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민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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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늘하고 비통한 시기. 한 공연이 위로처럼 찾아왔다. 지난 1월 12일 밥 제임스 쿼텟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잘 가꾸어진 세련된 음악과 화려한 연주 사이에서, 지친 한국인들을 위한 따뜻한 마음이 엿보이는 소중한 시간이 이어졌다.
지난 1월12일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에서 열린 <밥 제임스 쿼텟 아시아 투어> 공연 전경  / 사진. © 민예원
지난 1월12일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에서 열린 <밥 제임스 쿼텟 아시아 투어> 공연 전경 / 사진. © 민예원
퓨전 재즈의 거장이자 실력 있는 작곡가이기도 한 그는, 1970년대부터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며 퓨전 재즈를 재즈 분야의 주요한 장르 중 하나로 인정받게끔 한 위인이기도 하다. 특히, 당시 재즈계에서 가장 유명하던 멤버들(리 릿나워, 하비 메이슨, 네이선 이스트)과 함께 스무스 재즈의 전설이라 할 수 있는 '포플레이’를 구성하여 견고한 음악 세계를 만들어온 바 있다. 굵직한 음악 커리어에 걸맞게 여러 번의 내한 공연을 가진 바 있으나 이번 공연은 쿼텟 구성과 셋 리스트에 있어 조금 더 특별한 의미를 가졌다.

색소폰의 안드레이 츄무트(Andrey Chmut), 베이스의 마이클 팔라졸로(Michael Palazzolo), 드럼의 제임스 애드킨스(James Adkins) 세 젊은 뮤지션들과 함께 찾아온 밥 제임스. 그는 86세라는 고령의 나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그들의 음악적 스타일을 자연스럽게 흡수하고 열정적으로 진두지휘 하였다. 'Sea Goddess'를 첫 곡으로 시작하여 'Feel Like Making Love', 'Night Crawler' 등 그의 걸출한 명곡이 이어졌고, 즉흥 연주를 기반으로 한 연주는 신선하고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그림. © 민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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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안드레이 츄무트는 우크라이나 출신으로서, 직접 밥 제임스에게 자신의 연주 테이프를 보내어 밴드에 함께 할 기회를 얻었고, 이후 오랜 시간 연주를 함께 해오고 있는 실력파였다. 이번 내한에서는 그의 자작곡 'Moving Forward'를 직접 연주하였는데 자신의 조국이 처해있는 상황을 단단한 희망의 음률로 노래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 깊게 다가왔다. 또, 신나고 빠른 템포의 곡에서는 온몸을 흔들고 움직이며 마치 색소폰과 하나 된 듯한 열정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면서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도 하였다.

베이스의 마이클 팔라졸로는 거대한 콘트라베이스를 마치 일렉 기타 다루듯 하며 화려한 스킬을 선보였다. 멤버들의 중간에 위치하여 피아노, 색소폰, 드럼의 연주를 다방면으로 두루 살피고 자신이 받쳐 줄 땐 무겁게 무게를 드리우다가도 돋보일 찬스가 들어오면 거침없이 베이스 지판을 온몸으로 쓸어내렸다.
그림. © 민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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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럼의 제임스 애드킨스 또한 귀엽고 발랄한 이미지와 달리 드럼을 부술듯한 강렬한 솔로 연주로 쿼텟 연주의 에너지를 정점으로 이끌었다. 특히, 이번 공연에선 드럼이 무대의 중간 뒤편에 위치하지 않고, 피아노와 완전히 마주 보는 위치에 있었는데, 이러한 구성은 밥 제임스와의 더욱 원활한 소통을 위한 것처럼 보였다. 인자한 할아버지의 부름에 귀엽게 응하는 손자처럼, 밥 제임스가 보내는 수신호와 눈빛에 맞추어 템포와 스타일, 비트를 조절하는 제임스 애드킨스의 재빠른 센스가 무척 돋보였다.
그림. © 민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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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뮤지션들은 그들의 나이를 모두 합해서야 겨우 밥 제임스의 나이가 될 정도로 무척 젊고 신선한 신인들이었다. 그에 걸맞게 그들의 연주는 패기 넘치고 새로웠다. 하지만 밥 제임스는 그런 그들의 에너지에 밀리거나 동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멤버들을 이끌면서도 각자의 연주가 돋보일 수 있는 흐름을 즉흥적으로 이끌어냈다. 밥 제임스 쿼텟의 '세션’이 아닌, 한 명 한 명이 개별적인 뮤지션으로서, 그리고 함께하는 '하나의 팀’으로서 연주가 이루어졌다. 특히나 연주 중간중간 보이는 멤버들 간의 즐겁고 신이 난 얼굴에서 자연스럽고 단단한 팀워크가 더욱 빛을 발하는 듯 보였다.

이와 더불어, 밥 제임스의 노련한 멤버 '간택’은 스무스 재즈의 화려한 부활을 이끌어내기도 하였다. 자칫하면 올드한 분위기로 진행될 수 있는 순간에서 이 세 젊은이들의 세련된 연주가 이어지면, 장르의 구분이 무색할 정도로 새로운 바람을 불어왔다. 밥 제임스 또한 그러한 바람에 호응하듯 더욱 새롭고 자기다운 연주를 선보였다. 마치 그들의 젊은 에너지를 자기의 것으로 마구 흡수하듯이 말이다.

눈을 감고 음악만 듣고 있자면, 누가 노인이고 누가 청년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모두가 생기 넘치는 에너지를 내뿜고 있었다. 연장자의 세심한 배려, 그리고 예리하고도 젊은 감각이 스무스 재즈의 재탄생을 이루어냈다.
그림. © 민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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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이나 인상 깊은 멤버 간 화합은 더욱 수준 높은 즉흥연주를 가능케 하였다. 한 사람만 잘나서 그만 돋보이는 솔로 콘서트가 아니었다. 서로의 마음과 이야기를 들어주고 대화하듯이 진행되는 재즈 연주로서 모두가 하나가 되듯 유연하고 부드러운 시간이었다. 이를 감상하는 관객들까지도 그들의 대화에 담긴 즐거움, 슬픔, 위로, 따뜻함, 아픔에 동참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는, 리더인 밥 제임스의 품성과 리더로서의 마음가짐이 남달랐기에 가능할 것이다. 밥 제임스 쿼텟의 멤버들은, 그가 단순 밴드 리더이기에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었다. 무대 위에서 밥 제임스의 유머러스하고 부드러운 품성이 돋보이는 순간이 나타날 때마다, 무대 뒤에서도 그가 어떻게 자신의 멤버들을 존중하고 대하는지를 엿 볼 수 있었다. 필요나 이해에 따른 비즈니스가 아니라 서로의 음악적 세계에 진심으로 동참하고픈 애정이 함께했던 것이다.
공연 <밥 제임스 쿼텟 아시아 투어> 공식 포스터
공연 <밥 제임스 쿼텟 아시아 투어> 공식 포스터
이러한 그들 간의 진심은, 공연 중 이어진 밥 제임스의 진지한 추모사와 위로의 연주를 더 깊게 만들어주었다. 그는 무안 국제 공항에서 있었던 제주항공 2216편 활주로 이탈 사고로 인한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마음을 밝혔으며, ‘Because I Love You’라는 곡이 이어진다는 멘트와 함께 아주 익숙한 멜로디를 들려주었다. 바로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였다. 스무스 재즈 스타일로 편곡된 '사랑하기 때문에’는 차갑고 힘든 시기에 놓인 한국 관객들에게 특별하고도 따뜻한 위로가 되어주었고, 관객들 또한 이를 자연스럽게 따라부르며 모두가 소중한 마음으로 하나 되는 순간에 조금은 울컥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이어진 밥 제임스의 신곡 'The Secret Drawer'는 한국인 작곡가 레이첼 곽과 공동 작업한 곡으로, 통통 튀는 발랄한 멜로디와 함께 밥 제임스의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의 근원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이후 신나는 연주곡이 계속되며 그의 명곡 'Westchester Lady'를 끝으로 공연은 화려한 막을 내렸지만, 역시나 이어진 앙코르에선 가장 유명한 곡이자, 유명 TV 프로그램 'Taxi’의 OST이기도 한 'Angela'를 부드럽고 따뜻하게 연주해내며 한국에서의 소중한 공연을 마무리하였다.

절망이 이어지는 연말연시, 음악을 연주하고 즐기는 것이 어찌 보면 조금은 어려운 일이라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음악은 곧 뮤지션들의 언어이다. 누군가는 함께 울거나 안아주는 것이 위로의 언어라면, 뮤지션들은 당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연주와 공연으로 함께 눈물을 흘려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서로의 연주를 이해하고 따뜻하게 받아주는 밥 제임스 쿼텟 멤버들 간의 마음이 음악으로 전해진 덕일까, 이번 내한 공연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한 감동과 위로를 남겨주었다.

음악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능력. 우리의 귀로 들어와 마음을 직접 어루만져주고, 음악을 연주하는 이들의 감정을 곧바로 느끼게끔 전해주고, 그렇게 음악 안에서 모두가 하나 될 수 있는 능력이 가장 큰 빛을 발했던 밥 제임스 쿼텟의 내한 공연이었다.

민예원 '스튜디오 파도나무'의 대표•작가

[ ♪ 밥 제임스 - Westchester Lady (키보드. 밥 제임스/베이스. 마이클 팔라졸로/드럼. 빌리 킬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