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컴 시대 멀었다"는 젠슨 황에…바라츠 "이미 상용화" 반박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던진 ‘양자 기술의 미래’ 논쟁이 뜨겁다. 상용화에 20년 이상 걸릴 것이라는 젠슨 황 CEO의 전망과 이미 산업 현장에 적용됐다는 양자컴퓨터업계의 반박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상용화 시기를 두고 논란이 있지만 양자가 인공지능(AI) 다음의 핵심 기술이자 AI를 완성할 기술이라는 데엔 이견이 없다. 미국 일본 캐나다 중국 등에 비해 조악한 국내 양자 생태계 조성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직 이르다” vs “이미 시작됐다”

10일 과학계에 따르면 젠슨 황 CEO는 최근 ‘CES 2025’ 기자간담회에서 양자컴퓨터 상용화 시기에 대한 질문을 받고 “(유용한 양자컴퓨터가 나오기까지) 20년이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이 수긍할 것”이라며 상용화에 회의적인 의견을 밝혔다.

젠슨 황 CEO 발언이 나온 날 미국 뉴욕증시에서 양자컴 관련 기업 주식이 일제히 폭락했다. 전일 대비 리게팅컴퓨팅은 45%, 퀀텀컴퓨팅은 43%, 디웨이브퀀텀은 36% 내렸다. 순수 양자기업 가운데 대장주로 꼽히는 아이온큐도 39% 폭락했다. 미 자산운용사 레버리지드셰어스의 ‘아이온큐 3X ETP’ 레버리지 상품은 상장폐지 절차에 들어갔다. 이 상품은 아이온큐 주가가 하루 1% 오르면 3% 상승하고, 반대로 주가가 내리면 세 배 하락하게 설계됐다. 아이온큐 주가가 39% 폭락해 원금 자체가 마이너스가 됐다.

양자컴퓨팅업계는 강하게 반박했다. 앨런 바라츠 디웨이브퀀텀 CEO는 “젠슨 황 CEO의 주장은 완전히 틀렸다”며 “수많은 기업이 우리 양자컴을 사용해 혜택을 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양자컴 상용화 시기는 15년 후나 20년 후, 30년 후가 아니라 “바로 지금, 오늘”이라고 힘줘 말했다.

디웨이브퀀텀은 2011년 세계 최초로 ‘어닐링’ 방식 양자컴 상용화에 성공한 기업이다. 어닐링은 원래 물체를 뜨겁게 가열했다가 식히며 연마하는 재료공학 용어다. 어닐링 양자컴은 이 과정과 비슷하게 에너지 함수의 높낮이를 따라 최소값을 찾아가는 계산 기계다. ‘여러 가능성을 한 번에 고려해 더 빠르게 좋은 답을 찾는’ 수학적 조합 최적화와 비슷한 개념이다.

디웨이브퀀텀은 2013년 512큐비트, 2015년 1000큐비트, 2017년 2000큐비트 양자컴을 개발했다. 우주항공, 자동차, 금융, 물류, 에너지 등 다양한 산업에 맞춤형으로 양자컴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세계 1위 방위산업 기업 록히드마틴이 디웨이브퀀텀의 양자컴을 가장 먼저 도입했다. 마스터카드, NTT도코모, 딜로이트, 지멘스 등도 고객사다. 미 항공우주국(NASA)과 오크리지국립연구소, 로스앨러모스국립연구소 등 굴지의 연구기관들도 일찍이 사용하고 있다.

일각에선 젠슨 황 CEO가 양자컴 기업에 의도적 견제구를 날린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엔비디아는 슈퍼컴퓨터에 들어가는 그래픽처리장치(GPU)로 전 세계 데이터센터 AI 반도체 시장의 90%가량을 장악하고 있다. 양자컴과 슈퍼컴은 초고성능컴퓨팅(HPC) 기술에서 대체재이자 보완재인 관계다. 양자컴이 GPU를 조금이라도 잠식하면 엔비디아의 타격이 불가피한 셈이다. 미국 투자회사 크레이그할럼의 리처드 섀넌 애널리스트는 “양자컴퓨팅은 엔비디아가 가장 큰 수혜를 누리고 있는 기존 컴퓨팅 사업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테크 스타트업들 양자 상용화 박차

산업계에선 양자컴퓨터를 활용하면 미지의 연구 영역에 발을 들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신약 개발 분야가 대표적이다. 신약 후보물질을 찾아낼 때 속도와 정확도를 크게 개선할 수 있어서다. AI와 빅데이터 영역뿐 아니라 신소재 발견, 금융 포트폴리오 최적화, 핵융합, 우주 탐사, 보안, 원유 탐사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상용화를 기다리고 있다.

상용화에 속도가 붙은 게이트 방식 양자컴은 초전도, 이온트랩, 퀀텀닷, 중성원자 방식 등 여러가지가 있다. 금색 전선이 주렁주렁 달린 샹들리에 모양 양자컴은 절대온도 0도(영하 약 273도)의 극저온에서 가동하는 초전도 방식이다. 구글이 한 달 전 공개한 105큐비트 ‘윌로우’가 이 방식이다. 계산 속도 기준 세계 2위 슈퍼컴인 ‘프런티어’에서 무려 10자 년이 걸리는 계산을 5분 내 풀었다고 구글은 주장했다. 앞서 초전도 방식을 주도한 건 IBM이다. 클라우드 기반 풀스택 양자컴 기업인 리게티컴퓨팅도 초전도 쪽이다.

또 다른 방식으론 이온트랩이 있다. 전기장과 레이저를 이용해 이온을 트랩(덫)에 가두고 각 이온의 양자 상태를 조작해 큐비트를 구현한 다음 연산을 한다. 이 분야 선도 기업은 아이온큐다. 나스닥시장 상장사 허니웰인터내셔널도 이온트랩 기반이다.

안정성이 높은 중성원자 방식도 각광받고 있다. 극저온에서 중성원자를 배열한 다음 분자로 치환할 때 생기는 큐비트를 활용한다. 미국 큐에라컴퓨팅과 프랑스 파스칼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큐에라는 미국 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진이 공동 설립한 양자 스타트업이다.

최근엔 중국이 재원과 인재를 대거 투입해 미국과의 기술 격차를 좁히고 있다. 미국 정보혁신재단(ITIF)에 따르면 중국은 양자에 누적 150억달러를 투자했다. 최근엔 프런티어가 풀 수 없는 문제를 푸는 105큐비트 양자컴 ‘쭈충즈3.0’을 개발했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국가안보상 전략자산으로 양자 기술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양자컴으로 해킹하면 기존 군사 정보 체계가 무력화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은 지난해 5월부터 중국 양자 기술과 관련한 자국과 동맹국의 투자를 제한하고 있다.

한국은 양자 기술과 관련해 불모지에 가깝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해 7월 발표한 ‘글로벌 기술 수준 지도’에 따르면 미국의 양자컴퓨터 기술을 100점이라고 할 때 한국은 2.3점에 불과했다. 중국은 35점으로 미국에 이어 2위에 올랐다. 맥킨지는 세계 양자컴퓨팅 시장이 2035년 약 3000조원까지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경주/이해성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