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살았는데 상속은 안 된다?" 사실혼의 두 얼굴 [윤지상의 가사언박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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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와 사실혼, 차이는 혼인의사
임차권·연금 등 재산은 OK, 상속은 NO
중혼적 사실혼, 법적 보호 불가
임차권·연금 등 재산은 OK, 상속은 NO
중혼적 사실혼, 법적 보호 불가
한경 로앤비즈의 'Law Street' 칼럼은 기업과 개인에게 실용적인 법률 지식을 제공합니다. 전문 변호사들이 조세, 상속, 노동, 공정거래, M&A,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 이슈를 다루며, 주요 판결 분석도 제공합니다."프랑스 전 대통령도 했다는데..." 사실혼이 더 이상 낯설지만은 않은 시대입니다. 프랑스의 올랑드 전 대통령은 트리에르와 7년간 동거했고, 그전에는 세골렌 루아얄과 25년간 사실혼 관계로 지내며 4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한때 '말 많은 관계'로 치부됐던 사실혼이 이제는 하나의 생활양식으로 자리 잡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그 법적 효과를 제대로 알지 못해 낭패를 보곤 합니다.
재산분할은 가능, 상속은 불가능
"10년 넘게 같이 살았는데 재산분할이 안 된다고요?" 사실혼 부부가 헤어질 때는 놀랍게도 법률혼 부부와 마찬가지로 재산분할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는 동안 부부가 공동으로 재산을 형성하고, 재산의 유지·증식에 기여했다면 그 재산은 부부의 공동 소유"라고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대법원 1995. 3. 10. 선고 94므1379, 1386 판결). 실무에서도 재산분할에 있어 사실혼과 법률혼을 달리 취급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배우자가 사망하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사실혼 배우자는 상속권이 없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사실혼 배우자에게 상속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상속인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객관적 기준에 의해 파악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상속을 둘러싼 분쟁을 방지하고, 상속으로 인한 법률관계를 조속히 확정하며, 거래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며 합헌 결정을 내렸습니다(2020헌바494 결정).
'진짜 사실혼'과 '가짜 사실혼' 구별법
"10년 동안 같이 살았으니 당연히 사실혼이죠."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대법원은 "사실혼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그 당사자 사이에 주관적으로 혼인의사의 합치가 있고, 객관적으로 부부공동생활이라고 인정할만한 혼인생활의 실체가 존재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대법원 1987. 2. 10. 선고 86므70 판결). 단순히 함께 산다고 해서 모두 사실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맡았던 한 사건을 소개하겠습니다. 원룸 건물을 소유한 50대 여성과 특별한 재산이 없는 60대 남성이 10년간 함께 살았습니다. 남성은 여성의 일을 도와주며 지냈는데, 어느 날 여성이 남성을 내쫓았습니다. 이에 남성은 "사실혼 파기"를 주장하며 재산분할을 청구했고, 여성은 "어려운 처지의 남성을 돕기 위한 단순 동거"라고 맞섰습니다. 치열한 공방 끝에 법원은 사실혼을 인정해 여성에게 수억 원의 재산분할을 명령했습니다.
중혼적 사실혼의 함정
이미 배우자가 있는 상태에서의 사실혼, 이른바 '중혼적 사실혼'은 법적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합니다. 재산분할은커녕 위자료 청구도 불가능합니다. 이는 혼인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또 다른 혼인적 관계를 맺는 것을 법이 보호할 수 없다는 취지입니다.현재 화제가 되는 사례도 있습니다. 영화감독 홍상수와 배우 김민희의 관계,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의 관계는 중혼적 사실혼에 해당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다만 최태원 회장의 경우 현재 진행 중인 이혼소송이 확정되면, 그 이후부터는 김희영 이사장과의 관계가 정상적인 사실혼으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사실혼 부부의 법적 지위
사실혼 배우자는 법률상 배우자와 달리 상속권은 없지만(민법 제1003조), 다른 많은 부분에서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임차인의 지위를 승계할 수 있고, 산업재해보상보호법, 국민연금법, 공무원연금법 등에 근거한 유족연금, 근로기준법상 유족보상을 받을 권리도 인정됩니다.
만약 사실혼 배우자가 사망하고 달리 상속인이 없다면, 특별연고자에 대한 분여 제도(민법 제1057조 제2항)를 통해 일부 재산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는 원칙적으로 국고에 귀속되는 재산을 법원의 결정으로 예외적으로 받는 것에 불과합니다.
사실혼은 법률혼과 달리 해소 절차가 매우 간단합니다. 법률혼은 협의이혼 신고나 재판상 이혼 등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지만, 사실혼은 한쪽이 "헤어지자"고 하면 그걸로 끝입니다. 물론 그 책임이 상대방에게 있다면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고, 재산분할도 가능합니다.
현명한 선택을 위한 조언
법적 보호와 제한이라는 두 얼굴을 가진 사실혼. 선택은 자유지만, 그 효과는 반드시 알고 시작해야 합니다. 특히 재산 문제에서는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사실혼 관계에서 재산을 형성할 때는 계약서나 증거를 남기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상속 문제에 대비해 생전증여나 유언장 작성을 고려해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상담했던 한 의뢰인은 10년간의 사실혼 관계에서 함께 모은 돈으로 구입한 아파트를 배우자 명의로 해두었다가, 배우자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모든 것을 잃을 뻔했습니다. 이처럼 사실혼이 늘어나는 시대, 법적 보호의 한계를 정확히 알고 대비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될 것입니다.
윤지상 법무법인 존재 대표변호사 l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으며, 제45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제35기 수료 후 전국 주요 법원 판사로 재직하며 2022년 대전가정법원 부장판사로 퇴임했다. 법관 재직 시절 다수의 이혼 재판과 상속재산분할 심판을 하였고, 상속재산분할 및 유류분재판실무편람, 주석 민법(친족상속편)의 공동 저자이기도 하다. 현재 법무법인 존재 대표변호사이자 국민권익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유튜브 상속언박싱이라는 채널을 운영하고 있고, 상속과 관련된 여러 강연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