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칼럼] 토허제가 뭐라고 집값을 흔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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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칼럼] 토허제가 뭐라고 집값을 흔드나
[마켓칼럼] 토허제가 뭐라고 집값을 흔드나
배문성 라이프자산운용 운용1본부 이사

계절의 변화로 바라보는 부동산 시장

최근까지 부동산 뉴스를 뒤덮은 키워드는 토지거래허가제도(이하 ‘토허제’)이다. 사실 토허제 자체는 집값의 본질가치와는 무관한 것인데 일부 아파트는 해제만으로 3억~4억원이 오르고 재지정으로 매매가가 다시 내려가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시장 가격을 움직이는 동인은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필자가 꼽는 가장 중요한 판단지표는 ‘(이전과 비교해서) 빚내기 쉬운 환경인가, 어려운 환경인가’ 여부이다. 토허제 해제로 갭투자가 가능해지면 이전보다 빚내기 쉬운 환경이 된다. 전세라는 무이자 부채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토허제를 재지정한 것은 그 반대의 효과를 주게 되니 타오르던 불길에 찬물을 끼얹는 셈이다.

토허제 재지정으로 당분간 소강상태가 되겠지만 수요억제 효과의 지속성과 풍선효과에 대한 의구심은 남게 된다. 일각에서는 금리인하와 공급부족 때문에 대세상승이 불가피하므로 수요억제 효과는 일시적이라고 전망한다. 국토부에서 보도한대로 2025~2026년 서울지역 아파트 입주물량은 예년대비 적지 않은 수준이나, 그 진위를 떠나 미래 공급물량이 지나치게 적다는 대중의 인식 자체는 불안 요소이다. 금리인하와 관련해서는 2023~2024년에 목도한대로 대출금리와 기준금리는 필요에 따라 다르게 움직였다. 금리인상기에는 정책자금과 창구지도 등을 활용하여 신규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상당 폭 낮췄고, 반대로 금리인하가 시작되자 가계대출 확대를 억제하는 방편으로 대출 금리는 오히려 상승한 바 있다. 그러니 단순히 금리인하보다는 정부의 가계대출 관리 의지가 관건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현 시점에서는 금리인하를 단순 호재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①거시경제 환경과 ②정부의 건전성 관리 기조를 감안한 리스크 요인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

여름과 겨울만큼 다른 거시경제(매크로) 환경

그래프=한국은행
그래프=한국은행
그림1은 2015년 이후 서울과 비서울지역의 월별 아파트 거래량을 나타낸 것이다. 거래량이 가장 많을 때와 적을 때를 비교해보면 비서울 지역은 월 2만~10만 건으로 5배 범위인데, 서울 지역은 월 1000~1만5000건으로 15배나 차이가 난다. 아파트가 필수재라면 이렇게 큰 변동성을 보일 순 없다. 그만큼 서울은 비서울 대비 투자수요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의미이다.

아울러 2021년 하반기를 전후로 양상이 사뭇 다른데, 2015~2020년 기간 중엔 월 1만건 이상의 거래가 흔했지만 2021년 이후에는 월 5000건 이상의 거래도 드물다. 2015~2020년 기간 중 8.2대책, 9.13대책 등 강도높은 부동산 대책이 발표되면 잠시 소강상태가 되었지만 이후 거래량이 빠르게 반등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곧 ‘규제로는 아파트 수요를 막을 수 없고 집값 안정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학습효과로 이어졌다. 그런데 2021년을 전후로 왜 이런 차이가 벌어졌을까?
그래프=한국은행
그래프=한국은행
그림2는 2015년 이후 우리나라의 분기별 GDP성장률과 기준금리를 나타낸 것이다. 특수한 상황이었던 2020~2021년 팬데믹 기간 전에는 GDP성장률이 3~4%인데 기준금리는 1.25~1.5%수준에 있다. 저금리가 성장률을 어느정도 끌어올리기도 했지만, 현재와 비교하면 상당히 완화적인 여건임은 틀림없다. 올해와 내년은 1%대 성장이 전망되는데 현 기준금리는 2.75%이다. 금리를 인하하더라도 당분간 기준금리가 GDP성장률보다 높은 제약적인 환경이 지속된다. 과거에는 각종 규제에도 불구하고 월 1만건 이상의 아파트 매매 거래량을 손쉽게 회복했지만, 이제는 온갖 규제를 해제하고 정책성자금을 지원하는 등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1만건 수준의 거래량을 달성할 수 있다는 차이는 달라진 매크로 환경에 기인한다.

이러한 매크로 환경을 두고 2015~2020년은 여름, 2021년은 간절기, 2022년 이후는 겨울에 비유하자면, 여름엔 찬물(각종 규제)을 부어도 열기를 식히긴 어려웠지만, 겨울에는 상당한 불(정책자금 지원, 종부세 완화 등)을 떼야만 온기가 퍼지는 것과 같다. 여름에 찬물은 효과가 일시적이겠지만, 겨울에 찬물은 다르다고 봐야 한다.

곳간이 부족해지는 시기의 각자도생

찬물을 끼얹으면 욕을 먹지만, 불을 떼는 덴 비용이 든다. 나라살림이 빠듯하면 불을 떼기 어려워진다. 2023년 1.3대책은 ‘둔촌주공 살리기’라 불릴 정도로 지역을 가리지 않는 전방위 규제 완화였는데, 당시 부동산PF 문제가 제2금융권의 부실과 시스템 리스크로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를 잠재우기 위한 조치로 평가된다. 주택시장 회복을 위한 직간접적인 지원 및 양극화의 결과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2년 연속 약 4조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했고, LH는 지방미분양을 매입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었다. 이는 정부부채 및 세금 부담과 무관하지 않다. 둔촌주공도 살려야하던 시절에는 서울과 비서울 가릴 것 없이 전방위적인 규제 해제가 필요했지만, 지방 부동산을 살리기 위해서는 서울은 규제하고 지방은 완화하는 차별화 전략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차별이 없다면 지방을 팔고 서울을 사려는 쏠림을 방지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곳간이 부족해지니 지원대상을 축소할 필요도 있고, 양극화 완화라는 명분도 챙길 수 있다. 대외적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재임기간이라는 것도 악재라 할 수 있다. 미국의 부채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다른 국가들에게 각종 부담을 전가하는 중인데, 알래스카 가스전 개발 참여 등 예상 밖의 지출도 우리 곳간의 부담요인이다. 집값이 떨어지면 정부가 도와줄 거라는 도덕적 해이를 경계하고 각자도생 가능한 체력을 점검해야 할 시기이다.

* 본고 내용은 개인 의견이며 소속회사와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