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을 때 이자람 공연 한 번은 봐야 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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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소리꾼 이자람
신동에서 창작 판소리 선구자로
"인기 없는 예술이란 자괴감이
구시대 깨뜨리는 도전의식 불러"
DJ부터 밴드 보컬, 뮤지컬까지
"새로운 것 두렵지 않게 노력"
신동에서 창작 판소리 선구자로
"인기 없는 예술이란 자괴감이
구시대 깨뜨리는 도전의식 불러"
DJ부터 밴드 보컬, 뮤지컬까지
"새로운 것 두렵지 않게 노력"
전작 ‘노인과 바다’의 흥행에 이어 이번에도 티켓은 순식간에 동났다. “갈 곳도, 돈 쓸데도 많잖아요. 그 돈을 제 작품에 써준다는 것 자체에 조금 놀랐어요. 늘 놀랍고, 늘 놀라게 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의 겸손한 태도에는 강한 자신감이 깔려 있다. “세상이 멸망하지 않는 한 나의 이름은 한국 판소리 역사에 아주 중요하게 남을 것이니 당신은 내가 살아 있는 동안 한 번이라도 내 작품을 직접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래야 ‘나 이자람 공연 봤어! 나 이자람 살아 있을 때 객석에서 같이 추임새 했어!’ 하고 자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2022년 이자람의 첫 자전적 에세이 <오늘도 자람>에 나오는 대목이다.
그의 자신감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이자람은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등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판소리 5바탕을 완창한 것을 넘어 자신만의 색깔을 입힌 창작 판소리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모든 클래식 연주자가 직접 작곡하지 않듯 모든 소리꾼이 작창(판소리 장르 안에서 곡을 쓰는 일)하는 건 아니다. 작창의 바탕이 되는 대본을 쓰는 소리꾼도 드물다. 그는 손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대본을 쓸 줄 아는 작가가 여기 함께 있다는 게 저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자람은 어려서부터 ‘스토리텔링’이 좋았다. 아버지 이규대(혼성 듀오 ‘바블껌’ 멤버)와 함께 부른 동요 ‘내 이름(예솔아!)’으로 방송에 출연하고, 집에서는 혼자 동화책을 소리 내 읽으며 녹음하는 것을 즐겼다. 판소리는 우연한 기회로 접했다. 열 살 때 판소리를 배워 한 어린이 방송 프로그램 오프닝 무대에서 불러야 했는데, 이때 만난 고(故) 은희진 명창이 첫 스승이 됐다.
판소리에 매료된 그는 국립국악중·고를 거쳐 서울대 국악과에 진학했다. 스무 살에는 춘향가를 8시간 동안 완창해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판소리에 회의를 느낀 적도 있다. “‘내가 열심히 하고 있는 이 빡센 예술을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자괴감이 컸어요.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 뮤지컬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죠. 이런 마음을 잘 다스려야 했습니다.”
성인이 된 후에는 창작 판소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고전 판소리가 지닌 구시대적 서사의 한계를 깨기 위한 도전이었다. 뜻이 맞는 사람들과 창작 집단 ‘판소리만들기-자’를 결성해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극을 바탕으로 ‘사천가’(2007)와 ‘억척가’(2011)를 세상에 내놨다. 이 작품들로 30대 중반까지 세계 각지를 누볐다.
“제일 그리운 순간은 프랑스 리옹과 루마니아 클루지나포카처럼 세 번 이상 간 곳들이에요. 제 공연과 성장을 계속 응원하고 봐주는 관객들이 있는 제2의 고향이죠. 세상에 어떤 운 좋은 사람이 그런 공연을 하고 다니겠어요? 너무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에요. 계속 공연을 올리고 관객을 만나고 싶어요.”
이자람이 생각하는 판소리의 매력은 뭘까. 수없이 받았을 질문일 텐데, 그는 정확한 표현을 찾으려는 듯 한참 고심한 뒤 답했다. “판소리는 엄청난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고도의 예술이에요. 구도자처럼 끊임없이 정진해야만 얻는 기술이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대단한 기술로 말하는 이야기가 오히려 나와 가장 가까워요. 엄청난 양극성이죠. 저 높은 곳에 있어야 할 것 같은 소리꾼이 내 옆에서 내 추임새를 들으며 속을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이야기를 해준다는 것. 얼마나 매력적이에요?”
나이가 들면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하지만 이자람은 낯선 환경에 자신을 끊임없이 내던졌다. 한때 라디오 DJ부터 밴드 보컬, 뮤지컬 배우까지 그 모든 걸 능숙하게 해내 ‘이잘함’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첫 경험을 하는 순간은 아주 귀하거든요. 배울 게 너무 많잖아요. 태도를 계속 바꿔야 하는 상황이 저를 깨어 있게 합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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