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하게 또는 날카롭게…韓 무대서 되살아난 ‘왈츠의 왕’
올해는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겸 바이올리니스트인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탄생 200주년이다. 전세계에서 이를 기념하기 위한 음악회가 열리는 가운데, 국내에선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이 지난 25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왈츠의 정수를 보여줬다.

공연 시작 후 들려온 '봄의 소리'는 따뜻한 햇볕이 지면과 마음에 닿는 3월에 더욱 크게 공감됐다. 빠른 템포의 폴카 세 곡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기분으로 분위기를 한껏 가볍게 띄웠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로 전반부를 우아하게 마무리했다. 후반부는 오페레타 '박쥐'를 한 시간 분량으로 축소하고 연출을 더해 꾸몄다. 한 음악회에서 슈트라우스 2세의 음악을 이처럼 다양한 관점으로 접하는 기회는 또 다시 만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유연하게 또는 날카롭게…韓 무대서 되살아난 ‘왈츠의 왕’
전반부는 왈츠 '봄의 소리'로 화려하고 장대하게 시작했다. 이내 사뿐한 왈츠 박자에 맞춰 바람결같이 우아한 선율을 들려줬다. 지휘자 이병욱은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이끌었으며, 프레이즈 단위로 유연하게 또는 날카롭게 연주하며 각 특징을 선명하게 부각했다. 이것은 댄스홀이 아닌 콘서트홀이라는, 즉 춤이 아닌 감상을 위한 연주라는 생각이 바탕에 있었을 것이다. 이어지는 세 곡의 빠른 폴카가 이 곡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이러한 추측에 대한 심증을 굳혔다. '천둥과 번개'는 타악기의 맹렬한 활약이 돋보였으며, 금관의 빛깔을 더하면서 음악을 입체화했다. 관객들의 마음은 이미 질주하듯 숨이 찼을 것 같지만, 더욱 가볍고 날렵한 리듬과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걱정 없이'는 그들을 마냥 놔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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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은 객석을 더욱 들썩이게 했다. 사냥용 뿔피리에서 유래한 호른의 연주가 돋보였으며, 실감 나는 채찍 소리와 현악기의 민첩한 보잉은 달아나는 동물과 이를 쫓는 사람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이렇게 동일한 심상을 일관되게 이끌면서 새봄을 맞는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이어서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가 우아하고 중후한 음향으로 숨을 고르며 시작했다. 양식화된 춤곡으로서 차분하고 귀족적으로 연주했는데, 이는 롯데콘서트홀의 음향적 특성과 맞물려 공명하는 울림과 깊은 잔향까지 감동을 일으켰다.
유연하게 또는 날카롭게…韓 무대서 되살아난 ‘왈츠의 왕’
후반부는 오페레타 '박쥐'의 서곡과 주요 노래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이병욱과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은 여유 있는 곳에서는 한껏 유연하게, 급한 부분은 찌를 듯 날이 서게 연주하며 다양한 악상들의 특징적인 뉘앙스를 드러냈으며, 연결구에서 나타나는 특유의 템포 변화도 무리 없이 진행했다. 악기들의 밸런스가 훌륭해 조화로운 음향으로 어우러졌다.

일곱 명의 성악가들은 고르게 뛰어난 실력과 상당한 성량, 편안한 미성을 갖추고 있었다. 재간 있는 아이젠슈타인, 우아한 로잘린데, 선명한 아델레, 탁 트인 알프레드, 고급스러운 팔케, 귀족다운 오를로프스키, 중후한 프랑크 등 모두 다른 음색을 갖고 있어 청각으로 각 인물의 캐릭터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표정과 몸짓을 연극처럼 소화해 각 페르소나에 온전히 몰입하고 객석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관객들에게 음악극 관람의 기쁨을 알게 했다.
유연하게 또는 날카롭게…韓 무대서 되살아난 ‘왈츠의 왕’
마지막에 로잘린데가 아이젠슈타인의 시계를 꺼내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 전면에 드러나지 못한 것은 다소 아쉽다. 그럼에도 지휘자와 가수가 등을 맞대고 연주하는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이상으로 잘 하긴 힘들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성공적인 공연이었다. 이번 공연을 계기로 오페라 축소 버전 시리즈가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송주호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