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김해시 봉황동 유적에서 출토된 가야의 식문화 관련 목기.  국가유산청 제공
경남 김해시 봉황동 유적에서 출토된 가야의 식문화 관련 목기. 국가유산청 제공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각축전이 벌어진 시기를 삼국시대로 칭하곤 한다. 비슷한 시절 영남 일대에서 500여 년간 번성한 또 다른 나라가 있다. 자체적인 문헌 기록이 없어 삼국에 끼지 못한 왕국 가야다. 최근 경남 함안·김해 일대에서 관련 유물이 잇달아 출토되며 ‘잊혀진 왕국’의 베일이 벗겨지고 있다.

24일 찾은 경남 함안군 가야리 유적 발굴조사 현장. 20m에 달하는 계단식 석조 배수로 주위로 유적지를 표시하는 흰색 실선이 그어져 있었다. 부엽층과 사질층을 번갈아 쌓아 나무판자로 고정한 성벽이 배수로 양옆에 들어섰다. 460~548년 사이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아라가야 왕성 옛터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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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눈에 띈 건 지름 9.7m의 원형 집수지다. 성안에 물을 모아 가두기 위한 시설로 약 2주 전 새롭게 발견됐다. 가야 유적에서 집수 시설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변에선 짧은목항아리와 솥모양토기 등 생활유적이 출토됐다.

이날 경남 창원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에선 금관가야의 도읍지인 김해 봉황동 유적에서 최근 발견한 최고급 의례용 옻칠 제기 15점을 처음 공개했다. 1세기 변한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다. 오춘영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장은 “그동안 최고급 고분에서만 발견되던 옻칠 제기가 생활유적에서 발견된 첫 사례”라면서 “봉황동 일대가 금관가야 왕족의 생활공간이었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유물들은 약 109㎡ 공간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됐다. 깊이 0.7m 안팎의 유기물층에서 옻칠 제기를 비롯한 300여 점의 목제품이 무더기로 나왔다. 발굴지 일대에는 배수로 또는 도랑으로 사용된 듯한 흔적이 남아 있다. 문화유산계에선 이곳에 대규모 취락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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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이 잇달아 발굴되면서 이를 체계적으로 보관·관리하기 위한 시설인 영남권역 예담고가 이날 문을 열었다. 예담고는 ‘옛것에 현재를 담는 공간’이란 의미다.

영남권역 예담고는 가야와 신라 시대 유물 등 영남권에서 발굴된 1700여 상자의 출토품에 기반한 개방형 수장고를 운영한다. 이번 개관을 기념해 아라가야 주요 유적 발굴조사 성과를 공개하는 특별전도 마련했다. 아라가야 궁성인 함안 가야리 유적, 아라가야 귀족 무덤인 함안 말이산 고분군, 아라가야 토기 가마터인 함안 우거리 유적 출토 유물 100여 점을 전시한다.

함안·창원=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