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주의 시누이, 너무 싫어"…면전에서 욕한 이유 봤더니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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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위대한 여성 화가'로 불린
미국 인상주의 화가
메리 카사트(1844~1926)
여의도 더현대 '모네에서 미국으로'展서
카사트 작품 실제로 볼 수 있어
미국 인상주의 화가
메리 카사트(1844~1926)
여의도 더현대 '모네에서 미국으로'展서
카사트 작품 실제로 볼 수 있어

“하…. 이래서 내가 시누이를 싫어하는 거예요. 정말이지 같은 자리에 있는 걸 도저히 참을 수가 없네요.”
올케(오빠의 아내)와 시누이(남편의 동생) 관계는 최악이었습니다. 온 가족이 모인 식사 자리에서조차 이런 날 선 말이 오갈 정도로요. 냉랭한 분위기 속,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으며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도대체 저 둘은 왜 저렇게 사이가 나쁜 거야? 각자 따로 놓고 보면 두 사람 다 능력도 있고 인품도 훌륭한 사람들인데.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숙적을 만나다
갈등의 시작은 1870년이었습니다. 스물여섯 살의 카사트가 프랑스 파리에서 미술 유학을 마치고 막 돌아왔을 때였습니다. 오랜만에 가족들을 보는 식사 자리.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지만 카사트는 왠지 낯설었습니다. 2년 전 오빠와 결혼하며 올케가 된 로이스 때문이었습니다. 필라델피아 최고 명문 가문 출신의 그녀의 깔끔한 옷차림과 완벽한 예절, 단아한 미소에는 흠잡을 곳이 하나도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시선은 묘하게 불편했습니다.로이스가 입을 떼자마자 카사트는 그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말씀은 많이 들었는데, 이제야 보네요. 파리에서 그림 공부를 하셨다니, 정말 대단해요. 그림은 삶에 여유를 주는 정말 좋은 취미지요.” 카사트는 차갑게 대답했습니다. “취미가 아니라 직업인데요.” 잠시 정적이 흐르는 동안 두 사람의 머릿속엔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 여자와 나는 영원히 서로 이해하지 못할 거야.’

파리에서 카사트는 당대 최고의 초상화 작가였던 장-레옹 제롬에게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녀의 재능은 확실했습니다. 프랑스 최고 권위 전시였던 살롱에서 1868년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으며 작품을 선보이며 유망주로 인정받은 게 그 증거였습니다. 그런데 카사트의 이런 성취를 필라델피아에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이제 이만하면 되지 않았니. 자리를 잡고 정착하거라. 여자는 결국 가정을 가져야 해. 로이스를 보거라. 얼마나 행복해 보이니.”

파리의 인상파 미국인
파리에 가려면 돈이 필요했습니다. 카사트는 작품을 팔기 위해 동분서주했습니다. 하지만 카사트는 젊은 무명 작가. 그림을 칭찬하는 사람은 있어도 지갑을 여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절망한 카사트는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벌써 두 달 동안이나 그림을 그리지 않았어. 작품이 팔리지 않으니, 아마 파리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아. 그림은 이제 그만두고 취업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네.” 모든 걸 포기하려던 그 순간. 그녀를 눈여겨보던 수집가가 그림 작업을 맡기면서 다행히도 카사트는 유럽으로 갈 경비를 스스로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카사트의 명성은 갈수록 높아졌습니다. 특히 그녀가 그린 여성 인물화는 “다른 화가의 그림에 없는 신선함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카사트의 그림에는 여성에 대한 존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남성 화가들이 그린 여성은 아름다움, 성(性)적인 매력이나 유혹, 신비로움처럼 무언가를 상징하는 ‘대상’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카사트는 여성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봤습니다. 신문을 읽는 여성, 마차를 모는 여성, 진지한 사색에 잠긴 여성…. 그림 속 그녀들은 지성을 갖춘 독립적인 인간이었습니다. 남성과 마찬가지로요.



어머니와 아이를 그리다
1882년, 승승장구하던 카사트에게 비극이 닥칩니다. 신장병을 앓던 언니가 세상을 떠난 겁니다. 언니는 카사트의 동반자이자 보호자였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가장 큰 친구였습니다. 그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썼을 정도입니다. “나는 언니와 평생 같이 살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언니가 이렇게 떠날 줄 알았으면 차라리 결혼을 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어. 세상에 혼자 남겨진 느낌이야. 너무나도 괴롭고 외로워….”
그건 사실 카사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카사트도 로이스를 부러워했습니다. 프랑스 미술계에서 배운 신랄한 말투로 일부러 로이스의 신경을 긁곤 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결혼 대신 미술을 택한 걸 진심으로 후회한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카사트는 아이들을 좋아했고, 아이가 없는 걸 아쉬워했습니다. 그래서 카사트는 로이스가 낳은 조카들을 엄청나게 예뻐했습니다. 두 사람은 이런 속마음을 서로 털어놨습니다.


“결혼하지도, 아이를 낳지도 않은 사람이 어머니와 아이를 그리는 건 이상하지 않나.”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술사가이자 카사트 연구자인 낸시 매튜스는 이렇게 명쾌하게 답합니다. “드가는 발레를 하는 무용수와 매춘부를 주로 그렸지만, 드가가 그 일들을 직접 해본 건 아니지 않느냐. 화가는 자신이 관심을 갖고 친숙한 주제를 그릴 뿐이다.” 카사트는 아이를 좋아했고, 그녀의 가족과 친구 중에는 아이를 둔 어머니들이 많았습니다.
다시, 갈등
카사트와 로이스의 우정은 영원하지 못했습니다. 두 사람은 살아가는 세계도, 생각도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입니다. 1915년 카사트가 여성의 투표권(참정권)을 보장하는 전시를 연 게 결정적 계기였습니다.그때까지만 해도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 국가는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고 있었습니다. 세계 미술계의 거물이 된 지 오래였던 카사트는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여성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모아 전시를 열었습니다. “여성도 남성과 다르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자신을 ‘예술가’가 아닌 ‘여성 예술가’로 분류하는 걸 싫어했고, 여성도 남성처럼 교육받고 출세할 권리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그녀다운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 내 보수적인 사교계의 중심이었던 로이스는 자신의 자녀들과 함께 전시회를 방해했습니다. 사교계 친구들에게는 “그 전시는 여성들을 부추기는 위험한 행사”라고 소문을 냈습니다. 전시를 위해 카사트가 그려준 그림을 빌려달라는 제안까지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카사트는 기가 찼습니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투표하기 싫으면 너만 안 하면 되지, 여자들이 투표하는 걸 아예 막는 게 말이나 돼?” 하지만 로이스는 막무가내였습니다.
카사트는 조카들에게 주려고 했던 작품들을 모두 미술관에 기증하거나 판매하는 방식으로 반격했습니다. “너희들이 여성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나도 존중하지 않는다는 뜻이겠지. 그런 사람에게 내 작품을 줄 생각은 없어.”

카사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그로부터 1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여전히 카사트의 그림 앞에 오래도록 머무릅니다. 만약 카사트의 작품이 단순히 모성애를 권장하고 찬미하는 그림이었다면, 이토록 오랫동안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지는 못했을 겁니다. 그녀의 그림에는 현실성이 있습니다.

카사트는 가정을 꾸리기보다 직업을 선택했습니다. 로이스는 그 반대였습니다. 거울을 보는 것처럼 정반대였던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때로는 질투에 사로잡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카사트는 그렇게 로이스를 바라보며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해서도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삶에 완벽한 정답 따윈 없으며,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완벽한 행복은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요.
반대로 카사트는 깨달았습니다. 삶에 오답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모든 순간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게 바로 삶이라는 것. 저마다 각자의 길이 있고, 남들의 의견은 크게 중요치 않다는 것. 앞으로 꾸준히 나아가면 누구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을요. 카사트가 남긴 그림들은 오늘도 그렇게 조용히 우리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오늘(15일) 여의도 더현대서울에서 인상주의 특별전이 개막했습니다. 카사트의 작품 한 점을 비롯해 모네의 '수련' 등 거장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전시입니다. 전시는 5월 26일까지 열립니다.
**이번 기사는 Mary Cassatt: A Life(Nancy Mowll Mathews 지음), Mary Cassatt: Painter of Modern Women (Griselda Pollock 지음) 등을 참조해 작성했습니다.
<그때 그 사람들>은 미술 담당 기자가 미술사의 거장들과 고고학, 역사 등을 심도 있게 조명하는 연재물입니다. 매주 토요일 새로운 이야기로 찾아옵니다. 네이버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미술 소식과 지금 열리는 전시에 대한 평가, 심층 분석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 구독 중인 7만여명의 독자와 함께 아름다운 작품과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앞서 다뤘던 화가들의 이야기와 아름다운 그림들은 두 권의 책 <명화의 탄생, 그때 그 사람>과 <명화의 발견, 그때 그 사람>으로 곁에 두고 즐길 수도 있습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