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정권은 더 큰 위험에 언제든 손을 댈 수 있는 매우 불안한 상태에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정치적 혼란에 빠져 있죠. 차기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와의 외교안보 관련 현안 논의를 탄핵 절차가 모두 끝난 이후로 미뤄 둘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픽=이정희 기자
그래픽=이정희 기자
미국의 대표적 안보 분야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선임연구원(사진)은 현재 한반도의 상황을 ‘안보 공백’이라고 진단했다. 평화의 균형을 유지해온 힘들이 자칫 돌발 변수 하나로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베넷 선임연구원은 한반도 정세, 북한의 핵무기 등을 연구하는 세계적 군사·외교안보 전문가다. 인터뷰는 지난달 말 서면으로 이뤄졌다.

브루스 베넷 "韓 신뢰 잃어…트럼프, 탄핵 해결전까진 한반도 관심 안둘 것"
▷북한의 현 상황을 어떻게 보시나요?

“북한 내부 상황이 김정은을 상당히 위험한 상태로 몰아넣고 있어요. 의사결정에 인간의 비합리적인 심리적 요인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인지적 억제이론에 따르면 김정은은 ‘손실 영역’에 처해 있습니다.”

▷어떤 의미입니까.

“더 큰 위험을 언제든 감수할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이에요. 그가 약 1년 전에 통일을 공식 포기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어요. 북한군을 러시아에 파병한 것도 매우 위험한 결정이었습니다.”

▷체제 불안이 더 심해지겠습니다.

“북한의 엘리트가 심각하게 동요하고 있을 겁니다. 통일에 대한 포기는 그들의 몇 안 되는 희망 중 하나를 없애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죠. 러시아 파병도 탈북을 최소화하기 위해 주로 핵심 계층 출신인 병사들을 보냈을 텐데 사망자가 속출하면서 엘리트층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을 겁니다.”

▷미·북 정상회담이 재개될 것으로 보십니까?

“글쎄요. 김정은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또다시 담판하려고 할지는 쉽게 단정하기 어렵겠네요. 트럼프 대통령이 무엇을 제시하느냐에 달려 있겠죠. 2019년 하노이 정상회담은 김정은을 약하게 보이게 만들었거든요. 회담 실패로 인해 북한은 많은 대가를 치렀죠.”

▷그래서 러시아를 활용하는 것 아니가요.

“그렇긴 한데 러시아가 북한에 큰 가치를 제공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거의 모든 역량이 소진된 상태예요.”

▷북한의 핵 위협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미국 정보기관에 따르면 북한은 위기나 갈등의 어느 단계에서든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핵무기 위협이 커질수록 북한의 핵 사용 문턱은 점점 낮아질 겁니다.”

▷트럼프 정부는 어떻게 대응할 것으로 보시나요.

“트럼프 팀은 현재 한국 문제를 다루는 데 큰 관심이 없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트럼프 당선인은 자신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느끼는 다른 주요 위기들에 집중하려 하고 있어요. 어쩌면 트럼프 진영은 한국의 현재 위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미·북 핵 담판 가능성을 낮게 보는군요.

“당장 성사되기는 어렵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럼에도 북한의 핵무기 생산을 어느 정도 동결시키기 위해 보다 공격적인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과 자국의 안보 정책이 일치한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하겠죠. 미군의 주둔과 관련된 비용, 토지 사용 등의 지원에 대해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적극적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한·중 관계도 변수인데요.

“중국은 2049년까지 ‘글로벌 지배국가’가 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향후 몇 년 동안 한국과 주변국에 상당한 압력을 가할 거예요. 과거 한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경제적 보복을 넘어서는 수준일 것입니다.”

▷한국으로선 꽤 어려운 상황으로 보입니다.

“오해가 다소 있는 것 같네요. 오는 20일 백악관에 입성하는 트럼프 당선인은 보수 진영의 정치인입니다. 트럼프 2기 정부는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을 원합니다. 한국의 정치적 혼란은 차기 트럼프 정부가 한국 정부와 협력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 수 있어요.”

▷불확실성 자체가 문제입니까?

“네 물론 그렇죠. 미국 입장에선 협상하고 논의할 파트너가 없는 셈이잖아요. 1주일 뒤에 바뀔지, 6개월 뒤에 바뀔지 모르는 파트너와 중요한 외교안보에 관한 사안을 얘기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더 큰 우려 사항은 그것만이 아닙니다.”

▷무엇을 말하는 건지요.

“윤석열 대통령의 1차 탄핵소추안을 보고 미국 조야에선 우려가 많았습니다. 북한, 중국, 러시아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가 탄핵 소추의 사유로 거론됐어요. 이 같은 생각은 트럼프 행정부와 잘 맞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나중에 그 문구가 삭제됐습니다.

“미국 조야에서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건 한국의 자유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다는 거예요. 한국의 보수 진영이 무너지고 있다는 인상을 미국에 심어주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윤 대통령에게 협조한 (보수) 정치인은 소수인 것으로 아는데 보수 전체가 공격당하는 현상은 자유민주주의의 원칙에도 어긋납니다.”

▷한·미 동맹의 미래는 어떻습니까.

“불확실해 보입니다. 미국에서는 한국이 동맹에 충분한 기여를 하지 않고 있다는 의견이 커지고 있습니다. 트럼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미국은 한·미 안보의 기여에 대한 균형을 더 엄격하게 요구했을 것입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