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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구 와인 '문명의 충돌' 파리를 휘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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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인 파리 2025' 박람회…5300여개 와이너리 참가
    지난 10일 열린 ‘와인 파리 2025’에서 한 참가자가 와인을 시음하고 있다. /비넥스포지엄 제공
    지난 10일 열린 ‘와인 파리 2025’에서 한 참가자가 와인을 시음하고 있다. /비넥스포지엄 제공
    '진리는 와인 속에(IN VINO, VERITAS).'

    프랑스 보르도에서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까지. 온 세상 와인을 단 한 곳에 쏟아붓는다면 어떤 맛이 날까. 달곰씁쓸한 꿈은 때론 현실이 된다. "한 병의 와인엔 그 어떤 책보다 많은 철학이 담겼다"고 파스칼이 말했던가. 볼은 발그레 혈색이 돌고 입가엔 미소가 걸린다. 혀끝으로 진리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은 1년에 딱 사흘. 전 세계 와인 애호가의 꿈같은 축제 ‘와인 파리’를 가봤다. 프랑스 파리 15구 포르트 드 베르사유는 100년간 프랑스를 대표해 온 박람회장이다. 지난해 파리 올림픽 당시 경기장으로도 쓰인 이곳은 지난 10일부터 사흘간 와인으로 물들었다. 독일 ‘프로바인’, 이탈리아 ‘빈이탈리’와 함께 와인 및 스피리츠(증류주) 분야를 대표하는 박람회 ‘와인 파리 2025’가 열렸다. 올해는 54개 와인 생산국에서 5300여 개 와이너리가, 154개국에서 찾은 5만2000명의 방문객이 참가했다.

    대륙과 신대륙의 교차점 ‘와인 만국 박람회’

    와인의 세계는 여전히 ‘올드 앤드 뉴’로 나뉜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구세계와 미국, 호주, 그리고 아르헨티나와 칠레 등이 속한 라틴아메리카의 신세계 와인이다. 2000년 넘는 엄격한 전통에 따라 정석의 풍미를 보여주는 게 구세계라면 신세계 와인은 균일한 기후와 창의적 발상으로 독창적인 맛을 만들어낸다.
    ‘와인 파리 2025’ 국제관에 전시된 포르투갈 와인. /비넥스포지엄 제공
    ‘와인 파리 2025’ 국제관에 전시된 포르투갈 와인. /비넥스포지엄 제공
    올해 와인 파리는 신구 세계 간 ‘문명의 충돌’로 불렸다. 여덟 개의 커다란 전시장 중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한 곳씩 차지하는 위용을 보이면서 미국부터 페루, 헝가리 등 숨은 진주 같은 와이너리가 대거 등장했다. 1981년 첫 박람회 이후 줄곧 보르도에서 열린 행사가` 2020년 거점을 파리로 옮겨 ‘프랑스색’을 빼자 전 세계 와인이 몰려오게 됐다고. 와인 애호가인 마티야 크렙스는 “더욱 글로벌한 와인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프로바인과 빈이탈리보다 더 기대되는 행사”라고 말했다.

    캘리포니아 프리미엄, 갤리카부터 마틴 레이까지

    와인 애호가의 눈길을 끈 와이너리는 단연 미국의 ‘갤리카’다. 와인메이커 로즈메리 케이크브레드가 이번 행사에서 ‘올해의 마스터 와인메이커’로 선정됐기 때문. 나파밸리에 자리 잡은 갤리카는 카베르네 소비뇽, 그르나슈, 알바리뇨, 시라 등을 생산한다. 라즈베리, 블랙커런트, 레드체리 등 순도 높은 과실향이 균형감 있는 타닌과 어우러져 깊은 풍미를 자아낸다.

    전시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와인은 캘리포니아 와인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틴 레이의 유산 ‘2022년 빈티지 카베르네 소비뇽’이다. 파소 로블레스 지역에 있는 석회질 토양의 포도원에서 고지대 태양의 열기와 태평양에서 불어온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자란 개성 있는 포도로 만들어져 맛이 풍부하다. 마틴 레이 측은 “전통적인 캘리포니아 브랜드를 현대 시장에서 새롭게 자리 잡게 하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보르도 정통의 맛, K전통주까지

    신구 와인 '문명의 충돌' 파리를 휘감다
    유럽의 정통 와이너리와 최신 주류 트렌드를 함께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와인 파리의 가장 큰 매력. 보르도의 샤토는 그 자체로 브랜드다. 메종 시셸의 ‘샤토 앙글루데’는 오래 숙성된 와인 특유의 우아함이 살아 있다. 보르도 메도크 지역에서 뱅자맹 시셸이 운영하는 이곳은 고대 유럽 와인 메이커들의 암포라를 이용한 전통 양조 기법을 유지하는 동시에 생물역학 농법을 도입했다. 독일의 대표주자 ‘리슬링 트로켄’은 첫 모금부터 경쾌한 산미가 돋보였다.

    올해 와인 파리엔 위스키부터 아르마냑, 브랜디, 코냑, 진, 럼, 보드카까지 스피리츠도 함께 즐길 수 있었다. ‘비 스피리츠(Be Spirits)’라는 이름이 붙은 전시관에 전 세계 300여 개 업체가 참가했는데 한국관도 인기를 끌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파리지사가 한국 술의 유럽 시장 진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올해 처음으로 부스를 열었다. 오미자 스파클링 와인부터 탁주, 소주 등이 소개되자 다국적 방문객들이 발길을 멈춰 시음했다.

    전통주 전문가 정헌배 중앙대 명예교수는 마스터 클래스를 열어 인삼주 등 자신이 빚은 술을 소개했다. 모로코 주류 유통업자인 브누라 로지에는 정 교수가 운영하는 정헌배주가가 생산한 술을 현지 마트에 선보이기로 계약을 맺었다. 로지에는 “쌀로 만든 한국의 전통주가 해외에선 아직 낯설지만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본다”고 했다.

    파리=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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