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증시가 반년 만에 20% 넘게 폭락했다. 군 장성 출신인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포퓰리즘 성향의 재정 정책이 잇달아 시행되고 정치 불안이 가중되면서 경제 전반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증시 반년 새 22% 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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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자카르타종합지수(JCI)는 25일 기준으로 지난해 9월 19일 기록한 전고점(7905.4) 대비 22% 하락했다. 경제지표도 악화일로다. 올해 1~2월 세수는 전년 동기 대비 20% 줄었다. 정부 재정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는 무리한 복지 중심의 포퓰리즘 정책이 지목된다. 지난해 10월 취임한 수비안토 대통령은 집권 이후 복지 지출을 늘리는 정책을 잇달아 내놨다. 지난 1월 전국 초·중·고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무상급식을 시작했다. 단계적으로 대상을 확대해 2029년까지 학생 8290만명에게 매일 점심을 제공하기로 했다. 총 소요 예산은 연간 280억달러(약 37조원)에 달한다. 2월부터는 전국민 약 2억8000만 명을 대상으로 무료 건강검진도 시작했다. 1인당 비용은 약 17만원이다.

이 같은 지출 확대에 스리 물랴니 재무장관이 반대 의견을 보이지만 오히려 경질설이 제기되고 있다. 물랴니 장관은 2016년 조코 위도도 정부 시절부터 재무부를 이끌며 긴축 기조를 유지해온 인물이다. 재정 건전성 악화 우려가 커지며 시장에서는 인도네시아의 국가 신용등급이 강등될 것이라는 소문까지 확산했다. 18일엔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한 곳이 신용등급을 낮출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자 JCI가 장중 7% 넘게 폭락했다. 2011년 9월 이후 가장 큰 낙폭이었다. 블룸버그통신은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투자자 사이에서 ‘스타’로 불리던 인도네시아가 최근 대통령의 포퓰리즘 정책으로 투자 매력을 잃고 있다”고 전했다.

정치 불안도 증시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 군부 독재자였던 하지 모하맛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사위이자 당시 군부의 핵심 인물이던 프라보워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군의 정치·행정 참여가 확대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20일 인도네시아 의회는 군 관련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군인이 겸직할 수 있는 정부 기관이 기존 10개에서 14개로 늘어나고, 군이 수행할 수 있는 비전투 작전 범위도 사이버 방어와 해외 자국민 보호 등으로 확대됐다. 이는 수하르토 정권 시절처럼 현역 군인이 각종 정부 및 민간 기업을 장악하던 시대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반발해 인도네시아 전역에서는 학생들이 군사법 개정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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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아 급락

루피아화 가치도 급락세다. 최근 달러당 1만6642루피아까지 떨어지며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올해 들어서만 3% 넘게 하락해 신흥국 통화 중 가장 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현물환, 선도환, 국채 시장에 적극 개입하며 루피아 방어에 나섰다. 에디 수시안토 중앙은행 통화정책국장은 “시장 신뢰를 지키기 위해 외환 수급 균형을 맞추는 방향으로 과감하면서도 절제된 시장 개입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연 5.75%로 동결하고 당분간 추가 긴축은 보류하기로 했다. 정부는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을 유도하기 위해 6개월간 주주 승인 없이 자사주를 취득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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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는 국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지난달 9000억달러(약 1200조원) 규모의 국부펀드 ‘다난타라’를 출범시켰다. 펀드 규모는 세계 7위로, 싱가포르 테마섹(5960억달러)보다 크다. 자문단에 세계적 헤지펀드 매니저 레이 달리오,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 등을 영입했다. 다난타라는 국영 석유기업 페르타미나, 천연가스 업체 PGN, 국영 통신사, 인프라 관리 회사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며, 인도네시아의 산업 구조를 원자재 중심에서 고부가가치 제조업 중심으로 전환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다만 국영기업 지분을 대거 보유한 만큼 정치 개입 가능성과 운영의 불투명성이 향후 리스크로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