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고베·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대지진 피해 입은 폐허의 땅에
종이 감은 튜브 활용해 기둥·천장으로
실용적이면서 신성한 분위기 더해
간절함 바라는 이들의 위로가 되다
일본 고베 나가타 지역에 반 시게루가 지은 종이 성당. 대지진으로 피해를 본 다카토리 성당을 대신해 임시로 사용됐다. 반 시게루 공식 웹사이트 캡처
우리는 일상에서 순간순간 소원을 빈다. 무지개가 뜰 때, 둥글고 큰 달이 떴을 때, 별똥별이 떨어질 때 그렇다. 예전에는 마을에 있는 커다란 나무와 바위에 소원을 빌기도 했다. 나아가 사람들은 돌을 하나씩 얹으며 자신이 기원하는 바와 타인이 기원하는 바를 모아 탑을 세웠다. 이는 아주 원초적인 건축 행위다. 그런데 왜 다른 것도 아니고 돌이었을까? 아마도 소원이 쉽게 깨지지 않도록 단단한 물질이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쌓인 돌탑도, 사람들이 직접 들어가서 기도하는 종교 건축물도 쉽게 부서지지 않는 강한 재료로 만들었다.
아주 약한 재료로 지어진 기도의 공간이 있다. 1995년 일본 고베 나가타에는 종이로 지어진 성당이 있었다. 이 성당은 10×15㎡ 면적에 길이 5m, 지름 33㎝ 지관통(종이튜브)을 기둥으로 사용해 타원형 공간을 조성했다.
이 공간은 80석을 배치할 수 있는 규모로, 타원의 면에는 기둥 간격을 넓게 둬 외부와의 연계성을 확보했다. 직사각형 땅을 둘러싼 폴리카보네이트 벽체와 타원형 공간 사이에는 복도가 형성돼 본당으로 들어가기 전, 이 공간을 통과하는 경험을 유발해 이 간단한 성당에서도 종교적 시퀀스를 느낄 수 있게 했다. 천막으로 조성된 지붕은 본당 내부에 은은한 빛을 들이며 신성한 분위기를 더했다.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 세운 ‘종이 성당’ 전경.
또 다른 성당은 2013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 지어졌다. 고베 성당이 지관통을 기둥으로 활용했다면 이곳에서는 지관통 96개를 천장에 사용해 전체 공간이 A자형 구조를 갖출 수 있게 했다. 외관에서 삼각형의 조형성이 돋보이는 이 성당은 컨테이너를 기초로 만들어졌다. 살짝 틈을 둬 설치된 지관통 사이로는 외부 빛이 스며들어 오고, 성당 전면의 삼각형에는 스테인드글라스를 설치해 고베 성당보다는 전형적인 성당이 갖고 있는 연출을 더했다. 단층이지만 높이가 24m여서 성당이라는 공간의 웅장함까지 지닌 이곳은 약 700명을 수용 가능한 임시 성당으로 지어졌다.
고베 나가타 지역에 있는 종이로 지은 다카토리 성당 외관.
건축물은 무엇보다 튼튼해야 한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므로 약한 재료인 종이가 구조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은 의문을 자아낸다. 그러나 고베 성당은 2008년 지진 피해를 본 대만으로 이전돼 사용성을 연장했고, 크라이스트처치 성당은 50년간 지속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두 성당의 공통점은 지진으로 폐허가 된 장소에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첫 번째 성당은 1995년 고베 대지진으로 피해를 본 다카토리 성당을, 두 번째 성당은 2011년 크라이스트처치에 발생한 대지진으로 훼손된 성당을 대신하기 위해 건립됐다. 재난 현장에는 빠른 수급이 가능하고 값이 저렴하며 해체·조립 등 사용성과 가공성이 좋고 튼튼한 재료가 필요하다. 이 모두를 충족하는 것이 종이, 정확히는 이들 성당에 사용된 지관통이었다.
두 성당의 건축가인 반 시게루는 이런 종이 건축, 즉 지관통을 구조재로 사용하는 건물을 꾸준히 지어왔다. 그는 종이가 실제 건축에서 활용될 수 있는 방법을 실험해왔다. 이것이 가장 빛을 발한 곳은 재난 현장이었다. 건축가는 이 성당들 외에도 중국 쓰촨성 대지진 당시 종이 학교와 아이티 대지진 때 피난민을 위한 주택을 짓는 등 사회 활동을 해오고 있다. 본격적인 시작은 1994년 르완다 내전으로 발생한 난민 200만 명을 위한 임시 거처로 종이집을 제안한 것이었다. 두 성당에서는 종이 외에도 값이 싼 폴리카보네이트, 컨테이너 등을 함께 활용해 재난 상황에 적합하지만 미적 기능을 잃지 않은 건물을 창조했다.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 세운 ‘종이 성당’ 내부
잘 찢어지고 무언가를 지탱하기에 한없이 약해 보이는 종이가 이처럼 무언가를 간절하게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을 담는 단단한 재료로 사용되기까지에는 한 건축가의 사회를 향한 책임감이 있었다. 건축가가 종이를 고를 때도 환경에 대한 책임감 같은 큰 문제의식이 있었을 것 같지만 종이를 선택한 이유는 버려지는 게 ‘아깝다’는 단순한 마음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무언가를 아까워해 쓰임을 찾는 단순한 마음이 바로 창조가 시작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거창하지 않아서 반드시 필요한 무언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