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아파트에서 입주민에게 제공되는 조식. / 사진=이송렬 기자.
서울 한 아파트에서 입주민에게 제공되는 조식. / 사진=이송렬 기자.
최근 고급 아파트의 척도로 여겨지던 '밥 주는 아파트'가 다양한 이유로 점점 쇠퇴하거나 줄어들고 있습니다. 우선 급식 운영 업체의 외면을 받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직접 조리된 따듯한 밥을 원하기에 주방이 있는 식당이 필요한데, 아침만 이용하는 사람, 점심이나 저녁만 이용하는 사람 등 수요가 일정하지 않습니다. 모바일 앱(운영프로그램)을 통해 미리 신청받아 운영하더라도 수요 변동이 큰 탓에 급식 업체가 원하는 일정한 수익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에서는 입주한 지 6년 만에 주민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커뮤니티 식당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연회장을 개조했다는 이유로 과태료 처분을 받았고, 식사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문제도 제기됐습니다. 급식업체가 운영비를 맞추기 매우 어렵기 때문인데, 시간이 지나면 음식 가격은 더 오를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기업체 구내식당처럼 아침, 점심, 저녁 등 특정 시간에 2~3가지 한정된 메뉴만 제공한다면 주민 입장에서는 시간이 맞지 않는 등의 이유로 원하는 식사를 못 하게 될 것입니다. 인건비와 식자재비 상승도 부담이고 식사 시간 외에는 거대한 공간을 비워두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밥 주는 아파트'를 없애는 것이 좋은 해결책일까요?

최근 국내는 초고령화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습니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 실버타운을 확충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지만, 인구 소멸 지역에만 분양하면 사업이 활발히 진행될 가능성은 작습니다. 결국 수요가 많지 않아 한계가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기에 선진국처럼 내가 사는 아파트나 주택에서 평생 살다가 죽을 수 있는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 개념이 필요해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사는 집, 특히 도심에서는 아파트 단지 내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실버타운과 같은 시설을 마련하려면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보다는 삼시세끼를 챙겨주고 건강을 돌봐주는 너싱홈 기능이 필요합니다. 다행히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 병원이 많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너싱홈 기능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삼시세끼를 제공하는 서비스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밥 주는 아파트'입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청년 맞춤형 공유주택 내 공유주방 모습. 사진=한경DB
한국토지주택공사(LH) 청년 맞춤형 공유주택 내 공유주방 모습. 사진=한경DB
하지만 앞서 거론한 것과 같이 기존의 밥 주는 아파트는 한계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바로 공유주방을 아파트에 유치하는 것입니다. 공유주방은 말 그대로 주방만 만들어 놓고 배달만 하는 전문 식당입니다. 코로나 이후 배달 수요가 급증하면서 국내에서도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최근에는 강남의 한 공유오피스 지하에 공유주방이 들어와서 직접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며, 동시에 오피스 사무실 내에 배달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배달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므로 아침, 점심, 저녁 시간 외에도 시간에 제약 없이 운영합니다. 결과적으로 정해진 시간에만 운영하는 급식 식당보다 가동률이 높고, 매출도 늘어 입점 업체들은 훨씬 더 좋은 환경에서 저렴하게 음식을 배달할 수 있습니다.

만약 공유주방이 아파트 커뮤니티 시설 내에 들어온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선, 아파트 내에 공정 매출이 있으므로 임대료를 저렴하게 책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10여 개의 공유주방에서 나오는 100여 개의 메뉴를 주민들에게 정가의 80% 수준으로 저렴하게 제공할 수 있습니다. 또 단지 내에서 배달이 이뤄진다면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들은 원하는 시간에 집에서 따뜻한 음식을 배달받아 드실 수 있습니다. 실버타운처럼 식당에 일일이 내려가지 않아도 내가 사는 집에서 음식을 받아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삼시세끼든 간식이든 배달을 시키든 모든 비용은 관리비에서 정산해 입점 업체에 제공하면 됩니다. 공유주방 업체들은 아파트 단지 주변에도 음식을 배달해 매출을 올릴 수 있으므로 기존 급식 식당 업체에 비해 운영이 훨씬 용이합니다. 즉, 아파트 시설 내에 임대료를 저렴하게 제공하면서 주민들에게 저렴한 음식을 제공하고, 주변에서 추가 매출을 올리는 것입니다. 공유주방 옆에 주민 커뮤니티 시설을 설치해 식사하거나 책을 보는 등의 공간을 운영할 수도 있습니다. 꼭 식당으로만 용도를 제한하지 않아도 됩니다.

입주민만 이용할 수 있는 식당보다는 외부로 배달도 가능한 공유주방 개념이 도입된 '밥 주는 아파트'가 지속할 수 있는 시설이 될 것입니다. 또한 고령층도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서 계속 살 수 있는 에이징 인 플레이스를 실현할 수 있을 겁니다. 커뮤니티 시설을 계획할 때, 미리 이런 방식으로 계획하기 위해 불필요한 규제는 줄여야 합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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