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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민수의 노련함, 브람스를 완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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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섭의 음(音)미하다]

    지난 3월 21일 서울 예술의전당서 열린
    <KBS교향악단 제812회 정기연주회> 리뷰

    KBS교향악단 제8대 음악감독 요엘 레비와
    손민수 피아니스트의 협연
    지난 3월 21일(금) 오후 8시 <KBS교향악단 제812회 정기연주회>가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렸다. 이번 정기 연주회의 프로그램은 요하네스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Piano Concerto No. 1 in D minor, Op.15)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Ein Heldenleben, Op 40)로 구성되었고, 피아니스트 손민수와 지휘자 요엘 레비(Yoel Levi)가 함께했다.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피아노 교향곡’이라고 알려진 곡으로, 처음에 브람스가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로 작곡했다가 후에 관현악으로 1악장을 편성했고 결국에는 피아노 협주곡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약 4분 정도 관현악의 파도가 휘몰아치다가 아름다운 선율로 본격적인 피아노 협주곡의 서막을 여는 1악장을 들을 때 관객들은 브람스가 이 곡을 완성하면서 얼마나 많은 내적 갈등과 고민을 했는지 느낄 수 있다. 특히 관현악단과 피아노의 주제부가 얽히고설켜 음악적 이야기와 규모를 만들어가는 여정은 이 곡을 감상하는 포인트 중 하나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는 단일 악장으로 구성되었지만, '영웅', '영웅의 적들', '영웅의 반려', '영웅의 전장', '영웅의 업적', '영웅의 은퇴와 완성'에 이르기까지 총 6부분으로 각각의 표제가 붙여진 곡이다. 4관 편성에 2대의 하프와 대규모 현악기 세션이 동원되어 웅장하고 화려한 소리를 경험할 수 있는 이 곡은 관현악단의 정체성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피아니스트 손민수와 지휘자 요엘 레비. / 사진. ⓒ이진섭
    피아니스트 손민수와 지휘자 요엘 레비. / 사진. ⓒ이진섭
    ‘손민수-요엘 레비-KBS교향악단’은 여유로운 프레이즈 구성으로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 가진 또 다른 잠재성을 끌어내려 했다. 견고한 소리의 성벽에 여유와 운치가 곁들여져 아름다운 스케일로 변화시키는 듯했다. 음반으로 나온 이 곡의 연주 시간은 약 46~49분 정도다. ‘마우리치오 폴리니-클라우디아 아바도-베를린 필하모닉’은 이보다 더 빠르게 연주했고(44분),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사이먼 래틀-베를린 필하모닉’은 조금 더 느리게 연주했다(51분). 이날 연주는 '지메르만-래틀'의 버전보다 조금 더 느리게 연주해 52분을 넘겼는데, 느긋하면서도 늘어짐 없이 명료하게 곡을 이끄는 손민수의 노련함에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1악장에서 그는 억눌린 감정을 피아노로 분출해내듯 극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해냈으며, 2악장은 서정적이고
    명상적인 연주를 했다. 반복되는 주제와 새로운 테마가 교차하는 3악장에서는 생동감 넘치는 연주로 공연장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1악장과 2악장에서 관악기 파트의 소리 균열은 다소 아쉬움을 남겼으나, 협주곡 전반적인 짜임새나 흐름은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느긋하게 연주하는 의도를 충분히 살릴 수 있었다.

    손민수가 앙코르로 연주한 R. 슈만의 '저녁의 노래(Abendlied)'는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의 화답 같은 곡이었다.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브람스의 음악 멘토인 슈만과 그의 아내 클라라를 위해 작곡한 곡으로 알려졌는데, 손민수가 앙코르로 연주한 '저녁의 노래'로 의미 있는 서사가 완성된 듯했다.
    피아니스트 손민수. / 사진. ⓒ이진섭
    피아니스트 손민수. / 사진. ⓒ이진섭
    요엘 레비가 이끈 KBS교향악단은 '영웅의 생애'로 봄날을 수놓았다. 제8대 음악감독으로 활약한 요엘 레비와 KBS교향악단의 합은 익숙하면서도 잘 다듬어진 시리즈물 같았다. 특히, 현악기와 관악기의 앙상블이나 튜티 파트에서는 견고하게 잘 다져진 소리가 나와 온몸을 압도했다. 웅장하고 당당한 악기의 합창으로 시작해 변덕스러운 바이올린 골짜기를 지나, 영웅의 은퇴와 완성에 이르는 음악을 KBS교향악단이 밀도 높은 연주로 몰아쳤다. 따뜻한 봄날 활짝 핀 벚꽃처럼 풍성한 소리 감흥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진섭 칼럼니스트·아르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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