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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 시키는 미친 짓 우리가 인간이라는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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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지연의 讀說

    비등단 전업작가로 20년
    출판계 스타가 된 임경선

    틈틈이 글쓰던 직장인서 전업작가로
    '다 하지 못한 말' 등 사랑의 감정 다뤄

    기억에 남는 책은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
    여섯번 재발한 갑상샘암 견디게 해준 힘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꾸준히 책 쓰고 파
    임경선 작가가 서울 사직동 자택 작업실에서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솔 기자
    임경선 작가가 서울 사직동 자택 작업실에서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솔 기자
    ▷올해가 전업작가 20주년입니다.

    “2005년 두산매거진(당시 두산 잡지) 마케팅팀 팀장을 끝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이전엔 부업으로 신문이나 잡지에 칼럼을 기고했죠. 라디오 출연도 종종 했고요. 그렇게 쌓인 이야기를 에세이로, 또 소설로 펴내다가 훌쩍 이만큼 왔네요.”

    ▷자기계발서 성격의 에세이로 시작해 단편소설, 장편소설까지 확장했습니다.

    “저 스스로는 작가 커리어의 진짜 시작을 2012년 낸 일곱 번째 책 <엄마와 연애할 때>부터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어요. 2011년 첫 소설집 <어떤 날 그녀들이>를 내놓은 뒤 쓴 산문이에요. 이전에도 책은 썼지만 직장 생활하다 칼럼, 에세이, 소설로 넘어갔다 보니 소재가 사랑, 연애, 직장 여성 등에 한정된 면이 있었죠. 소설을 한 번 쓰고 나니 글의 폭이 확 넓어졌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제 안의 연한 부분이 섬세하게 나올 수 있게 체질적으로 변했달까요. 소설과 에세이를 번갈아가며 쓰는 편인데, 이런 방식이 글을 쓰다 고비가 올 때 물꼬를 터주는 것 같습니다.”
    임 작가의 자택 작업 공간. /이솔 기자
    임 작가의 자택 작업 공간. /이솔 기자
    ▷에세이 <태도에 관하여>는 2015년 출간 뒤 종이책만 22만 부 넘게 팔렸습니다. 젊은 여성들의 스테디셀러인데요.

    “제 입으로 말하긴 좀 부끄럽지만 ‘독고다이 자유주의자’의 느낌을 독자들이 좋아해주는 것 같아요. 엄격하면서도 단정한 태도를 강조하는 ‘범생이 에세이’ 같으면서도 자유로울 수 있는 여지를 깔아주고 있거든요.”

    ▷최근작인 장편소설 <다 하지 못한 말>까지 사랑 이야기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기혼의 중년 작가가 청춘 남녀의 감정을 섬세한 감각으로 다룬다는 점이 흥미로운데요. 사랑 이야기가 아직도 재미있습니까.

    “저는 사랑 이야기가 계속 좋아요. 타고난 것 같아요. 사람마다 사랑에 대한 관심이나 용량은 다른 것 같은데, 저는 그게 큰 사람인 거죠. 사랑은 무척 귀한 감정이에요. 우리가 살면서 남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나보다 남을 더 앞세우는 경우는 사랑할 때밖에 없어요. 완전한 타인을 사랑하는 일은 자신을 놔버리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에요. 그때 유일하게 사람은 자기 자신을 초월하는 경험을 합니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바보가 되죠. 현실적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하려고 헤매기도 하고요. 사랑이 시키는 미친 짓이죠. 내가 손해 보면 안 되는 게 상식이고 현실인 세상에 살면서, 자발적으로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것. 저는 이게 인간다움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만 생각하고, 상처받지 않을 결정만 내리는 인생은 재미없지 않나요?”

    ▷책은 언제, 어떻게 읽는 편입니까.

    “아침부터 이른 오후까지 원고 집필을 하기 때문에 독서는 그 이후에 합니다. 보통 자기 전 한두 시간. 외출할 때도 한 권씩 가지고 다닙니다. 집필에 필요한 자료를 얻기 위해 읽을 땐 낮 시간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즐거움을 위한 책은 늘 밤에 읽죠.”
    "사랑이 시키는 미친 짓 우리가 인간이라는 증거"
    ▷최근 읽은 책 중엔 뭐가 가장 좋았습니까.

    “1986년 출간됐다 절판된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소설집 <복도에 앉은 남자>. 제가 뒤라스를 좋아하는 걸 아는 북디자이너가 ‘고대 유물’이라며 빌려준 책이에요. 당시 이 소설이 출간됐다는 게 놀라워요. 파격적이면서 수위가 높기도 하고 ‘데카당스’하달까요. 불과 6년 뒤 마광수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외설 소설 집필 혐의로 투옥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 뜻밖이죠. ‘뒤라스한테도 이런 시절이 있었구나’ 싶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잊지 못할 특별한 독서 경험이 있나요.

    “2015년 갑상샘암이 여섯 번째 재발해 수술을 받았어요. 사람이 아무리 회복 탄력성이 좋아도 같은 펀치를 계속 맞으면 기분이 상당히 안 좋거든요. 아이는 어린데 몸은 힘들고, ‘이게 평생 나를 잡는구나’ 싶었죠. 모든 것이 멈춰선 막막한 마음일 때 병실에서 <파이 이야기>를 읽었어요. 사실 저는 동물 나오는 책을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태평양 바다 한가운데서 표류하는 소년의 이야기를 읽는데 기묘하더라고요. 절망적이던 제 마음에 확 와닿았어요. 인생은 ‘견딤’의 연속인 것 같은데, 그때가 제겐 견디는 시기였거든요. 파이도 그 시간을 견뎌낸 거잖아요. 무엇보다 소설이 너무 재밌더라고요. 동물 나오는 책이 이렇게 재밌을 줄 몰랐어요.”

    ▷책의 어떤 점이 좋습니까.

    “오감이 열려 있는 상태이면서 ‘읽기’라는 한 가지 감각만 필요로 하는 게 좋습니다. 자발적으로 내가 선택해서 할 수 있는 행위라는 게 중요해요. 책은 외로움이 아닌 양질의 고독을 주는데, 고독이란 귀하고 감미로운 거거든요. 우연히 발견한 책을 누구에게 보여줄 것도 없이, 그냥 혼자 너무 즐겁게 읽은 경험이 있다면 그 사람은 독자가 돼요.”

    ▷무라카미 하루키 관련 책도 썼을 정도로 골수팬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에게 받은 영향이 있나요.

    “그분이 50년 가까이 꾸준히 책을 내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죠. 소설, 산문 등 저서가 160권에 달해요. 제가 30대 중반에 작가가 됐을 때 그분은 50대였고, 지금은 70대예요. 내가 좋아하는 작가, 닮고 싶은 사람이 계속 저렇게 열심히 하는 걸 보면 나도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죠. 그분이 앞에 계셔서 저도 시간의 흐름을 의식하지 않고 앞만 보고 쓸 수 있어요. 저를 계속 작가로 남아 있게 하는 사람입니다.”

    ▷과거 비등단 작가의 설움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지금은 자유로워졌습니까.

    “서러움을 느낄 나이는 지난 것 같아요. 제 경우 좀 배부른 소리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잊지 못할 기억은 있지요. 첫 소설집을 냈을 땐 황당하게도 출판계 일각에서 대필이란 소문도 돌았어요. ‘쟤는 뭔데 소설을 써?’ 이런 거겠죠. 등단 제도를 인정하지 않거나 없애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내가 속하지 않는다 해서 부정하거나 불평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영미권처럼 출판 에이전트 시스템이 독립적으로 기능하기 어려운 한국 사회에선 그래도 운용 가능한 시스템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20년 전업작가로 생존했고, 베스트셀러 작가로 성공했습니다. 소회가 궁금합니다.

    “저술업은 하면 할수록, 매번 새 책을 쓸 때마다 막막한 느낌이 듭니다. 작가라는 직업은 잘돼도 망하고, 안돼도 망해요. 필연적으로 피폐해질 수밖에 없죠. ‘성공’이라는 단어는 한 번도 사용해본 적도, 느껴본 적도 없어요. ‘내가 쓰고 싶은 걸 써냈다’ 정도의 충족감은 종종 얻는데, 그게 최선인 것 같아요.”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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