸 재산을 30대에 축적한 그는 37세 때 미식가이자 요리연구가로도 명성을 떨친다.

레시피를 개발해 셰프에게 추천하기도 하고, 때론 강요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유럽의 고급 식당에 가면 ‘알라 로시니’, 즉 ‘로시니 풍으로’ ‘로시니의 레시피에 따른’ 등의 메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트러플(Truffle)이라 불리는 송로버섯을 특히 좋아해 로시니가 추천하는 요리의 주재료나 부재료로 빠지지 않는다.

오페라 부파(Opera buffa), 즉 희가극(喜歌劇)의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세비야의 이발사’는 언제나 인기 오페라 톱10에 드는 작품이다. 내용은 단순한 편. 청년 알마비바 백작이 부잣집 처녀 로시나에게 홀딱 반해 결혼하려 드는데 경쟁자와 방해꾼이 너무나 많다. 다행히 꾀 많은 이발사 피가로의 도움으로 마침내 목적을 달성한다는 내용이다.

프랑스 극작가 피에르 보마르셰(1732~1799)의 이른바 ‘피가로 3부작’ 중 2편에 해당하는 ‘피가로의 결혼’이 1786년 모차르트에 의해 대성공을 거두자, 너도나도 1편을 오페라화하려고 달려들었는데 결국 최종 승자는 로시니에 의해 매조지게 된 경우다. 체사레 스테르비니가 이탈리아어로 각색했다.

막이 오르면 알마비바 백작이 악사들과 함께 등장한다. 로시나를 향한 불타는 마음을 견딜 수 없어 새벽부터 그녀의 발코니 아래로 왔던 것. 사랑은 시간을 가리지 않는 법이다!

“하늘은 마침내 미소 짓고, 새 녘이 밝아오네/아름다운 그대는 아직도 잠들어 있구려/나의 소중한 사랑이여, 어서 일어나/그대를 사모하는 이 벅찬 가슴에 안겨 주세요/큐피드의 화살이 박힌 사랑의 상처를 치유해주길/정녕 어여쁜 당신 모습은 이토록 내 마음을 애타게 한다오/아, 달콤한 사랑이여, 이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에 또 있을까.”

‘아름다운 아침은 밝아오고(Ecco, Ridente in Cielo)’. 이름하여 ‘알마비바의 카바티나’다. 직역하면 ‘자/Ecco, 하늘에서/in Cielo, 빛이 난다/Ridente’. 곧,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노래를 불렀더니 어느새 날이 밝았다는 뜻이다. 카바티나는 일반적으로 오페라에서 아리아보다도 더 선율적이면서 단순한 형식을 가진 서정적 독창곡을 말한다.

멕시코 테너 라몬 바르가스가 참 잘 불렀다. 2000년, 36세 전성기 녹음. 이런 음색·음량·음역을 지닌 가수를 가리켜 ‘레제로 테너’라고 부른다. 가볍고 날렵한 음색에 고음과 저음을 빠른 속도로 오르내리는 기교를 탑재하고 있다. 장식음이 많고, 위아래 소리를 경쾌하고 줄기차게 왔다 갔다 해야 하는 로시니 작품에 맞춤형이라고 할 수 있다.

남미 출신에 레제로 테너가 많다. 바르가스의 뒤를 잇는 멕시코 가수 하비에르 카마레나(49), 페루 출신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는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52), 그리고 리릭과 레제로의 중간쯤 된다고 할까? 멕시코 출신인 롤란도 비야손(53)이 있다.

‘세비야의 이발사’ 명반으로는 나폴리 로시니 악단의 1964년 음반이 있다. 1983년 판으로 메조소프라노 아그네스 발차, 테너 프란치스코 아라이자, 바리톤 토머스 알렌이 노래하고 네빌 매리너가 지휘한 성 마틴 아카데미 악단이 빛난다.

강성곤 음악 칼럼니스트·전 KBS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