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첫 대규모 유상증자
전기차 침체에도 공격 투자 결단
'게임체인저' 전고체에 4500억
1.5조는 美·헝가리공장에 투입
"다가올 슈퍼사이클 준비할 것"
삼성SDI가 2조원 규모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배터리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과 공장 확충 등에 쓰기 위해서다. 길어지는 전기차 캐즘(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둔화)에 움츠러들지 않고 공격적인 투자로 캐즘 이후 펼쳐질 배터리 호황에 대비하기로 한 것이다.
◇“주주 반발에도 투자는 계속”
삼성SDI는 14일 2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주주 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으로 진행한다고 공시했다. 삼성SDI의 대주주인 삼성전자(19.58%)와 국민연금(7.39%), 블랙록(5.01%), 일반 소액주주(61.72%) 등이 유상증자 참여 대상이다. 청약일이 5월 27일인 만큼 상반기 중 대금이 들어올 전망이다.
최주선 삼성SDI 대표는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기반으로 중장기 성장을 가속화하기 위해 유상증자를 결정했다”며 “기술 경쟁력 강화, 매출·수주 확대, 비용 혁신을 통해 캐즘을 극복하고 다가올 슈퍼 사이클을 착실히 준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지난 20년간 한 번도 유상증자를 하지 않은 삼성SDI가 주주 반발에도 조 단위 자금 수혈에 나선 건 배터리를 둘러싼 시장 상황이 그만큼 녹록지 않아서다. 삼성SDI는 지난해 매출 16조5922억원, 영업이익 3633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매출 21조4368억원, 영업이익 1조5455억원에 비해 각각 22.6%, 76.5% 감소한 수치다. 총부채에서 단기유동성을 뺀 순차입부채는 2023년 3조6651억원에서 9조6789억원으로 2.6배가량 불어났다. 수입은 줄어들고, 빚만 쌓인 셈이다.
재무구조가 나빠졌지만 경영진은 ‘필요한 투자는 반드시 적기에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2027~2028년께 캐즘이 끝나면 기술력과 양산 체제를 갖춘 몇몇 업체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지금 치고 나가야 한다’고 본 것이다.
◇전고체 개발에 4500억원 투입
삼성SDI는 유상증자로 확보한 자금 중 약 4500억원을 전고체 배터리 라인에 투입하기로 했다. 삼성SDI는 전고체 배터리 양산 시점을 2027년으로 못 박았다. 계획대로 되면 세계에서 가장 빨리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하는 업체가 된다. 전고체 배터리는 외부 충격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액체 전해질 대신 고체 전해질을 사용하는 배터리다. 화재 안전성과 에너지 밀도를 대폭 높일 수 있어 ‘꿈의 배터리’로 불린다. 이런 ‘게임 체인저’를 가장 먼저 손에 넣게 되면 CATL, 비야디(BYD) 등 중국 업체가 휘어잡고 있는 시장 판도가 뒤바뀔 수 있다고 업계는 설명한다.
나머지 1조5500억원은 미국 및 헝가리 공장 건립에 투입한다. 미국 인디애나주 뉴칼라일에 짓고 있는 제너럴모터스(GM)와의 합작법인은 2027년 배터리 양산에 들어간다. 고성능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배터리를 생산할 예정이다. 완공 시점이 캐즘 종료 시점과 맞물리는 만큼 수요는 충분할 것으로 삼성SDI는 예상하고 있다. BMW, 아우디 등 유럽 완성차(OEM)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헝가리 공장의 생산능력도 확대한다. 삼성SDI 관계자는 “캐즘 이후 찾아올 전기차 호황을 선제적으로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SDI는 이날 미국 에너지 기업 넥스트라 에너지와 4000억원대 에너지저장장치(ESS) 공급 계약을 맺었다고 공시했다. 전체 계약 규모는 1조원대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