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드래곤 콧물 투혼에도…'73분 지연·미숙 대처' 흠집 난 콘서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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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드래곤, 고양종합운동장서 콘서트 개최
29일 공연 총 1시간 13분 지연돼
체감 영하 5도 날씨 속 관객 '무한 대기'
명곡 릴레이에 환호…가수 컨디션은 아쉬움
29일 공연 총 1시간 13분 지연돼
체감 영하 5도 날씨 속 관객 '무한 대기'
명곡 릴레이에 환호…가수 컨디션은 아쉬움
지드래곤은 지난 29일 경기 고양시 고양종합운동장에서 2025 월드투어 '위버맨쉬 인 코리아(Übermensch IN KOREA)'를 개최했다.
'위버맨쉬'는 솔로 가수 역대 최대 규모의 투어 기록을 세운 지드래곤의 두 번째 월드투어 'M.O.T.T.E' 이후 무려 8년 만에 개최하는 단독 콘서트로, 30일까지 총 이틀간 6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올해 상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꼽히는 공연답게 티켓은 오픈과 동시에 빠르게 6만석이 전석 매진되며 'K팝 제왕'이라 불리는 지드래곤의 저력을 실감케 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매서운 꽃샘추위에 발목이 붙잡혔다. 첫날 공연은 돌풍의 영향으로 무려 73분이나 지연됐다. 당일 오후 공연 주최사 쿠팡플레이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30분 지연을 사전 공지했다. 이에 당초 오후 6시 30분 시작 예정이었던 공연은 7시로 시간이 변경됐다. 이후 현장에서 43분이 추가 지연돼 7시 43분이 되어서야 지드래곤을 볼 수 있었다.
안전상의 이유로 공연이 지연되는 것에 불만을 드러내는 이는 없을 테다. 문제는 관객들이 좌석에 앉아 있는 상태에서 지연과 관련한 안내가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7시를 넘겨서도 공연은 시작되지 않았고, 7시 6분께 공연장 스크린에 '부득이한 기상 악화로 인해 일부 연출 및 특수효과가 안전상의 이유로 제한될 수 있음을 안내해 드리며, 관객 여러분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결정이오니 너른 양해 부탁드린다'는 안내문이 띄워졌다. 장내 멘트도 함께 나왔다. 앞선 30분 지연에도 기다려 준 관객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가 더해졌다. 이에 관객들은 환호로 답했다.
그러나 해당 안내 이후에도 공연은 한참 동안 시작되지 않았다. 스크린에는 쿠팡플레이 홍보 영상과 지드래곤 뮤직비디오가 재생됐다. 고양종합운동장은 야외 공연장이다. 이날 7시 21분 기준 고양시의 기온은 2도, 체감 온도는 영하 5도까지 떨어졌다. 두꺼운 겨울 패딩과 목도리를 착용했음에도 차가운 기운이 파고들고 손과 발이 꽁꽁 어는 날씨였다. 관객들은 왜 지연되는지 이유도 모른 채 자리에서 하염없이 기다렸다.
지연 30분을 넘기자 관객들은 점차 동요하기 시작했다. 객석은 술렁였고, 뮤직비디오가 끝나고도 공연이 시작하지 않자 탄식이 나오기도 했다. 맹추위에 자리를 이탈하는 이들도 생겼다. 그런데도 쿠팡플레이 홍보 영상과 뮤직비디오만 반복해 나올 뿐 지연 사유, 공연 진행 여부, 대처 상황 등 어떠한 안내도 들을 수 없었다.
30~40분을 초과하는 지연은 공연 취소를 고려해야 할 정도로 중대한 일로, 상황에 대한 안내는 기본 중에서도 기본이지만 이조차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관객들은 별다른 선택지 없이 자리에 앉아있어야 했다. 유료 티켓을 구매하고 온 소비자임을 고려하면 황당한 운영 방식이 아닐 수 없었다. 일각에서는 '지각 공연'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지드래곤은 이날 오후 2시에 사운드 체크를 했다. 정확하게는 '지각'이 아닌 '지연'이다.
변경된 시간인 7시에 추가로 43분이 더 지연되면서 공연은 총 1시간 13분 늦게 시작했다. 팬들은 무한한 기다림을 겪었음에도 지드래곤이 무대에 등장하자 힘찬 박수로 그를 반겼다. 지드래곤 역시 무대로 보답하려는 듯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며 '파워(POWER)'로 강렬하게 공연의 포문을 열었다.
오프닝 무대 후 지드래곤은 "잘 지냈냐. 오랜만에 공연한다. 8년 만에 지드래곤이 돌아왔다. 노실 준비 됐느냐"고 외쳤다. 이때까지만 해도 공연 지연에 대한 언급이 없었으나, 몇 개의 곡을 더 선보인 뒤 "오늘 날씨도 너무 추운데 이렇게 시작하게 돼 죄송스럽다"고 사과했다.
그룹 빅뱅으로 데뷔해 K팝 전성기를 이끈 주역인 지드래곤은 뛰어난 음악적 역량을 토대로 솔로로도 큰 성공을 거둔 아티스트다. 음악은 물론 패션,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독보적인 스타일과 감성을 자랑하는 그는 수년간 '시대의 아이콘'으로 꼽혔다.
올해는 특히 의미가 있는 해다. 지난해 마약 투약 누명을 쓰는 등 힘든 시간을 보낸 그는 무려 7년의 공백을 깨고 당당하게 대중 앞에 섰다. 싱글 '파워'에 이어 정규 3집 '위버맨쉬'까지 발매하며 단숨에 음원차트를 휩쓸었다. 변함없이 정상의 자리를 지키며 '지드래곤다운 행보'를 재차 선보였다.
'위버맨쉬'는 프리드리히 니체가 제시한 철학적 개념으로, 기존의 도덕과 가치관을 뛰어넘어 스스로의 가치를 창조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이상적인 인간상을 의미한다. 지드래곤은 이 개념을 차용해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기존의 틀을 깨고 자신만의 삶을 개척하는 모습을 앨범에 담아냈다.
이번 공연은 앨범의 연장선으로, '위버맨쉬'가 초인으로 거듭나는 3단계를 스토리텔링으로 구현하려 했다. 이를 위해 지드래곤이 암 리프트를 장착해 초인과 같이 하늘을 나는 퍼포먼스를 보였어야 했지만, 기상 악화로 볼 수 없었다.
공연을 준비한 아티스트 입장에서 가장 큰 아쉬움이 남았을 테지만, 지드래곤은 덤덤하게 팬들과의 소통으로 빈틈을 메꾸려 노력했다. 추운 날씨에 연신 코를 훌쩍이면서도 앨범과 공연에 대해 진실하게 설명하려 했다. 입을 뗄 때마다 입김이 펄펄 났다.
지드래곤은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어서 고민하고, 그리워하고, 돌아오기까지 돌고 돌아서 시간이 조금 오래 걸렸다"면서 "이번 앨범이 니체가 나오고 사상, 철학 이런 말을 하니까 어려워 보이지 않냐. 사실 있어 보이려고 한 거다. 별거 아니다. 그냥 계속 열심히 하자는 뜻"이라고 말했다.
'위버맨쉬' 앨범 티저에서부터 공개돼 이번 활동의 상징 이미지로 쓰여왔던 두 실루엣 형상에 관해서도 설명했다. 두 인간 실루엣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이 이미지에 대해 지드래곤은 "'하트 브레이커' 때 내 모습이랑 이번 앨범 만들면서 촬영한 내 모습"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나의 시작과 지금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거다. 과거와 현재의 나. 이 둘이 있으니까 지금의 나는 미래이자 진행형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금이 어떤 모습이든, 계속 도전하든 아니면 새로운 걸 하든, 전 저와 여러분 우리가 모두 다 '위버맨쉬'라고 정의합니다."
이어 '삐딱하게'의 전주가 흘러나오자 팬들은 추위도 잊은 듯 열광했다. 지드래곤은 한참을 무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자유분방하게 객석을 누비며 관객에게 마이크를 넘기고 환하게 웃었다. '톱 아티스트' 지드래곤과 3만여 관객이 하나가 된 순간이었다. '크레용', '그 XX', '투 배드(TOO BAD)', '디스 러브(THIS LOVE)', '무제'까지 한순간도 놓칠 수 없는 명곡의 향연이 펼쳐졌다.
역대급 컬래버레이션도 준비했다. 'R.O.D.' 무대에서 투애니원 씨엘(CL)이 등장해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씨엘은 단단하고 힘 있는 목소리로 한순간에 좌중을 압도했다. 이어 2009년 두 사람이 함께 호흡했던 곡 '더 리더스(The Leaders)'까지 선사해 특별한 시간을 완성했다.
'하트브레이커(Heartbreaker)'에서는 한국인 최초로 아시아 비트박스 챔피언십에서 챔피언으로 등극하고, 세계 최고 비트박스 대회인 그랜드 비트박스 배틀(GBB) 솔로 부문에서 와일드카드 1위를 기록한 비트펠라하우스의 윙이 협업해 팬들을 흥분케 했다. 최고의 히트곡, 최상의 비트로 이루어낸 최초의 컬래버레이션에 현장은 열광의 도가니가 됐다.
소속사 갤럭시코퍼레이션은 지드래곤이 합류한 후 처음 개최한 이번 공연에서 기술력을 내세우기도 했다. 공연장 위에서는 드론 아트가 펼쳐졌고, 디에이징 기법으로 재현된 꼬마 룰라 시절의 지드래곤 모습도 영상을 통해 만나볼 수 있었다.
공연을 마치며 지드래곤은 "한분 한분 눈에 담고 싶다. 몸 둘 바 모를 정도로 이곳이 꽉 찼다"고 말했다. 그는 데이지 모양의 응원봉을 든 팬들을 향해 "꽃밭"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런 모습을 그려본 적이 근 몇 년간 없었는데 오늘 꽃밭이 참 예쁘다"고 감격했다. 아울러 "오늘 늦어서 죄송하고, 또 추워서 죄송하다"면서 하늘을 바라보며 "야, 너 내일은 좀 부탁한다"고 외치기도 했다.
끝으로 지드래곤은 한국에서의 앙코르 콘서트와 내년 빅뱅의 20주년 이벤트를 예고해 박수받았다.
서울 공연을 마친 지드래곤은 오는 5월 10, 11일 일본 도쿄를 시작으로 필리핀 불라칸, 오사카, 마카오, 대만, 쿠알라룸푸르, 자카르타, 홍콩 등 아시아 7개국 8개 도시를 찾는다. 일본 도쿄돔, 교세라 돔을 비롯해 불라칸의 필리핀 아레나 등 스타디움 급 공연이 예정돼 있다.
한편 소속사 측은 지연 사태와 관련해 하루 뒤인 30일 "현장 기상악화(돌풍)로 인해 안전상의 이유로 공연이 한차례 지연됐던 가운데, 그 연장선으로 공연이 한차례 더 지연됐다. 이는 해당 공연을 앞두고 당일 영하권으로 떨어진 추위와 오전부터 갑자기 쏟아지던 눈과 비바람에 이어 오후부터 이어진 돌풍 등의 기상악화로 인한 것"이라고 뒤늦게 입장을 밝혔다. 이와 함께 2회차 공연 역시 사전에 30분 지연을 공지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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