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구 일대 아파트 단지 전경. 사진=연합뉴스
송파구 일대 아파트 단지 전경. 사진=연합뉴스
"이번에 서울시가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용산구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한 것은 아픈 환자에게 진통제를 놓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잠시 급한 불은 끌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습니다."(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시장 전문가)

5년 동안 묶여 있던 '잠삼대청'(잠실·삼성·대치·청담동) 토지거래허가구역이 약 한 달 전 해제됐습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 있는 아파트를 사기 위해선 지자체의 허가를 무조건 받아야 하고, 실거주를 해야 허가가 났기 때문에 사실상 거래가 제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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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후 이들 지역 집값은 급등했습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송파구 잠실동 '잠실엘스' 전용면적 84㎡는 지난달 22일 30억5000만원에 거래돼 직전 거래(27억원)보다 3억5000만원 뛰었습니다. 이 단지 바로 옆에 있는 '리센츠' 전용 84㎡도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엔 신고되지 않았지만 31억원에 팔렸단 소문이 부동산 시장에 퍼졌습니다.

해제 후 집값이 날뛰자 서울시는 지난 19일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다시 지정했습니다. 잠삼대청을 뛰어 넘어 강남 3구와 용산구에 있는 모든 아파트, 약 40만가구에 족쇄를 채웠습니다. 오는 9월 30일까지 6개월 동안 지정하겠다고 했지만 시장에선 지난 사례처럼 계속 재지정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시장에선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발표 한 달여 만에 구역을 확대 재지정해 시장 혼란을 일으키고 정책 신뢰를 무너뜨린 '촌극'이란 평가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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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토지거래허가구역 재지정을 발표한 이후 시행일(24일)까지 5일이라는 시간이 붕 뜨면서 시장은 상당한 혼란을 겪었습니다. 지난 주말 잠실 일대 부동산 공인중개업소들은 매우 분주했다는 전언입니다. 규제가 시행되기 전 거래를 마치기 위해 집주인과 매수자 모두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앞으로 5년 동안 또 집을 못 팔긴 싫다"는 집주인들은 호가를 2억~3억원 낮춰 거래에 나섰고, 이런 급매성 매물을 노린 매수인들은 "조금만 더 기다리면 가격이 더 내릴 것 같다"며 물건을 일부러 잡지 않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송파구에 있는 부동산 공인중개업소 전경. 사진=뉴스1
송파구에 있는 부동산 공인중개업소 전경. 사진=뉴스1
전날부터 토지거래허가구역이 다시 시행됐지만 이번 조치는 당장 급한 불을 끄기 위한 '임시책'이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앞서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던 5년 동안 시장을 보면 거래량은 잡혔을지 몰라도 가격은 꾸준히 올라서입니다.

신한투자증권 자산관리컨설팅부에 따르면 송파구 잠실동을 예로 들면 2018년 6월~2020년 5월 거래량은 4456건이었지만 2020년 6월~2022년 5월까지의 거래량은 814건으로 81.7% 급감했습니다. 다만 집값 상승폭은 한층 커졌습니다. 같은 기간 20.79%에서 22.51%로 1.72%포인트 뛰었습니다. 잠실엘스 전용 84㎡는 2018년 6월 16억6000만원이었는데, 2022년 6월 24억원을 기록해 7억4000만원 상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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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시장 전문가 A씨는 "이미 실수요자들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어도 오를 곳은 오른다'고 학습을 마친 상황"이라면서 "단기적으로 거래가 줄어들면서 가격이 잡힌 것처럼 보이겠지만 장기적으로 꾸준히 오를 가능성이 높다. 실효성이 없는 정책"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심지어는 이번에 강남 3구와 용산구까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확대하면서 '정부가 찍어준 확실한 투자처'가 이들 지역이라는 점을 공언했다"며 "이런 점을 고려하면 이번 판단이 가격 안정과는 상관이 없지 않겠느냐"고 설명했습니다.

시장을 역행하는 제도라는 지적도 줄을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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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시장 전문가 B씨는 "전 문재인 정부 당시부터 부동산 만큼은 정부가 지속적으로 개입하는 경향이 있다"며 "시장 논리에 인위적인 정부 입김이 자꾸 들어가니 시장이 더 혼란스러워지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토지거래허가구역 재지정에 있어서 어떤 정무적인 판단이 들어갔는지, 속내는 알 수 없겠지만 정책의 신뢰성이 크게 떨어진 것은 확실하다"며 "이렇게 손쉽게 정책을 뒤집는 데 어떤 실수요자가 믿고 맡기겠느냐"고 짚었습니다.

이미 시장에선 '풍선 효과'를 기대하며 움직이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 지정된 핵심지 주변 지역 부동산 시장의 경우 대장주 아파트 집값은 이미 강남발(發) 상승세가 번져 고점 부근에 형성된 상태입니다.

부동산 시장 전문가 C씨는 "이미 강남 3구와 용산구를 인근 지역인 마포, 성동, 동작, 강동, 광진구 등 주변 지역을 주의깊게 살펴보는 움직임이 늘지 않았느냐"며 "시장을 통제하려는 규제가 등장해도, 투자자들은 늘 그 사이의 빈틈을 파고든다. 규제는 흐름을 돌릴 수는 있어도, 완전히 멈추게 하지는 못한다"고 꼬집었습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