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엔 유럽인을 하나로 묶으려는 열망이 담겨 있다. 음악에서도 이와 비슷한 단체가 활약하고 있다. 유럽 챔버 오케스트라(COE)는 ‘유럽의 예술적 이상’을 구현하겠다는 목표 아래 1981년 만들어졌다.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지휘자인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21년간 이끌면서 이 악단은 유럽을 대표하는 중형 악단이 됐다. COE가 다음 달 내한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부를 들려준다.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인 김선욱과 협연한다. 이 악단 단원들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COE의 매력과 이번 공연의 특색에 대해 짚어봤다.
아바도와 21년 함께한 유럽챔버오케스트라, 김선욱과 베토벤 여행 떠난다
COE를 거쳐간 지휘자들을 보면 단원이 약 60명에 불과한 이 악단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 아바도뿐 아니라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등이 오랜 기간 이 악단과 함께 유럽 음악인들의 교집합을 만들어왔다. 최근엔 사이먼 래틀, 네제 세갱과 같은 지휘 대가가 일원으로 합류했다. COE는 다음 달 3일 대전예술의전당을 시작으로 4일 대구 수성아트피아, 5일 LG아트센터, 7·8일 롯데콘서트홀에서 공연한다. 이틀에 걸친 롯데콘서트홀 공연은 날짜별 프로그램이 다르다. COE는 첫날 롯데콘서트홀 공연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2·4번을 연주한 뒤 둘째 날 협주곡 3·5번을 선보인다.

“김선욱 테크닉에 숨 멎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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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내한 공연에선 피아노 독주자이자 지휘자로 나서는 김선욱이 직접 곡 연주 순서와 구성을 정했다. 김선욱은 이 악단의 2022년 내한공연에서도 협연했다. 사이먼 플레처 COE 대표는 “피아니스트가 아닌 지휘자 김선욱과 협업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번 공연의 목표는 김선욱의 음악적 비전을 함께 실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플레처 대표는 COE의 역사와 함께한 인물이다. 1986년 악보 담당자로 이 악단의 일을 시작했다. 2007년부턴 악단 대표직을 맡고 있다.

각 악기들의 이끄는 수석들도 굵직한 경력의 소유자다. 야스퍼 드 발 호른 수석 연주자는 2004~2012년 로열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에서도 호른 수석으로 활동했다. 그는 “COE의 강점은 연주 중 이뤄지는 비언어적 소통”이라며 “김선욱은 풍부하고 뛰어난 음악적 직관을 갖고 있는 만큼 익숙한 레퍼토리에도 새롭고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불어넣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리에 코야마 호른 수석 연주자는 3년 전 내한 공연에서 김선욱을 만났던 경험도 떠올렸다. 그는 2020년부터 밤베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바순 수석 연주자로 활약하고 있다.
아바도와 21년 함께한 유럽챔버오케스트라, 김선욱과 베토벤 여행 떠난다
코야마 수석은 “COE와 강렬한 교감을 했던 김선욱의 당시 공연이 지금도 생생하다”며 “다양하고 섬세한 표현력, 명료하고 빛나는 음색, 뛰어난 그의 테크닉은 숨이 멎을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코야마 수석은 김선욱이 표현할 베토벤 음악이 더 각별하다. 통상 바순은 다른 독주 악기가 빛날 수 있도록 든든하게 받쳐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베토벤 작품에선 바순이 솔로로 치고 나가 빛날 때가 많다는 게 코야마 수석의 설명이다. 그는 “베토벤 작품은 바수니스트들에게 보석과도 같다”며 “바순이 가진 어둡지만 따뜻하고 풍부한 음색을 솔로 연주로서 드러낼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대형 악단과 다른 챔버 오케스트라 매력은 ‘유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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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중소규모 악단보다는 연주자 80명 이상이 합을 맞추는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대세다. 실내악보다는 교향곡이 주목받는 국내 분위기를 무시할 수 없다. COE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대형 악단에선 찾을 수 없는 중소규모 악단의 매력이 존재한다”고 입을 모은다. 플레처 대표는 “COE는 실내악부터 중규모 교향곡까지 폭넓게 연주할 수 있다”며 “카멜레온처럼 지휘자의 의도에 맞춰 연주 스타일을 바꿀 수 있는 유연함이 COE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아바도와 21년 함께한 유럽챔버오케스트라, 김선욱과 베토벤 여행 떠난다
그는 “이 악단 이름에 붙는 챔버(chamber)는 단순히 규모를 뜻하는 게 아니고 실내악을 연주하면서 단원들이 소통하고 협력하는 방식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형 교향악단은 악기별 구역이 나뉘어 있고 지휘자가 이를 통합하는 과정을 거치지만 COE에선 단원들이 서로 세심히 듣고 (직접) 조율해가며 지휘자와 음악을 해석한다”며 “이러한 유연함은 연주자 모두가 서로를 잘 보고 들을 수 있는 COE의 환경에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수석 연주자들도 작은 규모에서 오는 민첩함을 강조했다. 코야마 수석은 “COE는 대규모 교향악단보다 훨씬 더 유연하고 빠르게 반응할 수 있다”며 “교향악단이 풍성하고 꽉 찬 소리를 낼 수 있다면, 소규모 악단은 더 민첩하고 투명한 소리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드 발 수석도 “규모가 작다보니 (COE 단원들은) 지휘자와 솔리스트의 즉흥적인 창의성에 빠르게 반응할 수 있는데, 이는 대형 악단에선 어려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로맹 기요 클라리넷 수석 연주자는 투명함과 명확함, 에너지 등도 이 악단의 매력으로 꼽았다. 기요 수석은 2008년부터 COE의 수석으로 활동해왔다. 스위스 제네바 음악원과 서울대의 교수로서 후학도 양성하고 있다. 그는 “대규모 오케스트라에서 풀타임으로 연주하는 것보다 순회 공연을 하며 파트타임으로 연주하는 (중규모) 오케스트라에 있는 게 더 좋다”며 “COE는 반복되는 일상(루틴)과 안락함에서 벗어나 음악가로서 특별한 삶을 살게 해주는 에너지”라고 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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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공연’으로 한국 음식 즐길 것”

단원들이 챔버 오케스트라에 애정을 쏟는 데엔 아바도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아바도는 창립 시점인 1981년부터 21년간 COE를 이끌었다. 이 악단 단원들이 아바도에 대해 각자 나름의 추억을 갖게 된 배경이다. 플레처 대표는 “아바도는 말수가 적었지만 음악적 통찰로 많은 이들의 음악 인생에 영향을 준 사람”이라며 “음악 자체에만 집중하고 다른 문제엔 흔들리지 않던 그의 모습에서 음악을 향한 진심, 사랑, 존경심 등을 느낄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엔노 젠프트 더블베이스 수석 연주자도 “조용하고 수줍어하던 아바도의 모습은 오히려 그가 악단 음악을 완벽히 통제하는 모습을 돋보이게 했다”며 지휘 거장의 생전 모습을 회상했다.
아바도와 21년 함께한 유럽챔버오케스트라, 김선욱과 베토벤 여행 떠난다
COE는 45년째 활동이 이어져 온 배경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플레처 대표는 “특정 국적이나 소속에 얽매이지 않고 음악에만 충실했던 점이 긴 활동의 원동력이 됐다”며 “앞으로도 음악으로 사람들을 위로하면서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관객들이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 악단의 또 다른 일원인 데인 로버츠 베이시스트는 “COE엔 ‘아름다움은 안전과 재앙의 경계에 있다’는 말이 있다”며 “음악적 표현을 위해 기술적 위험을 감수하자는 의미인데 이는 단원들의 음악적 신념이기도 하다”고 짚었다.

내한 공연에 대한 기대감도 숨기지 않았다. 플레처 대표는 “한국 관객들이 보여주는 열정과 에너지는 다른 나라에선 볼 수 없다”며 “특히 젊은 관객들이 클래식 음악을 사랑해주는 모습을 보면 감동과 영감을 받는다”고 말했다. 서울시립교향악단에서 호른 연주자이자 지휘자로 활약하기도 했던 드 발 수석은 “한국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설렌다”며 “연주자들 사이에서 ‘3부 공연’으로 불리는 뒤풀이 시간에 유명한 한국 음식들을 즐길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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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야마 수석은 “열두 살 때 한국인 바수니스트에게 한국어를 배우면서 한글 읽는 법을 배운 덕분에 영화 속 한국어 대사를 이해하거나 식당 메뉴판을 읽을 수 있다“며 한국에 대한 친숙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실내악단인 바이츠 퀸텟에서 조성현, 함경, 김한 등과 같은 한국인 연주자와도 협업하고 있다. 코야마 수석은 “(한국의) 관객들이 함께 음악을 즐기시면서 잠시나마 일상을 잊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