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면역부채와 멀티데믹
코로나19 사태가 공식 종식(2023년 5월)된 지 1년6개월이 지난 지금, 호흡기 질환이 동시다발로 터져 나와 곳곳이 난리다. 인플루엔자(독감) 의심 환자 수는 2016년 이후 8년 만에 최대다. 소아과는 RSV(호흡기 세포융합바이러스)에 감염된 아이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코로나19 환자도 1년 전에 비해 두 배가량 늘었다. 중국에선 HMPV(인간 메타뉴모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약품이 품귀를 빚고 있고, 일본도 독감 환자가 사상 최대다.

두 가지 호흡기 질환이 동시 유행하는 것을 트윈데믹, 세 가지는 트리플데믹, 네 가지는 쿼드데믹이며 이를 통틀어 멀티데믹이라고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에서 한숨 돌렸는가 싶었는데 이제는 멀티데믹에 휩쓸릴까 조마조마하며 지내는 상황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멀티데믹이 도래한 이유는 뭘까. 과학자들은 ‘면역 부채’(Immunity Debt)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이런저런 세균을 접하고 이를 견뎌내거나 때로는 아파 가며 이겨내는 힘을 얻는다. 항원 바이러스에 맞서 항체가 형성되는 항원항체반응을 통해 면역력을 키우는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 기간 중 완벽에 가까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면역력을 확보할 기회를 잃었다. 병원균에 노출되지 않다 보니 면역력이 약해졌고 후일 ‘병에 걸려야 할 빚’을 안게 됐다는 것이다. 1~2세 영유아가 타깃인 RSV가 3~5세까지로 확산하며 대유행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코로나19 때 1~2세였던 어린이들의 감염이 유예됐다가 지금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독감 증가도 같은 맥락이다.

멀티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은 결국 개인위생이다. 마스크를 늘 가까이 두면서 손 씻기, 손을 입·코에 갖다 대지 않기, 기침할 땐 소매에 돌려 하기 등 위생 준칙을 생활화해야 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백신 접종이다. 현재 개발 막바지 단계라는 코로나19와 독감을 모두 예방하는 ‘콤보 백신’이 보급되기 전에는 독감과 코로나19 백신을 모두 맞는 것이 안전하다. 바이러스를 완전 정복하지 못하는 한 그 앞에서 겸손할 수밖에 없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