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혜의 트렌드 인사이트] 무사한 한 해를 바라며
새해가 밝았다. 사람들은 어떠한 신년 인사를 나눴을까? 각종 단톡방과 SNS에서 자주 보이는 인사는 ‘무사하고 무탈하자’거나 ‘건강하자’는 말이었다. ‘부자가 되자’거나 ‘큰 성공을 이루자’는 인사는 눈에 띄게 줄었다. 너무 행복하지도, 너무 불행하지도 않은 일상. 그저 무난하고 안온한 하루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무탈한 하루면 충분하다는 사람들은 어떤 면면을 지녔는지 살펴보자.

첫째, 남에게 과시하기보다 나에게 집중하는 소비가 나타나고 있다. 최근 고급치약의 매출이 증가하고 있다. 올리브영에 따르면 2023년 치약 카테고리 매출은 1년 전 대비 45% 신장했다고 한다. 좋은 치약을 썼다고 남들이 알아볼 리 없다. 고급 치약이 주는 즐거움은 비싼 가방이나 립스틱처럼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사적인 즐거움이다. 보여주기보다 ‘나에게 집중하는 소비’가 확산하고 있다는 뜻이다.

취미 영역에서도 보여주기보다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는 취미활동이 부상하고 있다. 할머니 사이에서나 유행할 법한 뜨개질이 최근 2030세대 사이에서 인기다.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 분석 결과를 살펴보면, 뜨개 용품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뜨개 전문점’과 뜨개를 하면서 카페를 이용할 수 있는 ‘뜨개 카페’ 이용 건수가 2022년 대비 지난해 빠르게 증가했다.

둘째, 평범한 일상이 주목받는다. 코난테크놀로지의 소셜분석 결과에 따르면 ‘무탈·평범·보통’의 온라인 언급량이 최근 2년 동안 완만하게 증가하고 있는데, 특히 이와 함께 언급된 연관어가 인상적이다. ‘가족·부모님·아이·남편’ 등 가족 구성원, ‘고기·밥’ 같은 평범한 식사, ‘유튜브·넷플릭스’ 같은 일상 활동이 대표 연관어로 등장했다.

콘텐츠 영역에서도 무탈한 일상을 다루는 영상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유튜브 채널 ‘인생 녹음 중’이다. 지난해 1월 개설된 이후 단 8개월 만에 총 31개 영상만으로 구독자 108만 명을 돌파했다. 이 채널의 성장이 인상적인 이유는 콘텐츠가 별다른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주요 콘텐츠가 전부 부부의 대화가 담긴 블랙박스 녹음 파일이다. 부부가 운전하며 나누는 시시콜콜한 대화나 주고받는 노래가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쳐나는 유튜브에서 인기를 끈다는 사실은 평범한 일상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두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자기 긍정 확언이 적힌 굿즈도 인기다. ‘미도리작업실’이라는 문구점에선 확언이 적힌 굿즈 상품이 인기다. 예를 들어 ‘금일의 표어’라는 스티커는 매일 나에게 해주고 싶은 좋은 문장이 적혀 있다.

이런 사례는 한국 사회의 행복 담론이 바뀌고 있음을 시사한다. 거창한 성취는 물론이고 굳이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무탈하고 안온한 하루를 긍정하는 태도가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열심히 달려도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것 같지 않다는 현세대의 좌절도 반영한다.

이런 트렌드가 어디서 기인했든, 중요한 것은 안온한 하루를 보낸 자신을 대견하게 여기는 태도 자체가 의미 있다는 것이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는 2025년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