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그룹 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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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차명 유산’을 둘러싼 누나와의 상속 분쟁에서 최종 승소했다. 대법원은 태광그룹 창업주 이임용 선대 회장이 유언 집행자인 이기화 당시 태광산업 사장에게 일부 재산 처분을 위임한 것이 법적으로 유효하다고 판단하며, 이 전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제3부(주심 이숙연 대법관)는 지난달 9일 이 전 회장이 누나 이재훈 씨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153억5000만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는 원심판결을 유지하고, 원고와 피고의 상고를 모두 기각했다고 2일 밝혔다.

태광그룹 창업주인 이 선대 회장은 1996년 11월 작고 두 달 전 유언장을 작성했다. 유언장에는 배우자와 두 아들에게 재산을 분배하되, 세 딸은 상속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상속 내용을 명시하지 않은 자산의 처리는 이 전 회장의 삼촌인 이 전 사장의 결정에 맡긴다고 썼다.

검찰이 태광그룹의 비자금 수사 과정에서 상속세 신고 누락 사실을 밝혀내면서, 타인 명의로 관리되던 400억원 상당의 채권이 드러났다. 2010년경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그룹의 자금 관리인은 이 채권을 이 전 회장의 누나에게 넘겼다. 2년 뒤 이 전 회장 측은 채권 반환을 요구했으나, 누나가 이를 거절하면서 2020년 소송으로 이어졌다.

1심 재판부는 이 전 사장에게 일부 재산 처분 권한을 위임한 유언 조항이 일신전속성을 위반해 효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일신전속성이란 유언이나 결혼처럼 특정한 사람만이 행사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 없는 권리의 성질을 말한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와 별개로 차명으로 된 채권의 실제 가치인 400억원과 지연손해금을 이 씨가 이 전 회장에게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부친 사망 후 이 전 회장이 해당 채권을 합법적으로 관리해 왔으며, 이 씨가 자신의 재산권을 주장할 수 있는 법정 기한이 이미 지났다는 이유에서다.

2심 재판부는 창업주의 잔여 재산에 대한 유언이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이 전 사장의 의향대로 이 전 회장이 합법적으로 채권을 상속받았으며, 이 씨는 이에 해당하는 금액과 지연손해금을 이 전 회장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다만, 금융거래 내용으로 확인된 153억5000만원만 반환 대상으로 한정했다.

이 전 회장과 이 씨는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모두 기각했다. 대법원은 400억원을 돌려받아야 한다는 이 전 회장의 주장에 대해 “이 사건 채권 금액에 대한 증명 책임은 원고에게 있다”고 전제하며, 원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채권 증서의 합계액이 153억5000만원을 초과한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 씨의 상고 이유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원심 판단이 법리를 오해한 것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일부 유언이 ‘일신전속성에 반하는 무효의 유언’이라며 400억원 규모의 채권 증서 소유권 취득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으나, 대법원은 “이 전 회장이 이 전 사장의 집행 행위를 통해 채권 증서의 소유권을 취득했다고 판단한 원심 결정에 오류가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2심 재판부가 이 전 회장과 이 씨 사이에 임치 약정이 성립한다고 판단한 내용에도 잘못이 없다고 봤다. 이 씨는 재판 과정에서 이 전 회장이 직접 채권 증서를 준 것이 아니라 대리인이 전달한 것이므로, 이 전 회장과 자신 사이에 정식 보관 계약(임치 약정)이 성립하지 않았다고 항변해 왔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임치 약정 존재 여부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대리인이 묵시적으로 이 전 회장을 대신해 임치 약정을 체결했다고 본 원심판결이 법리에 맞는다고 판단해 이 씨의 상고를 기각했다.

황동진 기자 radh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