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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프리즘] 군비 족쇄 풀린 독일 방산의 진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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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년 만의 국방비 제한 해제
    새로운 도전 직면한 K방산

    김형호 편집국 부국장
    [이슈프리즘] 군비 족쇄 풀린 독일 방산의 진격
    “다시는 전쟁을 치를 수 없는 농업국가로 만들어야 한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독일의 운명은 두 명의 미국 장관 손에 달려 있었다. 헨리 모겐소 재무장관은 루르 공업지대를 완전히 파괴해 독일을 1차 산업국가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주범국의 군수 기반을 완벽하게 제거하는 징벌적 ‘모겐소 플랜’이다. 조지 마셜 국무장관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군수 분야는 억제하되 일반 산업시설은 복구하는 부흥책을 꺼내 들었다. 날로 준동하는 공산 진영의 세력 확장을 저지하기 위해선 독일의 경제적 회복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전후 유럽의 정치·경제 질서를 규정한 ‘마셜 플랜’의 태동 배경이다. 유럽의 경제 거인으로 성장했음에도 독일은 지난 수십 년간 국방력에서는 절제의 문화를 지켜왔다.

    지난 24일 독일의 80년 봉인이 풀렸다. 이날 독일 연방의회는 여야 합의로 연방 재정준칙인 ‘부채 브레이크’를 해제했다. 신규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0.35%를 넘지 않도록 엄격하게 제한해온 재정운용 방향을 19년 만에 완화한 것이다. 주목할 대목은 국방비 부채한도를 없앤 점이다. GDP의 1%를 초과하는 국방예산에 대한 재정준칙 예외 적용을 허용했다. 전후 독일의 군사 대국화를 제어해온 ‘군비 브레이크’가 사라진 것이다. ‘역사적 전환점’이라는 평가가 나올 만한 국가 정체성의 대변화다. 지난해 GDP의 2.1%인 독일의 국방예산은 2027년 3.5%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작년 한국의 국방비는 GDP 대비 2.8%였다. 세계 3위 경제대국인 독일의 GDP가 한국의 약 2.6배(4조5000억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유럽 방산 최강자의 군비 제약 해제는 예삿일이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친러시아 행보가 독일의 80년 군비 봉인을 제거하는 ‘나비효과’를 낳은 것이다.

    독일의 공격적 국방예산 확대는 K방산엔 실존적 위협이다. 해외에 수출하는 K방산 주력 제품의 상당수는 독일의 기술체계를 차용해 개량한 것이다. 장보고급 잠수함은 티센크루프(TKMS)의 209 잠수함, K-2의 주포와 탄약 기술은 레오파르트2 전차 공동 개발사인 라인메탈에서 들여왔다. K-9 자주포는 독일의 PzH2000 자주포 기술을 바탕으로 개발했으며 독일 MTU사의 디젤엔진을 사용한다. K방산 기술의 원조가 독일인 격이다.

    우크라이나전 발발 이후 K방산이 호기를 맞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짧은 납기와 가성비’였다. 뛰어난 성능에도 생산능력 제약으로 독일은 방산 수출에서 운신의 폭이 크지 않았다. 당초 레오파르트2 전차 도입을 원한 폴란드 정부가 K-2 전차와 K-9 자주포를 대안으로 택한 데는 독일 정부의 결정 지연과 공급 불확실성이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독일의 군비 제한이 한국에는 기회였다는 얘기다.

    하지만 군비 제약에서 벗어난 독일이 생산능력을 급격히 확대하고 수출에 적극 나선다면 K방산은 새로운 도전을 맞을 것이다. 지난해 11월 호주 정부가 발표한 10조원 규모 구축함 수주전은 향후 해외에서 마주할 양국 방산 경쟁의 전초전이었다. ‘가성비 경쟁력’을 기대한 국내 조선사들은 모두 고배를 마셨다. 일본의 미쓰비시와 독일의 티센크루프가 나란히 최종 후보에 올랐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각국은 각자도생을 위한 국방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모처럼 기회를 맞은 방산업계에 K방산기술의 원조 격인 독일의 전면적 국방력 강화 움직임은 달가운 소식이 아니다. 유럽, 중동, 아시아 시장에서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독일 전차군단을 마주할 공산이 커지고 있어서다. ‘가성비’ ‘적기성’에 효능을 더하는 하이브리드 K방산 수출 전략을 강구해야 한다.
    김형호 기자
    한국경제신문 건설부동산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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