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광주시 남한산성에서 바라본 서울 아파트 모습. 사진=연합뉴스
경기 광주시 남한산성에서 바라본 서울 아파트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울시가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용산구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한 가운데 광역 규제로 인해 서민 주거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한 달 만에 번복한 토지거래허가구역…40만가구로 확대

26일 정부와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 강남 3구와 용산구 전역 아파트가 지난 24일부터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됐다. 일대 아파트 2200개 단지, 40만여 가구가 규제 대상이다. 이들 지역 아파트를 거래하려면 관할 지방자치단체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2년 이상 실거주 매매만 허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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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시장적 규제"라며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해제했던 서울시가 한 달 만에 부동산 정책을 180도 뒤집으면서 부동산 시장이 대혼란을 겪고 있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 2월 잠삼대청(송파구 잠실동, 강남구 삼성·대치·청담동) 아파트 305곳 가운데 291곳을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지정 해제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토지거래허가구역 재지정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스1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토지거래허가구역 재지정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스1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토지거래허가제에 대해 "재산권 행사를 임시로 막아놓은 것이므로 당연히 풀어야 한다"고 해제를 예고했다. 이후 강남권 집값 상승에도 "규제 해제 직후 가격 상승은 예상했던 부분"이라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지만, 결국 "자유거래를 침해하는 반시장적 규제이지만, 독점이나 투기 등으로 시장이 왜곡될 경우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입장을 뒤집었다.

한 달 만에 뒤집어진 서울시의 부동산 실험은 더욱 강력한 규제로 돌아왔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이 서울 특정 구역이나 동(洞)이 아닌 구(區) 단위로 광범위하게 지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동산 규제를 '핀셋 규제'로 전환하겠다던 서울시의 공언도 빈말이 됐다.

규제 번복에 풍선효과 우려…옥수·흑석동 '들썩'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기간은 올해 9월 30일까지 6개월이다. 다만 시장에서는 6개월 이후에도 토지거래허가구역이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서울시가 필요하면 지정 기간 연장을 적극 검토하고, 주변 지역으로 '풍선효과'가 나타나면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추가 지정한다는 방침을 세웠기 때문이다. 앞서 잠삼대청 지역도 2020년 6월 규제 지역으로 묶이고 매년 연장을 반복해 4년 8개월간 유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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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3구와 용산구 모든 아파트가 규제 대상이 되면서 시장에서는 인근 지역 집값이 상승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조짐이 보인다. 강남과 가깝고 기존 토지거래허가구역인 성수동과 맞닿은 성동구 금호·옥수동은 호가가 2억원가량 뛰었다. 옥수동 '래미안옥수리버젠' 전용면적 84㎡는 이달 9일 22억2500만원(16층)에 팔렸는데, 비슷한 상태의 매물 호가는 현재 25억원까지 올랐다.
서울 성동구 옥수동 일대 아파트 모습. 사진=한경DB
서울 성동구 옥수동 일대 아파트 모습. 사진=한경DB
인근 개업중개사는 "저층 매물도 호가가 22억원대로 형성됐다. 다리 하나만 건너면 압구정이기에 강남권 인기가 높아질수록 집값이 뛴다"며 "용산과 강남 바로 옆이지만, 토허제는 적용되지 않았기에 일대 문의가 늘고 있다. 가격 상승을 예상한 집주인들이 매물을 내리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서반포'로 존재감을 키운 동작구 흑석동과 노량진 일대도 집값이 들썩이고 있다. 흑석동 '아크로리버하임' 전용 59㎡는 지난달 19억5000만원(5층)에 팔렸지만, 현재 같은 면적 호가는 21억원부터 시작한다. 흑석뉴타운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재개발 사업지인 9구역과 11구역 매물도 지난해 말 10억원 수준이던 프리미엄이 최근 14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2만건대로 쪼그라든 서울 전세…월세는 고공행진

향후 강남권을 중심으로 서울 전·월세 불안이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확산하고 있다. 전세를 끼고 매입하는 갭투자가 막히면 전세 물량도 줄어든다. 가뜩이나 주택 공급부족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가운데 서울 전체 면적 605.24㎢의 27%에 해당하는 163.96㎢가 토지거래허가제로 묶이면서 전세 공급은 줄고 월세는 치솟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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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지난 25일 서울 전세 매물은 2만8277건에 그쳤다. 지난 1월 3만건 아래로 내려온 이래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주택 공급도 감소세다. 올해 서울 분양 물량은 1만2628가구로 지난해 2만8219가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아파트와 마찬가지로 오피스텔 등 준주택 착공도 크게 줄었기에 공급 감소 충격은 한층 클 전망이다.
서울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월세 매물 안내문이 걸려 있다. 사진=뉴스1
서울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월세 매물 안내문이 걸려 있다. 사진=뉴스1
전세가 줄어들면서 월세도 한층 비싸졌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주택 월세는 전월 대비 0.12% 오르면서 18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할 때 내야 하는 임차료 부담도 커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월 서울 주택 전·월세 전환율은 5.3%를 기록, 2022년 4.7%에서 0.6%포인트 올랐다. 전·월세 전환율은 전세를 월세로 전환할 때 적용하는 비율이다.

전문가들은 광범위한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으로 인해 전세 매물이 줄어들면 전셋값이 오르고, 전셋값 상승에 따라 월세 부담도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서민을 강남권에서 내쫓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의미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 수석위원은 "구축 아파트나 나 홀로 단지처럼 실질적인 영향이 적은 곳까지 규제를 광범위하게 확대해 갭투자를 막으면 임대차 매물 잠김 현상이 심화할 수밖에 없다"며 "무주택 서민들의 임대차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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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도 "실거주를 유도하는 정책이 언뜻 바람직한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주택 수요가 실거주 위주로 재편되면 전세 등 임차 수요가 들어오기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세와 월세가 연쇄적으로 오르면 궁극적으로는 주택 가격이 상승하게 된다"고 꼬집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