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톡톡] 증상을 직접 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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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상 삼성서울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필자가 MZ세대(밀레니얼+Z세대) 환자들을 마주할 때 자주 하는 말이다. 요즘 적지 않은 젊은 환자가 보호자(주로 어머니)와 함께 진료실을 찾는다. 본인의 증상을 정확하고 상세하게 직접 설명할 수 있는 이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부모님과 함께 내원한 대부분의 MZ세대 환자는 그렇지 못하다. 소아·청소년은 부모가 대신 설명하는 것이 맞다 쳐도, 2030 환자들마저 의사 표현이 서툴러 동행한 부모가 대신 병증을 설명한다고 말하면 병원 현실을 잘 모르는 주변 지인들이 꽤 놀라곤 한다.
진료 시작부터 끝까지 정말 한마디도 하지 않는 환자가 있고 가끔 말을 하려고 할 때도 부모의 눈치를 보거나 명확하게 의사를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반면 함께 온 부모들은 자녀의 주관적 증상은 물론 본인들이 관찰한 증상에 대한 반응, 행동, 태도까지 호소 반 푸념 반으로 길게 늘어놓는다. 한참을 듣고 나서 환자에게 “어머님 말씀이 맞을까요?”라고 물어보면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거나 “그런 것 같아요”라고 답하는 식이다.
모든 진료와 진단의 첫 번째는 정확한 ‘병력 청취’다. 인공지능(AI) 기술이 아무리 발달하고 진단 기법이 발전해도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 과거력, 복용력을 먼저 듣지 못하면 올바른 검사의 방향을 잡고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없다. 자신의 몸이 어디가 아프고 불편한지를 잘 아는 주체는 당연히 나 자신이다. 앞으로 이뤄질 모든 검사와 치료를 온전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본인이다. 바라보는 보호자 가족의 걱정도 상당하겠지만 그렇다고 진료의 주체가 바뀌지 않는다.
외래 진료실에서는 전국에서 오는 다양한 환자를 만난다. 누군가는 진료실에서 인생을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배우자의 험담을 하거나 자식 자랑을 늘어놓기도 한다. 어떤 질환은 환자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상당 부분 치료되기에 열심히 들어주려 노력하지만, 밖에서 들리는 진료 지연 방송에 정신을 차리고는 한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경우는 별말도, 반응도 하지 않는 환자를 만났을 때다.
MZ세대 모두가 다 이런 행동을 보이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직장 등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당당히 할 수 있고 1인 방송이나 쇼츠에서도 부끄럼 없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줄 안다는 특성이 있지 않나. 그럼에도 유독 병원에 오면 본인의 증상을 직접 잘 얘기하지 못하는 젊은 환자들을 자주 발견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진료실의 대화는 ‘건강’이라는 퍼즐을 맞춰가는 시작점이다. 그 시작에 본인의 목소리가 없다면 퍼즐의 가장 중요한 조각 하나가 빠진 채 출발하는 셈이다.
나는 오늘도 조심스럽게 묻는다. “이번엔 자녀분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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