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는 일생에 걸쳐 세 차례 긴 유럽 여행과 체류를 경험했다. 작가가 “러시아인에게는 두 개의 조국이 있다”라고 했을 때 그중 하나였던 유럽, 또한 <카라마조프네 형제들>에서 이반 카라마조프를 통해 말했던 “가장 소중한 묘지”로서의 유럽은 그에게 평생에 걸친 사유의 대상이었다. 1862년의 두 달 반에 걸친 여행 후 <여름 인상에 대한 겨울 메모>를 썼고, 1865년의 세 번째 여행 이후엔 <악어>를 발표했다. 단편 <악어>(1865)에는 다음과 같은 부제가 붙어있다.

“어느 정도 나이에 어느 정도의 외모를 갖춘 한 신사가 아케이드의 악어에 의해 흔적도 없이 완전히 산 채로 삼켜지고, 이 때문에 발생한 사건에 관한 실화.”
엘레나 사모키쉬 수드콥스카야의 악어 일러스트 / 그림출처. LIVEJORNAL 웹사이트
엘레나 사모키쉬 수드콥스카야의 악어 일러스트 / 그림출처. LIVEJORNAL 웹사이트
악어에 삼켜진 한 남자

외국 여행이 예정된 하급 공무원 이반 마트베이치는 아내 엘레나, 친구인 화자와 함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아케이드(파사주)에서 독일인에 의해 대중에게 공개된 살아있는 악어를 구경하는데, 아내와 친구가 악어를 다 보고 원숭이 구경을 서두르는 사이 이 악어의 코를 간지럽히다 그만 삼켜지고 만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생존해 있을 뿐 아니라 악어 배 속에서 그 상황에 온전히 만족한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관심을 끌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이반 마트베이치는 악어 배 속에서 “전 인류의 문명을 개선할 꿈”을 꾸게 된다. “눈을 감고 있기만 하면 곧바로 전 인류를 위한 완벽한 천국을 고안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으로 전율하는 그를 위해 친구인 화자는 악어 배 속에 머무르고 있는 남자의 결근을 “출장 형식으로” 처리해 줄 수 있는지 그들의 직장 상사에게 문의하며 그 명목은 ‘현장 연구’라고 설명한다.
미하일 부이치코프의 악어 일러스트(1951)  / 그림출처. LIVEJORNAL 웹사이트
미하일 부이치코프의 악어 일러스트(1951) / 그림출처. LIVEJORNAL 웹사이트
악어의 주인인 독일인은 자신의 고정 자본이자 큰 재산인 악어의 건강을 염려하면서 방어에서 공격으로 즉시 자세를 바꾼다. 악어의 배를 가르고 갇힌 자를 꺼내려면 금전적으로 보상하라는 것이다. 소식을 전해 들은 직장 상사는 이에 깊이 공감하며 “무엇보다도 경제적 원칙이 우선”이고, “자본을 만들어야 한다, 즉 중간 계급, 소위 부르주아를 만들어야 한다.”라는 지인의 말을 인용한다.

그리고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는 것이 절실한 조국의 상황에서 그 화제성으로 인해 “악어 주인의 자산이 이제 막 이반 마트베이치를 통해 두 배가 되었는데, 우리는 외국 소유주를 비호하기는커녕 그의 기본적인 자산의 배를 가르려고 하고 있지 않나. 자, 이것이 과연 타당한 행동인가?”라고 그는 화자를 일깨운다.

부르주아에 대한 적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조롱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의 사회평론을 통해 1861년 농노 해방은 농민을 파멸로 이끄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개혁이라는 기호로 포장된 부르주아 혁명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중편 <여름 인상에 대한 겨울 메모>(1863)에서 작가는 부르주아에 대해 집요하게 비판을 펼치는데 그 중심에는 ‘바알 신 숭배’ 문제가 있다. 바알을 숭배하지 않기 위해, “존재하는 것을 자신의 이상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서는, 영원한 정신적인 저항과 부정이 필요하다”라는 점을 그는 지적한다. 그 바알의 강력함은 “바알은 지배하되 복종을 요구하지는 않는다”라는 데서 드러나는데, 이는 인간들이 그에게 “복종하리라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부르주아를 타파하는 데 한뜻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보이는 사회주의에 대해 도스토옙스키가 반대한 이유는 무엇일까? ‘박애’에 대한 설명을 예로 들자면, “박애란 스스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주어지는 것이며 자연 속에 존재하는 것”인데, “투쟁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고 ‘개체’가 되기를 원하는 유럽의 토양에서는 “박애는 생겨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1천 년의 민족 심성 밭갈이를 통해 이러한 “관념들이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피와 살 속으로 스며 들어가야” 하는데, 이때 구원은 ‘무개성’이 아니라 고도의 개성화, ‘고양된 개인’에게 주어진다. “모든 사람을 위해서 자유 의지로써 목숨을 바치는 행위, 모든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고 화형을 당하는 행위는 개성이 가장 강하게 발전되었을 때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도스토옙스키는 “박애주의가 없다는 사실을 알면 박애주의를 가지도록 설득하기 시작”하는 사회주의자들과 길을 달리하게 된다. “박애주의가 없기 때문에 박애주의를 만들고 구성하기를 원하”는 사회주의자들에 비해 “박애주의에 스스로 이끌리는 본성”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작가는 “박애주의로부터 누구에게 얼마만큼 이익이 돌아가는지”, “누가 어느 정도 행복을 누릴 가치가 있는지, 이를 위해서 모두가 얼마나 자발적으로 사회를 위해 자신의 개성을 희생해야 하는지” 계산하는 사회주의자들의 작태가 견딜 수 없이 못마땅하다.

인간 가치 실현의 방법론에 있어 도스토옙스키는 사회주의에 반대하는 것인데, 그의 방법론은 ‘거듭난 인간’을 전제로 할 때만 실현될 수 있다. 그래서 작가는 “한마디로 박애주의적 사랑의 원리가 생기기 위해서는 사랑해야 한다. 본능적으로 박애, 공동체, 화합에 이끌려야 한다. <...> 서로서로 사랑하라, 그러면 이 모두가 당신에게 자연히 주어질 것”이라 주장하고 있는 것이며, 이 상태야말로 진정한 유토피아라고 말한다.

그런데 작가가 이상적 공동체의 구성원을 그리며 “나의 이익에 관해서는 절대 생각하지 말고 <...> 자기를 희생”하며 “전부를 건네주되 이에 대한 보답으로 당신에게는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는” 것을 당연시한다는 ‘최대주의’적 주장을 펼 때 이는 과연 다양한 형편의 인간들이 어우러지는 사회의 원리가 될 수 있는 것인가. 그는 사랑이 제한적이나마 구현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증대되어 갈 수 있는 자유의 가능성을 너무 무시해 버린 것은 아닌가.

자본주의라는 공동의 적 앞에서

보르헤스가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를 기획하면서 도스토옙스키에서 취한 이야기는 <악어>였다. 환상 문학에 어울리는 이야기라 판단했던 것. 도스토옙스키 자신도 “고골의 소설 <코>를 모방하여 풍자적인 판타지 소설을 쓰게 되었다. 오로지 웃음을 위한 문학적 장난질”이라고 밝힌 바 있지만, 19세기 중반의 러시아 상황과 작가 자신의 현실 인식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관련 칼럼] 얼굴에서 코가 떨어져 나가더니, 그 코가 말을 걸어온다면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러시아 단편집> / 사진출처. 교보문고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러시아 단편집> / 사진출처. 교보문고
이 소설은 1865년 잡지 <시대>에 처음 게재되었는데, 동시대인들은 악어 배 속에서 말하는 이반 마트베이치의 모습이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에 앉아 <무엇을 할 것인가>를 썼던 1860년대 혁명적 민주주의 사상가 체르니솁스키에 대한 조롱을 담고 있다고 믿기도 했다.

도스토옙스키는 오래 침묵하다가 1873년 <작가일기>에 <개인적인 일>이라는 제목의 글을 싣고, 자신은 체르니솁스키에게 개인적인 악감정은 물론 사상적인 반감도 없노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악어>는 체르니솁스키 개인의 불운에 대한 희화화에 그 목적이 없었을지언정 도스토옙스키가 평소 진지하게 논의했던 혁명적 민주주의, 사회주의 성향의 지식인과 출판물을 겨냥한 것임엔 틀림없어 보인다.

러시아에는 없다는 진기한 악어를 선보이는 장소로 도스토옙스키는 ‘파사주’ 즉 ‘아케이드’를 지정한다. 파사주는 천정을 유리로 덮은 ‘통로’로 상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상가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1848년 처음 문을 열었다. 발터 벤야민은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1820년대 이후 파리의 화려한 파사주들이 자본주의라는 소비지향적인 꿈을 실현하는 현장으로 분석하고 있는데, 도스토옙스키가 보기에 1860년대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파리의 완벽한 모방이었다. 악어는 아케이드와 마찬가지로 서구 문명을, 자본주의와 이성주의를 대변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파사주 내부 / 사진. ⓒKarl Bulla, 출처. 위키피디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파사주 내부 / 사진. ⓒKarl Bulla, 출처. 위키피디아
도스토옙스키는 체르니솁스키 소설의 철학적 토대가 천박한 유물론과 공리주의라고 보았으며, 이 입장은 인간의 행동을 ‘이익’의 관점에서 설명하려 하고 사회가 “합리적 이기주의”의 원칙 위에 공개적으로 세워지기만 한다면 건강해질 것이라 주장한다는 것이다. 악어의 배에서 나오는 이반 마트베이치의 목소리는 러시아의 ‘변혁’ 시대를 이끄는 이론들을 패러디한 것이다. 그중 ‘경제 원칙’은 수 세기에 걸쳐 러시아에 존재해 온 전통적인 생활 규범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직장 상사인 티모페이 세묘니치는 보수주의자로 낡은 질서를 따르는 사람이며 진보를 불신한다. 그러면서도 농민 공동체의 파괴, 사유 재산가와 프롤레타리아의 창출, 외국인 투자에 대한 국가의 개방 등 서구의 길을 따른 경제 발전의 중요성에 주목한다. 귀족 엘리트들은 부르주아 발전 경로의 열린 전망을 이해하고, 경제 개혁과 시장 체제 창출의 필요성을 인식했으며, 이 책략에서 그들의 세습적 지배력을 유지할 가능성을 보았다. 경제 원리는 한 인간의 전체 삶을 효용의 기준에 종속시키며, 그 모범적 예인 악어 소유주 독일인은 ‘악어가 사람을 삼킨’ 사건이 그에게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줄 것임을 깨달았기에 이반 마트베이치를 악어 배 속에서 끌어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독일인의 그러한 권리를 모든 등장인물이 인정한다.

이상주의들의 격돌

사회주의에 대한 도스토옙스키의 조롱은 정당한 것이었던가? 모순에 찬 인간 존재가 지향하는 ‘수정궁-유토피아’의 부실함을 보여준다는데 있어서는 그러하겠으나, 그의 목가적 이상향도 또 다른 환상 속에 존재했던 것이 아닌지는 곱씹어 볼 일이다. ‘악어 배 속의 유토피아’를 조롱한 도스토옙스키가 현실 국가인 당시 러시아를 인류의 종교적 부활의 과제와 결부시키며 결국은 그 자신 ‘구름 위 몽상가’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사회주의 사상을 서구 자본주의사회의 파멸적 상황에 대한 “망상적 출구”라고 폄훼했던 작가는 ‘1천 년의 심성 밭갈이’를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이들의 고민을 경솔히 여긴 것은 아닌가.

그러함에도 체르니솁스키와 도스토옙스키 간 격돌은 진정한 입장의 대립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인간의 자유 확대의 역사를 굴러가게 하는 두 바퀴일 수 있다. 지상천국으로 가는 길에 일정한 강제(극한의 경우 폭력)가 개입할 수 있다고 믿는 측과 한 점의 강제도 없는 ‘순수 자유’만이 작동해야 한다고 믿는 측이 대립하는 것이다. 후자의 원리 위에서 지상의 국가가 성립하기는 불가능하겠으나, 이 ‘순수한 나라’에 대한 염원은 더 영구한 ‘공동의 나라’ 건설에 역설적으로 이바지할 수 있다.
바실리 페로프가 그린 <도스토옙스키 초상>(1872) / 그림출처. 위키피디아
바실리 페로프가 그린 <도스토옙스키 초상>(1872) / 그림출처. 위키피디아
우리는 도스토옙스키를 읽으며 역사성을 생략한 형이상학적 심연을 보거나 극우 방어의 이념적 전술을 추려내면서 그를 오해할 수 있다. 서구 사회주의 사상을 “가톨릭적 사회주의”라고 명명하고, 자신의 구상을 “기독교적 사회주의”(아마도 여기에는 ‘진정한’이란 수식어가 생략되어 있겠다)라고 부르고 싶었던 작가를 숭배 또는 배척할 수도 있다.

그런데 19세기 작가인 그를 21세기에도 읽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인간 신성의 회복에 대한 그의 불굴의 믿음, 그 불치의 이상주의 때문이 아닐까. 구원에 이르는 고상함에 대한 도스토옙스키의 타는 목마름이 오늘도 우리에게 그의 글들을 뒤적이게 한다.

서정 에세이스트•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