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금융지주사가 올 들어 회사채를 통한 자금 조달 카드를 잇달아 꺼내 들었다. 연 2%대 저금리 회사채를 찍어 자금 조달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그동안 자본을 확충할 수 있는 신종자본증권(영구채)을 유동성 창구로 주로 활용했지만 금리 인하기를 맞아 회사채 발행 비중을 늘리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5대 금융지주 가운데 KB 신한 우리 농협 등 네 곳이 올 들어 총 8000억원 규모 회사채를 발행했다. KB금융은 지난달 24일 총 3000억원어치 회사채를 찍었다. 2년 만기 2000억원과 3년 만기 1000억원 규모다. 금리는 2년 만기가 연 2.915%, 3년 만기가 연 2.918% 수준이다. 신한금융도 같은 날 2000억원 규모 회사채를 찍어 자금을 조달했다. 3년 만기 1000억원을 연 2.874%에, 5년 만기 1000억원을 연 2.951%에 발행했다. 우리금융과 농협금융도 지난달 연 2%대 금리에 각각 1000억원, 2000억원어치 회사채를 발행해 유동성을 확보했다.
주요 금융지주가 연초부터 회사채 시장에 일제히 뛰어든 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1분기엔 하나금융과 농협금융만 일부 자금을 회사채로 조달하는 데 그쳤다.
그동안 금융지주는 줄곧 영구채를 중심으로 자금을 조달했다. 금융당국의 재무 건전성 지표 개선 압박 속에서 유동성을 확보하고 자본을 확충할 수 있어서다. 영구채는 건전성 지표 산정 과정에서 부채가 아니라 자본으로 인정된다.
하지만 본격적인 금리 인하기가 도래하자 영구채 대신 회사채로 눈을 돌리는 금융지주가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회사채 발행을 통한 이자 비용 축소가 더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금융지주의 회사채 금리는 지난해 4분기 연 3%대에서 지난달 연 2%대 후반으로 떨어졌다. 자금 조달에 따른 금융지주의 이자 비용 부담이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채권시장에서 금융지주 영구채 투자자 확보가 만만치 않다는 점도 고려됐다. 고금리를 앞세운 보험사 자본성증권(신종자본증권·후순위채)이 시장에 쏟아지면서 기관과 개인투자자의 금융지주 영구채 매수세가 주춤해진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금융지주마다 영구채와 회사채 발행 카드를 놓고 고심이 깊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5대 금융지주의 한 임원은 “영구채 발행에 의존해온 금융지주들이 회사채로 조금씩 눈을 돌리는 추세”라며 “재무 건전성 지표를 충분히 개선한 만큼 이자 비용을 아끼기 위해 회사채 발행에 나서는 사례가 더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