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물 뿌리며 버텼지만…바다 위 배까지 다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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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산불' 휩쓴 영덕 가보니
해안마을 폭격 맞은 듯 초토화
"삶의 터전 잃어…살길 막막"
해안마을 폭격 맞은 듯 초토화
"삶의 터전 잃어…살길 막막"
이 마을 주민 고성창 씨는 사투 끝에 두 척의 배 중 한 척을 가까스로 지켜냈다. 고씨는 “경찰과 소방서에서 피신하라고 했지만 죽을 각오로 바닷물을 뿌리며 새벽 3시까지 버텼다”며 “어선이 전소된 12명의 어민은 집과 생업의 터전을 한꺼번에 잃어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노물리와 석리 경정리 등 여름철이면 피서객들이 찾던 곳은 횟집과 민박집은 물론 양식장까지 불탔고, 활어가 담긴 수조도 전기가 끊겨 생선들이 모두 폐사했다.
노물리에서 9㎞ 떨어진 축산면사무소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만난 대곡리 주민 오인호 씨(77)는 “5만9500㎡의 송이 산과 집이 모두 불타버렸다”며 “송이 산을 살리려면 30년도 더 걸린다는데 3대째 이어온 생업이 모두 날아갔다”고 흐느꼈다.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은 경북 5개 시·군의 농어업, 축산업 등에 막대한 타격을 입혔다. 경상북도에 따르면 이번 산불로 주택 3224채가 전소됐다. 농축산 분야 피해 면적은 558㏊에 달했고 수산 분야에서도 어선 19척, 양식장 6곳 등이 화마에 휩싸였다. 이철우 경북지사는 “열흘간 이어진 울진 산불 때는 200채가 불탔는데 이번에는 15배가 넘는 주택과 공장이 피해를 봤다”며 “산불의 규모와 위력이 어마어마했다”고 설명했다.
피해 주민들은 복구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6600㎡의 사과밭과 주택 저온창고가 전소된 청송군 진보면의 황경식 씨(50)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평생 살면서 가장 잔인한 4월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영덕·청송=오경묵 기자 okmo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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