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설 황금연휴 '해외로 해외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언론사의 명절 귀성 보도 현장은 주로 기차역이나 고속버스 터미널이었다. 한 아름 선물 보따리를 안은 채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이들을 앞세운 귀성객들의 즐거운 표정이 카메라 앵글에 잡혔다. 하지만 이제 스케치 장소는 공항으로 바뀌고 있다. 올해 설 연휴(1월 24일~2월 2일) 기간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나가는 승객이 134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하루 평균 출발 승객이 13만4000명으로 작년 설보다 13.8% 늘어날 전망이다.

경기도 안 좋아 먹고살기 힘들다지만 해외여행은 그야말로 ‘무풍지대’다. 이번 설에 인천공항을 통해서만 104만6000여 명이 국제선 항공편을 이용한다. 개항 이후 설 연휴 최대 인원(하루 평균 21만4000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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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해외여행객이 증가한 데는 1월 27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된 영향이 크다. 당정은 작년 11월부터 검토하다가 백지화한 것을 되살려 지난 8일 임시공휴일을 확정했다. 통상 한 달 전에 정해지던 것이 20일도 안 남아 결정되니 혼란도 있었다. 어차피 일해야 하는 자영업자와 직장인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고, 휴일수당을 지급하고 조업해야 하는 기업은 볼멘소리를 냈다.

당정이 급하게 황금연휴를 만든 것은 어려운 경제 사정을 감안한 것이라고 한다. 탄핵 정국, 무안 항공기 참사 등으로 닫힌 지갑을 열어 내수를 진작하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자 해외여행 수요만 잔뜩 늘어나 버렸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밖으로 나가면 국내 여행, 외식, 쇼핑 수요 등은 그만큼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정부는 소비 진작을 이유로 지난해 10월 1일(국군의날), 2023년 10월 2일(추석 연휴 다음 날) 등 해마다 임시공휴일 지정을 남발해왔다.

지금 우리 경제는 생산, 수출, 소비, 고용 등 대부분 지표에서 빨간불이 켜졌다. 쉴 수 있는 기간을 무작정 늘려 황금연휴를 즐길 때가 아니다. 가뜩이나 법정 공휴일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주 52시간 근무제 실시, 주 4일 근무제 확산 등으로 생산성 관리가 어려운 여건이다. 미국과 일본처럼 공휴일을 특정 월, 특정 주, 특정 요일로 고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서욱진 논설위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