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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칼럼] 프랑스식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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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칼럼] 프랑스식 자존심
    프랑스 하면 콧대 높은 자존심을 떠올리는 이가 적지 않다. “명료하지 않은 것은 프랑스어가 아니다”라는 18세기 작가 앙투안 드 리바롤의 단언에선 단순한 ‘모국어 사랑’ 이상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치즈 종류가 246가지나 되는 나라’라는 자기 인식에선 자국 식문화에 관한 범접할 수 없는 프라이드가 전해진다. 워털루 전장에서 사지에 몰린 나폴레옹 근위대가 마지막까지 챙긴 것도 “근위대는 죽지만 (영국 놈들에게) 항복은 하지 않는다”는 자존심이었다.

    현대 프랑스의 자존심을 대변하는 인물은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이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에 점령당해 프랑스는 더는 유럽이라는 자동차의 ‘운전석’에 앉을 수 없었다. 하지만 드골은 뒷좌석으로 밀리길 거부했다. “프랑스는 전투에선 패배했지만, 전쟁에서 진 것은 아니다”(영국 망명 후 라디오 연설)며 열변을 토한 그의 기개는 “대서양에서 우랄산맥까지 유럽이 세계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냉전 주도권 다툼으로 이어졌다. “파리를 지키기 위해 뉴욕을 희생할 수 있냐”고 미국에 외치며 독자 핵 개발도 밀어붙였다.

    드골의 행보를 연상시키는, 프랑스식 자존심을 세우는 꼬장꼬장한 모습이 그제 또다시 연출됐다. 백악관을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독불장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면전에서 주저하지 않고 ‘할 말’을 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은 우크라이나에 빌려준 돈을 돌려받는다”고 하자, 마크롱 대통령이 즉각 “아니다”고 사실관계를 정정했다. “솔직히 말하면 유럽은 (빌려준 게 아니라) 돈을 냈다. 돈을 되돌려받아야 한다면 침공한 러시아로부터 받아내야 한다”는 일성에 천하의 트럼프도 할 말을 잃었다.

    미·프랑스 정상회담 뒤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에서 미국의 핵우산이 사라질 것에 대비해 핵무기를 탑재한 프랑스 폭격기를 독일에 배치하는 ‘핵 방패’(nuclear shield) 구상도 언론에 흘렸다. 전 세계가 기존 규범을 무시하는 트럼프의 독주에 머리를 숙일 때 고개를 꼿꼿이 들면서 ‘강력한 파트너’ 이미지를 챙겼다. 마크롱의 자존심 과시가 허장성세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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