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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에세이] 을지로와 '힙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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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종 신한라이프 대표
    [한경에세이] 을지로와 '힙지로'
    ‘서울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모두 있는 곳’ ‘MZ세대가 서울에서 가장 사랑하는 곳’….

    모두 신한라이프 본사가 있는 을지로를 수식하는 다양한 표현이다. 을지로 대로변에는 고층 오피스 빌딩이 즐비하지만, 골목으로 한 걸음만 들어가면 언제 지어졌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허름한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수십 년간 한자리를 지키며 단골손님으로 북적이는 노포와 간판이 없어 아는 사람들만 찾아올 수 있다는 와인바 및 카페가 한 건물에 공존하기도 한다. 낮에는 인쇄소와 공구상의 기계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지만, 저녁이 되면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힙지로’로 변신하는 신비한 곳이다. 을지로 거리가 시대를 뛰어넘어 모든 세대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불역유행(不易流行)’에 있다. 변하지 않는 본질은 그대로 지키면서도 시대와 상황에 맞춰 변화하고 혁신한다는 뜻이다.

    을지로 골목은 여전히 인쇄소의 잉크 냄새로 가득하지만 이제 그 기계에서 나오는 건 더 이상 책이 아니라 K팝 굿즈다. 을지로 공구상은 이제 단순한 부속품을 제작하는 것을 넘어 감각적인 인테리어 소품을 만들어 내며 새로운 활력을 찾고 있다. 전통적인 인쇄, 제작 기술이 새로운 문화산업과 만나 차별화된 가치를 창출하며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 경영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이면서도 급진적인 기업만 살아남을 수 있다. 업의 본질과 가치는 굳건히 지키되, 비즈니스 모델은 시장 상황에 맞게 끊임없이 혁신해야 한다. 미국 아마존 창업자는 ‘10년 뒤 무엇이 변할지’보다 ‘10년 뒤에도 변하지 않을 것’에 더 집중한다고 한다. 다양한 상품, 저렴한 가격, 편리한 서비스라는 유통업의 핵심 가치는 1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겠지만, 이를 고객에게 전달하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계속 진화한다.

    금융회사를 이용하는 고객은 언제나 쉽고 빠르고, 신뢰할 수 있는 금융서비스를 원한다. 하지만 고객이 금융을 이용하는 방식은 대면 창구에서 ATM으로, 인터넷뱅킹에서 모바일 앱으로 발전해 왔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할 것이다.

    아무리 오래된 기업이라도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일시적 유행을 좇느라 업의 본질을 잃어버리면 정체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을지로의 골목길을 걷다 보면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해야 하는 것, 그 균형의 지혜가 보이는 것 같다.

    얼마 전 신한금융그룹 창업자 고(故) 이희건 명예회장의 추모식이 열렸다. “지켜야 할 것은 끝까지 지키는 냉정함, 버려야 할 것은 단호히 버리는 용기,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릴지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더욱 연마하라”고 하신 말씀이 머릿속을 맴돈다.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는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해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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