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는 함초롬바탕, 장평은 95%…'피범벅 보고서' 막기 위한 사무관들의 '꿀팁'은 [관가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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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수 없다'가 아닌 '할수 있다'는 보고해야" 조언도

험난한 '보고서 트레이닝'을 거친 선배 사무관들은 어떤 '꿀팁'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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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체나 장평만 바꿔도 글자 수 많이 넣을 수 있어"
산업통상자원부 소속 A 사무관은 ‘글씨체’만 바꿔도 고민이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고 조언했다. 예를 들어 글씨체를 ‘휴먼명조’에서 ‘함초롬바탕’으로 바꾸면 한 줄에 한두글자를 더 집어넣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지난 22일 자 한국경제신문 1면 톱 기사 내용을 예로 들어보자.
<중국의 ‘너지2’가 애니메이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중국 내 인기를 바탕으로 역대 세계 1위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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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사무관은 “보고서를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애매하게 줄이 바뀌는 문제 때문에 고민한 경험이 있을 것”이라며 “줄여 쓸 말이 마땅히 없어 오랜 시간 고민하는 경우가 잦은데, 글씨체만 잘 선택해도 ‘불상사’를 예방할 수 있다”고 했다.
기획재정부 소속 B 사무관은 ‘장평’을 조절하면 많은 내용을 한 페이지에 담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평은 한 글자의 좌우 길이를 말한다. 글자의 간격을 뜻하는 ‘자간’과 다르다. 장평은 아래한글에서 기본값(100%)을 기준으로 축소하거나 확대할 수 있는데, 과도하게 줄이거나 늘리면 글자가 어색해지지만 조금만 손본다면 시각적으로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 그는 "장평을 100%에서 95%로 줄여도 보고서를 올려도 문제되는 경우가 없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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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사무관은 "반대로 보고서에 도무지 쓸 말이 없을 땐 장평을 늘려서 마치 내용이 풍부한 것처럼 ‘눈속임’을 할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7월도 하반기, 12월도 하반기..."무조건 '할 수 있다'고 보고해야"
보건복지부의 C 사무관은 보고서보다 ‘보고 현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리 보고서를 잘 써도 일차적으로 과장이 고치고, 국장이 다시 고치다보면 내용이 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며 ”막판엔 다른 사람이 고친 부분을 내가 지적받는 난감한 일들도 생길 수 있다“고 했다.ADVERTISEMENT
보고서 작성 경험이 풍부한 사무관들은 보고서 요령과 별개로 ‘방향’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어떤 상황에서든 윗선은 ‘할 수 없다’가 아닌, ‘할 수 있다’는 취지의 보고를 원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한 사무관은 “가령 위에서 당장 시행하길 원하는 정책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펼치기 어려울 때, 그 이유를 구구절절하게 이유를 설명하는 대신 ‘올 하반기 시행 검토’라는 식으로 표현해야 한다”며 “보고를 받는 실·국장은 7~8월에 정책을 펼칠 수 있을 거라 기대하겠지만 사무관 입장에선 12월까지 시간적 여유를 확보할 수 있다”고 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